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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 새 총리 후보 한명숙씨 지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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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명숙 국무총리 후보자가 24일 국회에 도착해 손을 흔들고 있다. 강정현 기자

노무현 대통령은 24일 열린우리당 한명숙(62)의원을 새 총리 후보자로 지명했다. 한 후보자가 국회 인준을 받을 경우 헌정 사상 첫 여성 총리가 탄생한다. 사회 전 분야에서 여성들이 약진하는 흐름 속에 행정 각부를 통활하는 여성 총리의 등장이라는 새 역사가 기록되는 셈이다.

[뉴스 분석]

노 대통령은 이날 "한 후보자가 부드러운 리더십과 힘있는 정책 수행을 통해 주요 국정 과제를 안정적이고 전향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드러움'과 '힘있는 정책 수행'은 한 후보자를 통해 노 대통령이 구상하는 국정 운영의 요체다. 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은 "한 후보자가 첫 여성 총리로서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펼쳐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전임 이해찬 총리는 감성보다는 논리를 앞세우는 스타일이었다. 야당과의 충돌도 잦았다. 한 후보자를 통해선 국정 전반의 '화(和)'를 모색해 보자는 게 노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한 참모는 전했다.

여소야대의 현실 속에 1년11개월 임기가 남은 노무현 정부가 성공적인 마무리를 하려면 야당과의 원만한 관계 설정이 필수적이다. 한국 여성계의 2세대 대모(代母)로 불리는 한 후보자는 여성계는 물론이고 재야.시민단체와 좋은 네트워크를 유지해 왔다. 노 대통령으로선 첫 여성 총리를 탄생시켰다는 '이미지 개선'의 효과와 함께 이반돼 있던 재야의 지지 기반도 다질 수 있는 카드다.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와 오랜 친분을 유지해 온 한 후보자의 발탁이 민주당을 비롯한 옛 여권 지지층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이다.

전임 이해찬 총리는 차기 주자군으로 거론되며 곳곳에서 미묘한 견제를 받았었다. 임기 후반에 차기 대선과 무관한 한 후보자를 기용해 국회의 협조를 받는다면 노 대통령은 조기 레임덕(권력누수)을 차단할 수 있다.

다만 선거의 계절에 노 대통령이 추구하는 장기적인 국정 과제와 당장 한 표가 아쉬운 정동영 의장의 열린우리당 입장이 충돌할 때 여권이 쉽게 위기로 치달을 가능성도 있다. 차기 대선 주자군이 아닌 한 후보자의 비상시 조정 능력에 한계가 있을 것이란 지적이 많기 때문이다.

한 후보자의 '힘있는 정책 수행'은 일견 부드러운 리더십과 상충돼 보인다. 하지만 청와대는 "한 후보자가 여성.환경부 장관을 하면서 업무 능력이나 조직 관리 면에서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이날 "한 후보자가 전임 이 총리처럼 '책임형 총리'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노 대통령도 이날 한 후보자와의 오찬에서 "국정 운영 시스템은 변화없이 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 후보자가 실질적으로 각료 제청권을 갖고 일상적 행정 업무의 추진과 관리를 주도할 것이란 예고다. 대통령이 나서서 한 후보자에게 부쩍 힘을 실어준 모양새다.

노 대통령은 이미 집권 후반기 핵심 과제를 ▶양극화 해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저출산.고령화 사회 대비 ▶부동산 대책 ▶경제의 안정적 관리로 요약해 왔다. 새로운 항로의 개척보다 이런 로드맵을 따라 '안정 항해'를 하는 데는 한 후보자가 적임이라는 게 노 대통령의 판단이다. 전임 이 총리가 '실세형 책임총리'였다면 한 후보자를 통해 '안정형 책임총리'로 가겠다는 컨셉트다.

그러나 한 후보자가 현 정부의 정책 기조를 꿰뚫고 있는'정책통'이라고 보긴 어렵다. 이런 점에선 막판까지 한 후보자와 경합했던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이 적임자였다. 김 실장을 택하지 않아 생긴 빈 정책적 공간은 천상 노 대통령이 메워야 한다. 대통령과 완전히 업무를 분담하는 책임총리제에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노 대통령이 일상 행정에 직접 관여하는 일이 많아지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여성 총리의 존재가 5.31 지방선거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도 주목된다. 벌써 여당의 강금실 서울시장 후보 카드와 여성 총리가 빚어낼 시너지 효과를 놓고 정치권은 정밀 계산에 들어갔다.

최훈 기자<choihoon@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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