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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금감원장 한 마디에 냉온탕 오고간 암호화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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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이새누리 경제부 기자

이새누리 경제부 기자

“(암호화폐는) 금융상품도, 화폐도 아니다. 우리는 이런 도박판을 공인하지 않는다.”(지난해 12월 19일)

최흥식 원장 두달 전에는 “도박판” #20일 간담회선 “거래 정상화돼야” #비트코인 600만 → 1400만원 널뛰기 #금융권, 정부 눈치 보느라 갈팡질팡

“암호화폐 버블은 나중에 확 빠질 것이다. 내기를 해도 좋다.”(지난해 12월 27일)

“전 세계가 암중모색 중. 규제 강화가 아니라 정상적인 거래가 될 수 있게 만들어가야 한다.” (지난 20일)

암호화폐에 대한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의 최근 두 달간 발언이다. 두 달 전 ‘내기’ 발언은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해임 촉구 서명운동을 불러오고 한 달 동안 4만여명이 서명할 정도로 투자자의 공분을 샀다.

최 원장의 발언이 나올 때마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시세는 끓었다 식기를 반복했다. 지난 6일 각종 규제 여파로 600만원대까지 주저앉았던 비트코인 가격은 1400만원 목전까지 올랐다. 실종됐던 ‘김치 프리미엄’(암호화폐 국내 시세가 해외보다 비싼 현상)은 21일 오후 4시 기준 10% 회복했다. 최 원장이 20일 “암호화폐 거래가 정상화됐으면 좋겠다. 블록체인 활용은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발언한 여파다.

암호화폐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 것은 암호화폐 실명제와 자금세탁 방지 의무 조치 등 나름의 안전 장치가 마련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 2일 열린 미국의 ‘테더 청문회’(암호화폐테더에 대한 시세조작 조사와 관련해 열려 생긴 별칭)에서 크리스토퍼 지안카를로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의장이 “기성세대는 사려 깊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젊은 세대의 (신기술에 대한) 열정에 반응해야 한다”고 말한 것과도 무관치 않은 듯하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이처럼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꾸는 동안 총알받이가 된 곳은 시중은행이다. 암호화폐를 거래하려면 은행이 암호화폐 거래소와 계약을 맺고 가상계좌를 제공해야 한다. 그런데 금융당국이 이를 은행 ‘자율’에 맡기면서 은행에 비난이 쏟아진 것이다.

암호화폐를 ‘바다이야기’에 비유할 만큼 정부가 날을 세웠던 지난달 신한은행은 가상계좌 제공을 연기했다가, 투자자가 신한은행 계좌 및 카드를 대거 해지하자 이를 철회하는 해프닝을 겪었다. 이번에는 가상계좌 제공 시스템을 구축했지만 암호화폐 거래소와 계약을 맺지 않은 국민·KEB하나·광주은행이 타깃이 됐다.

최 원장은 “국민·하나은행은 시스템을 다 구축했는데 (거래를 안 하고 있는 만큼) 독려하겠다. 적극적으로 검토해보라”고 했다. 그가 “은행이 자율적으로 하라”고 첨언했지만, 금융권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시중은행의 공식 입장은 “시장 상황을 보고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다. 이미 암호화폐 거래소 4~5곳에 가상계좌를 제공하는 농협·신한·기업은행도 추가로 계약을 늘려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속내는 다르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 당국이) 눈치껏 해야지 뭐 하고 있느냐고 옆구리를 찌른 것이나 다름없다”며 “우회적인 표현이지만 신경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암호화폐 거래 건당 수수료는 200~300원에 불과하다. 반면 자금세탁 적발 가능성 등 은행이 떠안아야 할 위험은 크다. 금융 수장이 일관된 철학과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주지 못하는 사이 암호화폐 값은 국민 재산을 담보로 더 빠르게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이새누리 경제부 기자 newwor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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