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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뱉고 부수는 진상짓에 절도까지…'무인점포는 괴로워'

중앙일보

입력

두 달 전 도둑을 맞은 서울의 한 인형뽑기방(왼쪽 사진). 이 가게에는 동전교환기가 3대 있었으나 도둑이 한 대를 강제로 여는 바람에 고장이나 버려야 했다. 조한대 기자

두 달 전 도둑을 맞은 서울의 한 인형뽑기방(왼쪽 사진). 이 가게에는 동전교환기가 3대 있었으나 도둑이 한 대를 강제로 여는 바람에 고장이나 버려야 했다. 조한대 기자

서울 은평구에서 인형뽑기방을 하는 이모(33)씨는 두 달여 전에 도둑을 맞았다. 손님이 뜸한 오전 4시에 동전교환기 속 40여 만원이 털렸다. 기계를 강제로 여는 바람에 고장이 난 70만원짜리 교환기도 버려야 했다. 가게가 왕복 6차로와 접한 상점가에 있지만 범죄를 피하진 못했다. 이씨는 “손님이 뽑기에 열중하다 지갑을 놓고 가면 다른 사람이 바로 가져가는 일은 빈번하다. 이런 일로 1년 4개월 운영하면서 경찰이 10번 넘게 출동했다”며 “폐쇄회로TV(CCTV)가 있는데도 개의치 않는다”고 토로했다.

자료: 게임물관리위원회

자료: 게임물관리위원회

최근 자영업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무인점포’가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다.
게임물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15년 12월에 21곳이었던 전국의 인형뽑기방이 2017년 12월에는 2098곳으로 증가했다. 2년 새 100배 가까이 는 것이다. 인형뽑기방을 포함해 코인노래방·셀프빨래방 같은 무인점포가 늘어난 이유는 운영주가 ‘인건비’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1인 가구가 늘어나고, 비교적 싼 값으로 ‘혼자 즐기는 문화’가 생겨난 것도 한몫했다.

문제는 범죄도 함께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20일~지난 4일 서울·경기의 인형뽑기방 14곳에서 현금 1300만원이 털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범인은 마스크를 쓰고 범행을 저질렀지만 인상착의를 확인한 경찰에 결국 20일 붙잡혔다.

지난해 8월에는 강원·인천·경기에 있는 코인노래방 25곳을 돌며 현금 396만원을 훔친 커플이 붙잡히는 사건이 있었다. 손모(19)양이 노래를 부르는 척 망을 보는 사이 정모(21)씨가 노래방 기계를 열어 500원짜리 동전과 1000원권 지폐를 훔쳤다. 같은 해 1월에는 경기 성남시 코인노래방 4곳을 돌며 현금 260만원을 훔친 10대 남녀 4명이 붙잡히는 사건도 있었다. 이들은 한 명이 소파 위에 올라가 CCTV를 가리면 기계를 뜯어내 돈을 가져갔다.

서울 노원구의 한 코인노래방 게시판에 '바닥에 침 뱉지 마세요 제발!'이란 문구가 적혀 있다. 조한대 기자

서울 노원구의 한 코인노래방 게시판에 '바닥에 침 뱉지 마세요 제발!'이란 문구가 적혀 있다. 조한대 기자

범죄 보다 손님들의 ‘진상 짓’은 더 잦다. 특히 10대가 저지르는 일이 많다. 노량진에서 코인노래방을 운영하는 김모(50)씨는 “학생들이 바닥에 침을 뱉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마치 소가 침을 흘려 놓은 것처럼 양도 많고 냄새가 심하다”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침을 뱉지 말아달라’는 안내문을 붙인 코인노래방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코인노래방에서 한 학생이 노래를 부르다가 벽을 부수는 장면.(빨간색 원형선) 정용환 기자

서울 영등포구의 한 코인노래방에서 한 학생이 노래를 부르다가 벽을 부수는 장면.(빨간색 원형선) 정용환 기자

영등포구의 한 코인노래방에서는 기물 파손도 벌어졌다. 주인 이모(55·여)씨는 “문 연 지 두 달 됐는데 한 고등학생이 노래 부르다가 갑자기 벽을 부수고 도망가 300만원을 들여 벽을 새로 했다”고 말했다. 노원구의 코인노래방 주인 이모(28)씨는 “부스에 있는 소화기를 호기심에 뿌린 학생들 때문에 전원 차단기가 내려가고 소화벨이 울리는 일이 지난 1년 간 3번이나 있었다. 사과를 받은 적은 한번뿐이고 나머지는 도망갔다”고 토로했다.

더 큰 문제는 청소년의 음주·흡연 등 ‘비행의 장소’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온라인에서 자신을 코인노래방 사장이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미성년자들 담배 피우는 것까지 뭐라고 못하겠는데 교복 입고 흡연실 들어가지 마세요’ ‘정말 못 보겠어서 한마디 했더니 발길을 뚝 끊었네요’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물론 10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7년 동안 서울 종로구 등 3곳에서 셀프빨래방을 운영했다는 김모(36)씨는 “빨래하러 올 때 카드 영수증, 우편물 고지서 등이 든 집안 쓰레기를 봉지째 들고 온다. CCTV에 뻔히 찍혔지만 고객이니 그냥 참는다”며 “새벽에 노숙자가 와서 잠을 자거나, 취객이 토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한 인형뽑기방 주인은 “화가 난 고객이 전화를 해서는 ‘7만원이나 넣었는데 인형이 왜 뽑히지 않느냐. 하나만 달라’고 해 가게로 가 준 적도 있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무인점포를 이용할 때 필요한 에티켓 캠페인(시민의식 교육)과 이곳에서 벌어지는 ‘생계형 범죄’를 막을 수 있는 꾸준한 경찰 단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한대·정용환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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