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대 원칙의 존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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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시국관련 구속자 석방문제가 중요 정치현안이 되었다. 그동안 야당의「전원석방」요구와 정부·여당의「선별처리」로 맞서오던 석방논의는 서울대 조성만군의 돌연한 투신자살로 다급한 정치쟁점으로 부상했다.
야권 3당은 제각기 긴급대책 회의를 가진데 이어 3당 총무회담을 열어 공동입장을 논의했으며 여당 역시 긴급 당정회의와 당직자 모임을 갖고 대책을 숙의했다. 사태가 얼마나 절박한가를 쉽게 가늠할 수 있다.
다행히 조군의 죽음에 대한 여야의 시각은 큰 차이가 없다. 야당은 그의 투신자살이 정부가 양심수 석방과 수배자 해제에 미온적 태도를 보여왔고 선별 처리키로 한데 기인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여당은 다만 석방문제를 정치협상의 대상으로 삼는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만 다를 뿐 정부측에 발상의 대 전환을 촉구하는 등 야당과 인식을 거의 같이하고 있다.
사실 조군의 죽음이 없었더라도 구속자 석방과 수배자 해제 문제는 정치권이 조속히 풀어야할 최대현안의 하나이고 쟁점이었다. 문제는 야권의 주장대로 1천여명 전원을 석방하고 수배자 전원을 해제하느냐 아니면 1백명 정도를 선별처리 하느냐의 범위 결정이 논란거리로, 남았을 뿐이다.
전원 석방과 해제를 주장하는 야권의 논리는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다소 다를 수도. 있으나 그 나름의 타당성을 갖고 있다. 구속자만 하더라도 이들 모두가 민주화 투쟁을 한 양심범이고 권위주의 정치의 희생자인데 정부가 민주화하겠다는 마당에 이들을 계속 가두어 놓는건 자기 모순이고 이치에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억압된 정치상황, 더더구나 고문과 강압수사가 일반화되다시피 한 수사상황에서 수사를 받았고 외풍에 약했던 사법부가 재판을 하는 등 도저히 공정한 수사와 재판이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합법성과 정당성, 도덕성까지 결여된 정권에 대한 저항은 국민저항권 행사로서 정부 행위로 간주할 수도 있다는 주장도 없지 않다.
이에 대해 정부측은 구속자 중에는 용공, 좌경색이 짙은 보안사범이 포함되어 있을 뿐 아니라 시위중에 버스를 돌진, 사상자를 내거나 공공 건물에 방화한 형사범도 적지않은데 전원석방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민주화도 좋고 전원석방도 좋은데 이들을 선별하지 않고 모두 풀어놓았을 때 야기될지도 모를 사회혼란이나 후유증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고 사후문제는 어떻게 수습하는가가 정부의 고민인 모양이다.『스스로 공산주의자임을 인정하는자 외엔 전원 석방해야 된다』는 야당일각의 주장도 있지만 진짜 공산주의자라면『내가 공산주의자요』라고 자처할 리 있겠는가도 곰곰 생각해볼 문제라는 것이다.
이처럼 석방과 해제의 범위 선정은 두부 모 자르듯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닌 듯하다. 그러나 정부가 민주화 의지를 거듭 천명했고, 민주화 추진을 위해 심지어 국가 보안법과 사회안전법, 집시법 등의 개·폐까지도 검토하는 시기에 이 문제에 지나치게 경직성을 보이거나 인색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구속자와 수배자들에게 적용했던 국가보안법 등이 잘못 제정된 법률임을 스스로 인정, 뜯어고치려는 마당에 이들을 계속 묶어 두겠다는 건 자가 당착이다.
여야 다같이 대 석방을 대 원칙으로 삼는다는 기본방향 아래 석방과 해제의 기준이나 범위를 설정하는데 정치력을 발휘해 곧 있을 4자 회담에서 이 문제가 원만히 타결을 보도록 노력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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