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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평창 환호 때 아베·시진핑 ‘외교 복심’ 조용히 만났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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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3호 15면

[오영환의 외교노트] 속도 내는 중·일 화해무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1월 베트남 다낭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시 주석은 ’양국 관계의 새로운 스타트“라고 말했다. 중국과 일본의 관계는 최근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 [중앙포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1월 베트남 다낭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시 주석은 ’양국 관계의 새로운 스타트“라고 말했다. 중국과 일본의 관계는 최근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 [중앙포토]

“중·일 관계를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발전시켜나가고 싶다.”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일본 국가안보국장)

중국에 ‘올리브가지’ 내미는 일본 #외상, 안보국장 등 줄줄이 방중 #경제성장 집권연장 이해 맞물려 #아베·시진핑 상호 방문 가시권 #흐름 놓치면 한국 고립 부를 수도

 “함께 노력해 관계를 발전시키고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를 적절히 처리하기를 희망한다.” (양제츠·楊潔篪 중국 국무위원)

 평창올림픽 기간 북핵 외교에 온통 관심이 쏠렸던 지난달 23일. 베이징을 찾은 야치 국장이 양 위원과의 회담에서 중·일 간 각급 레벨의 대화를 한층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야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의 실질적 외교 사령탑이다. 아베가 2006년 1차 내각 발족 직후 전격 방중할 때의 외무성 사무차관이었다. 당시 아키바 다케오(秋葉剛男) 외무성 중국과장은 올해 사무차관에 올랐다. 미국통인 양제츠는 지난해 외교 수장으론 첸치천(錢其琛) 부총리 이래 14년 만에 정치국원이 됐다. 이달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부총리 승진도 거론되고 있다. 아베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측근의 이날 회담은 중·일 간 신뢰가 무르익고 있음을 방증한다. 2012년 말 함께 정상이 된 시진핑과 아베의 첫 상호 방문 실현이 가시권에 접어들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중·일 관계는 그해 일본이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를 국유화하면서 최악의 관계로 치달았다. 1972년 중·일 국교정상화 이래 지난 5년만큼 대립과 불신으로 점철됐던 때는 없었다.

아베 주변 곳곳서 “올해는 중국”

상황 반전 분위기는 곳곳에서 포착된다. 아베 내각은 중·일 평화우호조약 체결 40주년인 올해를 관계 개선의 전기로 삼는다는 방침이다. 지난 1월 28일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상의 방중도 그 일환이다. 그는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의 회담에서 전면적인 관계 개선을 촉구했다. 왕이는 “관계 개선과 발전은 양국 이익에 합치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3시간 반에 걸친 회담에서 북한 정세도 깊숙이 논의했다. 유엔 대북 제재 결의의 완전 이행과 북한 비핵화를 위한 협력에 합의했다. 고노는 이날 리커창(李克强) 총리와도 만났다. 리커창은 일요일인데도 면담에 응했다. 일본 국회 회기 중 평일엔 국외로 나갈 수 없는 고노에 대한 배려였다. 리커창은 일본이 오는 5월 개최를 추진하는 한·중·일 3국 정상회의 중국 참석자다. 회의가 성사되면 취임 후 처음으로 방일하게 된다. 지난 연말엔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자민당 간사장과 이노우에 요시히사(井上義久) 공명당 간사장이 시진핑을 만났다. 니카이에 대한 중국의 신임은 두텁다. 공명당은 중·일 국교정상화에 한몫했다.

 지난 연말 이래 일본 당정 요인의 잇따른 방중은 일본이 대중 관계 개선의 전략적 선택을 했다는 뜻이다. 그 중심에 아베가 있다. 아베는 기회 있을 때마다 중국에 ‘올리브 가지’를 내민다. 지난 한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결속을 다진 만큼 외교 지평을 넓히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아베는 새해 국정 연설에서 “일본과 중국은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큰 책임을 가진,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관계”라고 했다. 그러면서 “경제·문화·관광·스포츠와  모든 레벨에서 중·일 양국 국민의 교류를 비약적으로 강화하겠다”고 다짐했다. 자유·민주주의·법치의 가치관 외교를 역설해온 보수주의자 아베의 일대 방향 선회다. 아베는 지난달 9일 평창올림픽 환영 리셉션장도 놓치지 않았다. 한정(韓正)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에게 중·일 관계 개선을 한층 추진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올해는 중국”이라는 소리가 총리 주변에서 나오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한다.

 중국의 태도 변화도 감지된다. 지난해 11월 11일 베트남 다낭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계기로 열린 중·일 정상회담에 나온 시진핑은 그 전과 딴판이었다. 국제회의 기간 시진핑·아베 회담은 당시가 여섯 번째였다. 시진핑은 그전까지와 달리 미소를 보였고, 메모를 읽지 않고 말을 건넸다. 회담 이틀 전에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의 양자 회담 내용도 설명했다. 이례적이었다. 시진핑은 가벼운 농담도 던졌다. “일본에 많은 (중국) 관광객이 가서 온수 세정 변기와 밥솥 등을 사 온다. 마치 일본 제품을 숭상하는 것처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베의 2006년 방중과 지난해 9월 28일 중국 대사관 주최 중국 국경절 행사 참석을 평가했다. 일본 총리의 중국 대사관 행사 참석은 15년 만이었다. 아베는 회담에서 2018년 자신의 방중과 시진핑의 조기 방일을 제안했다. 시진핑은 “총리의 방중과 왕래를 중시하겠다. 이번 회담은 중·일 관계의 새로운 출발이 될 것”이라고 했다. 시진핑은 지난해 12월 난징(南京) 사건 80주년 추모식에 참석했지만, 연설은 하지 않았다.

