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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민우의 블랙코드

‘미투’ 시대에 역행하는 개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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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최민우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장
최민우 정치부 차장

최민우 정치부 차장

‘막가파’처럼 보이지만 미국 트럼프 대통령도 자기 멋대로 장관을 임명하지 못한다. 상원에서 과반의 찬성을 꼭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청문회에서 자질론 등이 불거지면 상원에 상정하는 거 자체가 어렵다. 대통령 선택이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교과서에 나올 법한, 대통령제 ‘견제와 균형’의 전형이다. 그럼 한국은? 외관상 장관 청문회는 있지만 결국은 대통령 마음대로다. 범죄를 저질러도, 여론이 따가워도, 국회가 보고서 채택을 안 해도 강행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법에 돼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단면이다.

이거 고치자는 게 2018년 개헌의 주된 이유다. 헌법 전문을 바꾸자느니, 기본권 증대와 지방 분권을 강화하자느니 등 개헌 관련한 말이 많지만 그건 곁가지요, 요즘 말로 ‘잡스러운 이론’에 불과하다. 본질은 간단하다. 센 대통령 권력 줄이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블랙코드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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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쟁만 일삼고 자기 뱃속만 챙기는 국회의원 놈들을 어떻게 믿느냐고? 오케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4대 권력기관장 인사권만이라도 대통령이 내려놓아야 한다. 검찰·경찰·국정원·국세청 말이다. 정권 바뀔 때마다 이들 기관 동원한 ‘사정정국’ 때문에 시끄럽지 않았나. 만약 이것마저 하지 않고 대통령 권력분산을 담은 개헌이라고 하면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이다. 근데 13일 정해구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한 개헌안을 보면, 권력기관 정치 중립화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봇물 터지듯 나오는 ‘미투’ 운동의 핵심은 권력형 성폭력의 폭로다. 한국사회 성불균형이 오래된 남성 가부장제에서 비롯됐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근데 따져보면 가부장 문화는 곳곳에 넘쳐난다. 회사에서 부장 말에 토를 다는 부서원을 감히 상상할 수 있나. 정당에서 당 대표에게 대들었다간 공천은 물 건너간다. 강의실에선 교수 말이 법이지만, 교수 사회로 올라가면 또 대학 총장이 왕이다.

겉으론 민주화니 수평적 사회니 그럴듯하게 포장 혹은 착각하고 살아왔지만, 실상 우리를 움직여 온 방식은 철저히 상명하복이요 ‘1인 독재시스템’이었다. 그걸 ‘미투’가 가장 격렬한 방식으로 폭로하고 있다. 그런데 국가 가부장제인 제왕적 대통령제를 슬그머니 놔둔 채 개헌을 하겠다? 그런 개헌이라면 안 하는 게 백번 낫다. 엉터리라고 ‘미투’하고 싶다.

최민우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