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도권 암투에 반기든 연구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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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세종연구소(전 일해연구소)의 상임 연구위원들이 27일 오후 전격적으로 일괄사표를 냄으로써 앞으로의 진로와 주도권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연구소내부의 「암투」에 새로운 「충격변수」로 등장했다.
상임연구위원 총7명중 27일 출근을 하지 않은 김을권씨(국방정책)를 제외한 김철수(일·중관계) 민병균(경제) 오진룡(한중관계) 이정하(한미관계) 정세현(남북문제) 차동세(경제) 씨등 6명의 상임연구위원들은 27일 하루종일 연구소의 앞날과 자신들의 처신에 관한 논의를 가진 끝에 김기환소장에게 모두 사표를 제출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표를 받은 김소장은 『이러면 정주영 이사장에게만 유리하게 되는게 아니냐』면서 아직 사표수리를 보류하고 있는 상태다.
○…연구소의 핵심인력인 상임연구위원들의 집단 사의는 연구소 자체의 존립을 흔들 수 있는 것인데다 그간 세종연구소에 쏟아진 따가운 시선들에 대한 「학자적 양심」의 그같은 반응은 이 사람 저 사람 가릴 것 없이 싸잡아 어용으로 매도하는 시대적 상황이 낳은 「아픈 상처」같은 것이어서 그저 단순히 보아 넘길 일이 못된다.
또 사의를 표한 의도와는 관계없이 이들의 사의는 현실적으로 「연구진」을 대표하는 김소장의 퇴진에 대한 무형의 압력이 되고 있어 이번 일로 「돈낸 사람」들을 대표하는 정주영 이사장측은 일단 우세한 입장에 서게됐다.
○…세종연구소에서 일하고있는 「두뇌」들은 애초 연구소의 설립과정과는 무관하게 참여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어느 상임연구위원은 연구소 설립당시 일해라는 이름은 들어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어느 날 「과기처장관」(사실은 이정오 전과기처장관)으로부터 온 전화를 받고 이씨를 만난 끝에▲대공산권 자료를 제약없이 구해볼 수 있게 해주고 ▲위에서 떨어지는 연구과제가 없으며▲보수 수준이나 주택문제등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보장한다는 약속을 믿고 자리를 옮겼다고 회고한다.
또 실제로 일해에 들어온 이후 당시의 약속은 충실히 지켜져 「어용」연구는 한번도 해본 기억이 없는데 최근 일해가 공개되고 나자 『곡학아세를 일삼는 자들아』하는 식의 「돌팔매」를 무수히 맞았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어쨌든 이들의 집단사의는 세종연구소의 앞날이 하루빨리 정리되어 더 이상의 잡음을 빚지 않아야 한다는 강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무주공산격이 되어버린 세종연구소에 대한 정주영 이사장의 「돈낸 이」로서의 집념도, 순수민간연구기관을 앞세우는 김기환 소장의 「명분」도 그것이 계속 사회의 여론에 의해 한갖 「욕심」으로 비춰진다면 서로가 자제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오는 31일로 예정된 세종연구소 이사진의 6인 소위(정관개정 등을 위해 설치한 위원회)가 어떤 결론을 낼지가 당장의 주목대상이 되고있다. <김수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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