 중·일 관계 호전 배경은 여러 가지다. 시진핑이 아베가 내민 손을 잡는 데는 자신이 주도한 일대일로(현대판 실크로드) 구상에 대한 일본의 참가 표명이 한몫했다. 아베는 지난해 6월 투명성·공정성을 조건으로 일대일로에 협력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일본 정부는 현재 일대일로 협력을 뒷받침하기 위한 지침(제3국에서의 중일 민간경제협력에 대해)을 마련한 상태다. ▶에너지 절약과 환경 ▶제3국 공업단지와 전력 기반 등 인프라 정비 ▶중국과 유럽 간 철도망 정비의 세 분야에서 중국과 공동 사업에 나서는 일본 민간 기업을 지원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중·일은 리커창의 방일에 맞춰 일대일로와 관련한 공동 사업을 발표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올해는 양국간 젊은 장교 교류 사업도 6년 만에 재개된다.

 중국의 태도 변화는 성장세 둔화와 맞물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세계 3위 경제인 일본과의 안정적인 관계는 경기 활성화와 일본기업 투자 유치에 기여한다.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다. 아베에게 일대일로는 중국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외교적 자산을 넘어 경기를 자극하는 뉴프런티어다. 양국엔 트럼프 변수도 있다. 미국 우선주의가 몰고 올 리스크는 양국 모두에 부담이다. 중·일 간 소통과 관계 개선은 불확실성 시대의 완충재다. 일본은 북한 비핵화 외교에서 중국의 협조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모리모토 사토시(森本敏) 전 일본 방위상은 “북한 문제에서 중국의 역할이 매우 큰 만큼 북한이 앞으로 추가도발을 하면 다음 단계 제재 때 중국의 협조가 긴요하다”고 말했다.

 중·일 간 해빙은 자국 내 정치 요인도 무시하기 어렵다. 시진핑은 지난해 10월 당 대회를 통해 집권 2기째의 권력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이달 전인대에선 국가주석 임기(2연임 10년) 폐지 개헌안이 추인될 전망이다. 반일 감정이 강한 중국에 일본 만큼 민감한 외교 상대도 없다. 1987년 1월 후야오방(胡耀邦) 공산당 총서기 해임의 한 요인이 대일 접근이었다. 당시 최고지도자 덩샤오핑은 정치국 회의에서 ‘후야오방의 6가지 오류’를 지적하면서 5, 6번째로 친일 정책을 들었다. 86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일본 총리와 3000명의 일본인 청년 초청을 문제 삼았다.(『일중 관계』, 모리 가즈코) 하지만 시진핑의 절대 권력은 대일 정책에서 유연성을 발휘할 여지를 준다.

센카쿠 영유권 분쟁 앙금은 여전

아베의 권력도 공고하다. 지난해 10월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압승했다. 2012년 이래 총선에서 진 적이 없다. 아베가 올 9월 자민당 총재(임기 3년) 선거에서 3연임 하면 역대 최장수 총리의 길을 열게 된다. 중·일 간 긴장 완화, 경제 협력은 아베에 지지율 상승 요인이다. 아베의 숙원인 헌법 개정에 대한 중국의 반발 수위도 낮춰준다. 아베의 대중 정책은 냉철한 현실주의자의 면모도 부각한다. 일본 정부는 올해 중 아베의 방중에 이어 시진핑이 연말 또는 내년에 방일하면 다섯 번째의 양국간 정치문서 교환도 검토한다는 보도다. 새 문서는 2008년의 전략적 호혜 관계 공동성명을 바탕으로 중·일 관계를 재정의(再定義)하는 내용이 될 전망이다. 세계 경제 2, 3위 국간 관계 리셋이 가시화하는 분위기다.

 변수도 없지 않다. 센카쿠 영유권 분쟁은 여전하다. 양 국민의 상대방에 대한 호감도는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 바닥 수준이다.

 중·일 접근은 우리 외교에 숙제를 던진다. 한반도를 둘러싼 4강의 대국 외교가 본격화할 수 있다. 한국의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가뜩이나 한·미, 한·중, 한·일 관계는 껄끄럽다. 한·미 관계는 대북 정책을 둘러싼 간극이 크다. 동맹의 신뢰도 반석이 아니다. 한·중 관계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의 한국 배치를 둘러싼 갈등이 말끔히 가시지 않았다. 대일 관계는 과거사 문제를 놓고 다시 대치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위안부 문제와 독도에 대한 일본의 태도를 강하게 비판하면서다. 일본의 중국 접근에는 한·중의 과거사 공세를 피하고 힘으로 한국을 다루려는 측면도 있어 보인다. 여기에 우리 대북 정책은 북한 비핵화보다 남북 관계개선으로 옮겨간 인상을 준다. 세계의 주류적 흐름에 동참하지 않는 외교, 국력을 넘는 여론 외교는 한국의 고립을 부를지 모른다.

오영환
군사안보연구소 부소장·논설위원
hwas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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