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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킹' 박희용 "올림픽 정식종목 될 기회 차버린 산악연맹 책임져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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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킹 박희용. [사진 주민욱 작가]

아이스킹 박희용. [사진 주민욱 작가]

박희용(36)은 ‘아이스 킹’으로 불린다. 지난 2000년 스포츠클라이밍 국가대표를 거쳐 2006년 이후 줄곧 아이스클라이밍(빙벽 등반) 국가대표로 활동 중인 한국 클라이밍의 대들보다. 아이스 킹은 해외에서도 맏형 격이다. 국제산악연맹(UIAA)이 주최하는 아이스 클라이밍 월드컵에서 줄곧 상위권을 지켜왔으며, 지난해엔 월드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또 한국은 지난 2011년부터 열린 청송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유치하며, 전 세계 아이스클라이밍을 이끌어왔다. UIAA도 그 점을 높이 사 이번 평창겨울올림픽을 맞아 평창에서 아이스클라이밍 쇼케이스(시범 프로그램)을 열기로 하고, 지난해 12월 박희용을 홍보대사로 임명했다.

그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아이스클라이밍 쇼케이스가 결국 주관 경기단체인 대한산악연맹의 미숙한 일 처리로 무산되자 그가 대한산악연맹을 상대로 책임론을 제기했다. 그런 그의 주장에 대해 환영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일부에선 그를 대한산악연맹에서 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박희용은 지난달 21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이스클라이밍 종목을 세계에 알리고, 2022년 베이징겨울올림픽서 정식종목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쇼케이스가 열리지 못했다. 선수로서 지도자로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성남서 직접 실내 암벽장을 운영하며, 스포츠·아이스 클라이밍 인재를 키워내고 있는 지도자이기도 하다. 박희용은 “대한산악연맹이 환골탈태하지 않는 한 2020년 도쿄올림픽서 첫선을 보이는 스포츠클라이밍 종목도 구경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락가락 행정으로 국제적 망신 

-올림픽 쇼케이스는 어떤 의미가 있나.
“쇼케이스는 컬처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단지 보여주기를 위한 쇼는 아니다. 정식종목 채택이라는 목표를 갖고, 올림픽에 나설 만한 재미와 흥행 가능성을 전 세계 IOC 위원들에게 어필하는 자리다. 아이스클라이밍은 러시아 소치 겨울올림픽에 이어 평창에서 두 번째로 쇼케이스에서 선보이기로 돼 있었다. 평창서 쇼케이스를 잘했으면, 2022년 베이징겨울올림픽에 정식종목이 될 가능성을 높였을 텐데, 아쉽다. 한국이 지난 10년 동안 사실상 아이스클라이밍의 세계화를 이끌어왔기 때문에 더 아쉽다.

-쇼케이스가 무산된 이유를 무엇이라고 보나.
“처음엔 ‘재정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그렇게 큰돈은 아니다. 애초 5억원에서 재정 압박을 받자 1억~2억원까지 예산을 줄였다. 선수들도 돈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대한산악연맹은 다른 경기단체처럼 대기업 오너가 아닌 산악인이 줄곧 회장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수들도 ‘그렇다면 우리도 십시일반으로 보태자’고 의견을 냈다. 일부 선수는 ‘국제대회서 딴 상금을 내놓겠다’고 했다. 하지만 재정보다 연맹의 행정력 부재가 더 컸다. 최근 6개월 동안 ‘쇼케이스를 한다, 안 한다’ 말을 너무 많이 바꿔 국제적으로 망신을 샀다. 대회가 열리지 못한 것보다 그게 더 가슴 아프다.”

