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여당의원 "졸속정책 창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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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이 21일 실업고생 특별전형 비율을 현행 대학 정원 외 3%에서 정원 내 10%까지 확대하겠다고 한 방침을 사실상 철회했다. 이은영(문화.교육.여성분야 담당) 제6정조위원장이 16일 방침을 밝힌 지 닷새 만이다.

교육위원인 정봉주 의원은 브리핑에서 "실업고 특례 입학에 관해 당론이 정해진 것은 없다"며 "현재 실업고생 특별전형은 정원 외 5% 안이 가장 유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원 외 5% 안이 확정돼도 권고규정일 뿐"이라고 했다. '10% 안'에 대한 비판이 갈수록 거세지자 수습에 나선 인상이 역력했다.

사실 10% 확대 방안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의아했다. 여당 당론이라 하기엔 터무니없는 얘기 같았기 때문이다. "대학을 가려고 실업고로 가야 하나"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의사결정 과정이 너무 졸속이었다. 교육 양극화 해소는 지방선거를 겨냥해 정동영 의장이 외치고 있는 주요 이슈다. 지도부는 해소 방안을 강구하기 위해 실업고를 방문했다. 거기서 학부모들로부터 특별전형 비율을 늘려 달라는 요구를 들었다. 이를 반영하기 위해 실무자가 10% 안을 교육부에 문의했고, 교육부도 "그런 계획이 있다"는 답을 들었다고 한다. 이 위원장은 16일 정책의총에서 이 안을 내놓았다. 불과 3 ~ 4일 만에 일어난 일이다. 유난히 국민의 관심이 큰 대입 문제에 대해 실무자들의 주먹구구식 협의가 있었을 뿐 책임 있는 의원들과 공무원들의 당정협의는 없었던 것이다.

반발은 거셌다. 서울대 정운찬 총장은 20일 "실업고 설립 취지나 실업고 발전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학부모들은 "대입 문이 안 그래도 좁은데 실업고생을 우대하는 것은 인문고생에 대한 역차별이고, 불공정 경쟁"이라고 지적했다. 실업계 고교에서조차 "정원 외 3%도 안 지켜지는데 말이 되느냐"는 반응이 나왔다.

'책임 있는 정당'은 여당의 주요 모토다. 하지만 책임은 고사하고 "여당이 지방선거를 겨냥해 졸속 정책을 만들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됐다.

신용호 정치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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