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소설가여 힘을 내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김성호 (중앙일보출판기획위원)
제5회 유주현문학상 수상작으로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이 뽑혔다.
『원미동 사람들』은 작가가 사는 경기도부천시원미동의 소시민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섬세한 필치로 그려낸 연작 단편소설집이다.
작품증의 『멀고 아름다운 동네』는 한겨울에 이사가는 샐러리맨의 따뜻한 부부애가 스며 나오는 작품이고 『불씨』는 외판원이 어렵게 발견한 첫고객이 터미널의 짐꾼이라는 전결이 재미있다.
『마지막 땅』은 신흥 주택개발지에서 인분으로 채소를 기르며 당을 지키는 노인의 고집, 『원미동시인』은 폭력에의 증언에서 몸을 도사리는 소시민의 비굴함을 주제로 삼고 있다.
유주현문학상은 이번 5회 수상작 선정을 계기로 상의 성격에 중대한 변화를 일으켰다. 종래 대하역사소설 위주로 선정하던 것을 「문학성이 뛰어난 작품」으로 그 범위를 넓힌 것이다.
특히 이번 수상작 선정에서 심사위원(이호철·유종호·김윤식)들 이작가의 이야기 구사능력과 소설의 재미에 역점을 둔것은 음미할만한 일이다.
소설가는 무엇인가. 결국 이야기꾼(story-teller)이다. 이야기에는 심사위원들의 지적대로 재미가 있어야 하고, 독자로서 한가지 덧붙인다면 감동이있어야 한다.
그동안 이땅의 소설가들은 무엇을 쓸것인가만 고민하고 어떻게 쓸것인가는 무시한 느낌이 든다. 재미와 감동은 천대하고 동찰·관조에만 치우치는 경향이었다. 재미와 감동은 대중문학의 몫이고 순수문학은 그러면 안된다고 여겼다. 그래서 소설은 알송달송해지고, 힘이 없어졌다.
이땅의 소설가들은 「고전이 될만한 작품」을 쓰겠다는 의욕에서 한발짝 후퇴했으면 좋겠다. 고전은 다시는 씌어질 필요가 없는 책, 완전무결한 책, 시대와 장소의 한계를 초월한 책등으로 정의된다. 소설가들이 이 기준에만 매달리다 보면 평생 한권의 책도 못쓰는 사람이 수두룩하게 나올것이고 그렇게 되면 거기에 좀 미달하는 작품이라도 읽겠다며 애타게 기다리는 독자들이 불쌍하지 않은가.
좋은 연극을 보면 가슴이 후련해 지고, 좋은 소설을 읽으면 가슴이 뿌듯해지고, 좋은 그림을 보면 감탄의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카타르시스(마음의 정화)는 꼭 연극론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감동을 극적으로 표현한 사람가운데 중국 송대의 정자가 있다. 그는 『논어』를 읽고 아무 감동을 못받는 사람도 있지만 『읽은 뒤에 곧 저도 모르게 손으로 춤추고 발로 뛰는 자도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보통사람들에게 『論語』를 읽고 재미와 감동을 느끼라고 할수는 없는 일이니 아무래도 그 역할은 소설가들이 맡아야 할것이다.
소설에서 재미와 감동이 사라진게 왜, 누구 탓이냐고 따질 필요는 없지만 인간이 사라지고 철학과 사회학이 등장한게한 원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인간의 본성에는 사단칠정이 있다고 한다.
사단은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 불의와 불선을 부끄럽게 여기는마음, 양보하는 마음, 잘잘못을 가리는 마음이고 칠정은 희·노·충·악·애·악·욕이라고 한다. 소설이 철학과 사회학의 침범으로부터 영역을 지키고 인간학을 등장시키면 재미와 감동이 되살아나지 않을까.
한국판 「카뮈」와 「사르트르」보다는 한국판 「모파상」과 「디킨스」가 많으면 좋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