산악연맹, 송어축제장서 올림픽 쇼케이스 하자 해 

-자꾸 번복한 이유는 뭔가.
“김종길 회장 이하 임원들에게 이유를 물었지만, 아직도 답변을 듣지 못했다. 앞뒤 설명 없이 ‘유감이다’는 한마디 뿐이다. 연맹은 지난해 11월쯤에 ‘안 하겠다’고 결정한 뒤로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 문제가 될 것 같으니까 ‘다시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오락가락하다 올림픽 한 달 전까지 얼음벽을 설치할 장소도 배정받지 못했다. 그때까지도 ‘무조건 개최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개막식 3주를 앞둔 지난 1월 중순께는 ‘평창 송어축제장에서 쇼케이스를 개최하겠다’고 했다.”

-송어축제장서 올림픽 쇼케이스를 열 수 있나.
“올림픽 개최 장소에서 수십km나 떨어진 곳에서 쇼케이스를 열겠다는 말에 다 포기했었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해외 선수들한테 ‘쇼케이스에 자원봉사자(선수)로 참여하라’는 e메일을 보냈다. 이미 UIAA에서 ‘무산’이라고 발표한 이후다. 창피한 일이다. 한국은 그간 아이스클라이밍 세계화에 대한 기여도가 아주 높았는데, 그간 쌓은 신뢰가 무너졌다. 개인적으로도 신뢰에 금이 갔다.”

-다른 나라 선수들에게 원망을 많이 들었나.
“원망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쉬움을 표하는 선수들이 많았다. 아이스클라이밍은 선수 생명이 긴 편이라 십수 년 동안 친분을 쌓은 선수들이 꽤 있다. 대부분 친구로 지내며, 해외 훈련 중에 만나면 기술적인 부분을 조언하기도 한다. 한국서 열리는 쇼케이스라 다들 오고 싶어했는데, 오락가락 행정에 ‘비행기 티켓을 끊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소연하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뭐라 해줄 말이 없어 곤혹스러웠다.”

환골탈태 안 하면 스포츠클라이밍도 구경꾼 될 것

-아쉬움이 많이 남을 것 같다.
“반년 동안 실망도 많이 하고, 또 본의 아니게 논란의 중심에 서 괴롭기도 하다. 비록 정식 종목은 아니지만, 한국서 열린 올림픽서 아이스클라이밍의 매력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이제 이런 기회는 오지 않을 것 같아 더 아쉽다.

-만약 베이징서 정식 종목이 된다면 출전할 생각인가.
“그러면 좋겠지만, 현재로선 가능성이 낮다. 또 베이징서 어렵게 정식 종목이 된다고 해도 그때가 되면 내 나이가 마흔이 넘는다. 개인적인 성적보다는 후배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 여전히 현역 선수지만, 이젠 후배들을 돌아봐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번 시즌 클라이밍에 재능 있는 중고생들 10여 명에게 무료로 개인 훈련을 지도했다. 훌륭한 후배를 키우는 게 내가 지난 십여 년 동안 클라이밍에 투자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본다.”

-스포츠클라이밍 실내 암장 대표로서 한국 등반계의 앞날은 어떻게 보나. 유망한 재목들이 보이나.
“일반인들은 우리를 스포츠클라이밍 최강국으로 알고 있지만, 세계 클라이밍의 추세는 변하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도쿄올림픽 출전도 어려울 수 있다. 리드(난이도)와 스피드·볼더링(확보 줄을 묶지 않고 낮은 벽을 오르는 등반 종목)을 모두 잘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올림픽 메달도 세 종목을 합쳐 한 개뿐이다.”

-대한산악연맹에 하고 싶은 말은.
“아이스클라이밍의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은 이번 쇼케이스 무산으로 어쩔 수 없이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연맹이 좀 더 책임 있는 자세를 갖길 바란다. 스포츠클라이밍은 사실상 감독·코치가 없는 실정이다. 국제대회를 앞두고 그때그때 대표팀을 꾸리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체계적인 훈련이 있을 수 없다. 기술 습득도 선수가 알아서 해야 한다. 선수와 지도자층의 괴리가 너무 크다. 코치 중에 선수에게 기술적인 조언을 해줄 사람이 없다. 그간 연맹이 너무 고여 있었다. 물갈이가 필요하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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