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냉전체제의 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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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9일부터 모스크바에서 시작된 「레이건」 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간의 네번째 만남은 85년부터 급진전 되어온 동서긴장 완화가 이제 안정권에 들어섰음을 극적으로 상징해 주고 있다.
아직도 두 강대국간에 평화공존체제가 확립되기 까지는 많은 장애물이 놓여 있지만 80년대초까지만 해도 국제관계 전반을 무겁게 눌렀던 상호적대감과 불신감은 상당히 걷혔다. 새로 조성된 그와같은 신뢰의 분위기는 우선 핵경쟁시대의 가장 무서운 가능성으로 지적되어온 우발적 핵전의 위험을 줄여주고 전세계를 냉전대결로 양분해온 국제적환경으로 부터 독소를 어느정도 제거해 줬다는 점에서 크게 환영할일이다.
이와 관련해서 특히 지적해야 할점은 미소 대결의 핵심인 핵무기 경쟁관계가 풀리면서 양국간의 지역분쟁이 해소되는 기미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6일부터 소련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가 시작되었고 뒤이어 앙골라, 캄푸치아등 미소간 대리전쟁이 막을 내릴 조짐도 보이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이들 지역문제 외에도 니카라과 내전과 한반도 문제도 아울러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주관심사인 한반도문제는 물론 서로간의 입장을 설명하는 식의 종전의 형식에서 더 발전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한반도문제의 해결은 1차적으로 남북한 당사자간에 매듭이 풀리지 않는한 미소가 이니셔티브를 취할 여지가 거의없다는 점을 쌍방이 다같이 공언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국의 그런 공언이 당연한 것이기는해도 실질적으로는 남북한과 각각 전략적, 이념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는 두나라 사이의 관계 호전은 남북간의 대결상황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수 밖에없는 것이다. 또 미소간 적대관계의 해소는 한국정부가 추진하려는 북방외교의 실현 가능성도 높여줄 수있을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이 갖는 이와같은 파급효과를 논외로 한다면 이번 모임에서 어떤 극적 합의나 발표가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지난해 12월에 조인된 중거리핵탄두 폐기협정의 비준서 교환이 하이라이트를 이루게되고 인권문제를 다룰 정기적 모임이나 화성에 유인 인공위성을 보낼 공동계획등이 지역문제들과 함께 논의되는 정도다.
처음 기대했던 전략핵무기의 50% 감축 협정은 세부사항에대한 마무리가 지어지지 못해 조인되지 못하게 되었다.
쌍방은 89년 1월 「레이건」 미 대통령이 퇴임하기 전까지는 이 작업이 마무리 지어지기를 「희망」하고있지만 이 문제는 쌍방이 보유하고있는 전체 핵무기의 96%의 절반을 감축하는 실질적 전략이해가 걸려있어서 낙관하기 어렵다.
그러나 어차피 미소간의 기본적대결 양상으로 봐서 관계개선이 아무리 진척된다해도 세계가 우리세대에 핵공포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상 이정도의 성과만으로도 이번 정상회담을 성공적이라는 평가할만하다. 「레이건」이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매도하고 소련 전투기가 우리 여객기를 격추시켰던 수년전에 비하면 세계는, 그리고 한반도 주변은 훨씬 안전한 시대를 맞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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