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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덕환의화학이야기

산소는 참살이의 중심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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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산소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여러 물질에 대해 놀라운 친화력이 있다는 것이다. 산소는 어디에나 쉽게 달라붙어 화학결합을 만들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물(산화이수소), 녹(산화철), 모래의 주성분인 실리카(산화규소). 석회석(탄산칼슘), 이산화탄소가 모두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녹색식물이 만들어내는 포도당을 비롯한 탄수화물은 물론이고, 단백질과 지방도 산소의 화합물이다. 심지어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DNA에도 산소가 들어 있다. 분자의 세상에서 산소는 그야말로 약방의 감초인 셈이다.

태초(太初)의 지구에서는 자유로운 상태로 남아 있는 산소를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도 산소의 그런 특성 때문이다. 다양한 생물이 번성할 수 있게 된 것은 10억 년 전에 처음 출현한 남조류(사이아노 박테리아) 덕분이었다. 남조류가 바닷물에 녹아 있는 이산화탄소를 이용한 광합성으로 엄청난 양의 산소를 공기 중에 쏟아내기 시작했다. 대기 중의 산소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지구 생태계는 완전히 달라졌다. 영월에는 당시에 활동하던 스트로마톨라이트라는 남조류의 거대한 화석이 남아 있고, 호주 북서부의 샤크베이에는 아직도 원시 남조류가 살아남아 있다. 지금의 녹색식물은 모두 그런 남조류의 후손인 셈이다.

산소는 지구상의 생명을 위한 화학 에너지의 신비한 조절자다. 생물이 사용하는 영양물질에 산소가 결합되면 화학 에너지가 방출된다. 사람을 비롯한 동물들은 그렇게 방출된 에너지 덕분에 생명을 이어간다. 자연은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이산화탄소를 그냥 버리지 않는다. 녹색식물이 이산화탄소에서 산소를 떼어냄으로써 화학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역할을 해준다. 지구 생태계는 산소를 중심으로 하는 지속가능한 재활용에 의해 번성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그런 재활용의 원동력은 태양의 핵융합에서 쏟아져 나오는 에너지다.

우리도 오래전부터 생태계의 신비한 재활용에 관심이 있었다. 산소를 이용하는 일은 간단하다. 연료에 산소를 제공해주고 온도를 충분히 높여주면 화학 에너지가 방출되는 연소가 일어난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난방.조리.조명에 그런 에너지를 이용했다. 연료의 연소 에너지를 전기나 기계 에너지로 변환하는 기술을 개발하면서 인류의 문명은 몰라보게 발전했다. 인간은 불을 통해 화학 에너지를 활용하는 지혜를 가진 유일한 생명이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도 써버린 산소를 되살려내는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다. 과산화수소수에 촉매를 넣어 산소를 발생시킬 수 있지만 충분히 경제적이고 편리한 방법은 아니다. 기껏해야 공기 중의 산소를 분리해 쓰는 것이 고작이다. 공기를 높은 압력으로 압축하고 차갑게 냉각시키는 방법도 있고, 제올라이트나 고분자 합성 분리막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그런 방법으로 깨끗한 산소를 얻을 수는 있지만, 우리가 써버린 산소를 되살려내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만약 우리가 녹색식물처럼 이산화탄소에 화학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효율적인 기술만 찾아낸다면 진정한 만물의 영장으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이산화탄소에 의한 지구 온난화 문제와 식량 문제도 한꺼번에 해결될 것이다. 우리가 화학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화학 과학커뮤니케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