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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북핵 폐기” 北 “남핵도 폐기” 비핵화 '간극' 변수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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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 면담 결과 발표를 준비중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가운데). 왼쪽은 서훈 국정원장, 오른쪽은 조윤제 주미 대사. [EPA=연합뉴스]

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 면담 결과 발표를 준비중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가운데). 왼쪽은 서훈 국정원장, 오른쪽은 조윤제 주미 대사. [EPA=연합뉴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김정은을 만나보니 진정성이 느껴졌다. 김정은에 대한 우리의 판단을 미국이 받아주고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청와대 관계자가 9일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만나기로 한 데엔 동맹국인 한국의 보증이 영향을 미친 셈이다.

하지만 한·미와 북한이 생각하는 비핵화의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는 게 문제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우리가 이야기하는 비핵화는 북핵 폐기이지만, 북한은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주장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북한이 2016년 7월 제시한 비핵화 5대 조건을 보면 명확해진다. 당시 북한은 '정부 대변인 성명'이라는 형식으로 ▶남조선에 끌어들여 놓은 미국의 핵무기를 공개하라 ▶남조선에서 핵무기와 기지를 철폐하고 세계 앞에 검증받으라 ▶미국이 조선반도에 핵 타격 수단을 다시는 끌어들이지 않겠다고 담보하라 ▶우리 공화국에 핵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확약하라 ▶남조선에서 핵 사용권을 쥐고 있는 미군 철수를 선포하라 등의 5대 조건을 발표했다.

또 비핵화를 “선대의 유훈”이라고 표현하며 “명백히 하건대 우리가 주장하는 비핵화는 조선반도 전역의 비핵화이며 여기에는 남핵 폐기와 남조선 주변의 비핵화가 포함돼 있다”고 강조했다. 일방적인 비핵화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북한 외무성 인사들을 수차례 만났던 소식통은 “5대 조건에 북한의 답이 다 있다. 누구를 만나든 이를 기반으로 한 입장을 철저히 반복하더라”고 전했다.

김정은이 한국 특사단에 밝힌 비핵화에도 비슷한 조건이 달려있다. 군사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 안전이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위협이 없어져서 걱정않고 살 수 있으면 비핵화하겠다는 말은 예전 6자회담에서도 북한이 수없이 했던 얘기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북·미 정상회담의 변수와 조건들은 조만간 본격화할 북·미 간 실무 접촉에서 논의될 전망이다. 양측 모두 정상회담 결렬이란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대비하고 나서는 예비 회담 성격이 짙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미국은 실무 접촉에서 북한이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구체적 행동이 무엇인지 확인하려 할 것”이라며 “북한이 사찰이나 검증을 주저하면 미국으로선 만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외교부 2차관을 역임한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은 “북한이 핵 선제사용 불가 선언이나 평화협정, 주한미군 철수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를 통해 한·미 동맹의 근간을 흔들려 할 경우 정부가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내의 협상파 사이에서도 북한의 구체적 조치 확보가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수잔 디마지오 뉴아메리카재단 선임연구원은 자신의 트위터에서 “정교한 사전작업 없이는 (회담이) 본질적 변화를 꾀하는 게 아니라 구경거리로 끝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지혜·박유미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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