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우정 위에 우승 집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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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패장은 말이 없어야 하지만 프로 스포츠에서는 패장도 인터뷰를 해야 한다. 그걸 감안해도 26일 삼성화재 신치용(사진(左)) 감독은 말을 많이 했다.

프로배구 V리그 챔피언 결정전 2차전에서 현대캐피탈에 0-3으로 완패한 그는 "경기 초반 선수들의 체력이 달리는 걸 보고 3차전을 대비해 주전 선수들을 뺐다"고 말했다. 일부러 졌으니 패배는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그는 또 "현대도 그리 잘하지 못하더라. 정상적으로 했다면 우리가 이기겠더라"며 현대의 승리를 폄하했다. 그는 "현대는 키와 체력 등 객관적 실력이 훨씬 뛰어나지만 현대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고 말했다. 작전 즉, 감독의 역량에서 삼성이 현대보다 낫다는 뉘앙스다.

김호철(사진(右)) 현대캐피탈 감독은 다혈질이다. 신 감독에 이어 인터뷰실에 들어온 그는 이 말을 전해듣고 "패배를 인정하고 승자를 축하해 주는 것이 스포츠인데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언성을 높였다. 1차전에서 다 이긴 경기를 역전당해 독이 올랐던 그다.

김 감독은 "체력도 실력이다. 삼성도 체력 관련 트레이너를 외국에서 데려와 선수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는데 이틀 연속 경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인터뷰 동안 얼굴색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두 감독은 같은 경남 출신으로 초등학교 시절 연합팀에서 처음 만난 40년 친구다. 군대 동기로 한솥밥을 먹고, 한 지붕 아래서 잤으며, 함께 몰래 술을 먹었고, 함께 벌을 받았다. 그러나 우정이 깊을수록 라이벌 의식은 더 크다.

10연속 우승을 노리는 삼성화재, 그 기록을 막아야 하는 정규 시즌 우승팀 현대캐피탈. 두 감독은 그래서 더욱 필사적이다. 3차전은 29일 대전에서 벌어진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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