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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동메달 김민석 포옹한 코치는…이승훈 목마 태운 ‘밥데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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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강릉 스피드스케이트 경기장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500m에 출전한 김민석이 동메달이 확정되자 보프 더용 코치와 포옹하고 있다.[연합뉴스]

[13일 오후 강릉 스피드스케이트 경기장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500m에 출전한 김민석이 동메달이 확정되자 보프 더용 코치와 포옹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13일 밤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1500m 경기에서 1분 44초 93으로 레이스를 마친 김민석(19)은 코스 안쪽에서 경기를 초조하게 지켜봤다. 자신보다 뒤에 경기를 펼친 선수들의 기록이 모두 나오자 두 주먹을 쥐고 뛸 뜻이 기뻐했다. 이들의 기록이 자신보다 뒤진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아시아 선수가 겨울올림픽 빙속 남자 1500m에서 최초로 메달을 따는 순간이었다. 김민석은 키얼트 나위스(네덜란드), 파트릭 루스트(네덜란드)에 이은 3위로 동메달을 차지했다.

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가장 먼저 달려가 포옹을 한 사람은 김민석을 지도한 코치진이었다. 그 중엔 낯선 외국인도 있었다. 바로 네덜란드 빙속 전설 보프 더 용(42)이다. 지난해 5월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 대표팀 코치로 부임한 더 용도 김민석의 메달 수상을 마치 자기가 딴 것처럼 기뻐했다. 그러면서도 관중들에게 다가가 기쁨을 함께하라고 김민석에게 지시했다. 1998년 나가노부터 2014년 소치까지 5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해 4개의 메달(금 1·은 1·동 2)을 목에 걸었던 전 메달리스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도였다.

13일 오후 강릉 스피드스케이트 경기장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500m에 출전한 김민석이 경주를 마치고 초조해하자 보프 더 용 코치가 격려하고 있다.[연합뉴스]

13일 오후 강릉 스피드스케이트 경기장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500m에 출전한 김민석이 경주를 마치고 초조해하자 보프 더 용 코치가 격려하고 있다.[연합뉴스]

김민석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코치님은 마음 편하게 하면 잘 될 것이라고 하셨다"며 "마치 팀 동료 선수처럼 옆에서 지켜주며 가르쳐 줬다.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큰 경험을 내가 받은 것 같다"고 더 용 코치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실제 이날 더 용 코치는 초조한 김민석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건네며 긴장을 풀어주는 모습을 보였다.

2010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이승훈(가운데)을 목마 태운 동메달리스트 보프 더 용(오른쪽)과 은메달리스트 이반 스콥레프(러시아).[밴쿠버올림픽 공식 유튜브 캡처]

2010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이승훈(가운데)을 목마 태운 동메달리스트 보프 더 용(오른쪽)과 은메달리스트 이반 스콥레프(러시아).[밴쿠버올림픽 공식 유튜브 캡처]

더 용 코치는 한국 팬들에겐 8년 전 부터 이미 얼굴을 알렸다. 지난 2010년 2월 밴쿠버 동계올림픽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1만m에서 동메달을 따고는 금메달리스트 이승훈(30)을 자신의 오른쪽 어깨에 올려놓고 환하게 웃었던 바로 그 사람이다. 당시 이승훈은 장거리 최강자 스벤 크라머(32·네덜란드)가 코스 착각으로 실격하는 바람에, 두 번째로 빨랐던 자신에게 금메달이 돌아간 것을 조금 민망해했다. 시상식에서 어색해하는 이승훈을 보자 옆에 있던 동메달리스트 더 용이 다가와 은메달을 딴 이반 스코프 레프(러시아)와 함께 이승훈의 다리를 잡고 번쩍 들어 올려 목마를 태워 축하해줬다. 이런 모습을 본 한국 팬들은 그를 ‘밥데용’이라 부르며 친근감을 표했고, 나중엔 ‘박대용’이란 한국식 이름까지 선사했다.

그는 올림픽뿐 아니라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금메달만 7개(1만m 5개, 5000m 2개)를 딴 ‘빙속 장거리의 전설’이다. 빙상 강국 네덜란드에서 오랜 기간 정상을 지켜 지도자로서도 큰 기대를 모았다. 2016년까지 캐나다·영국에서 선수를 겸한 플레잉코치로 활약하고 은퇴한 뒤 어디서 지도자 생활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코치직 제안 e메일을 더 용에 보냈다.

더 용은 지난해 7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밴쿠버 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3개나 따는 걸 보며 관심이 생겼다. 잠재력이 엄청나다고 판단했고, 직접 실력을 보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아시아 문화권에서 생활하는 게 처음이라 걱정이 됐지만 그런 더 용 코치를 북돋워 준 건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을 4강에 올려놓은 거스 히딩크(네덜란드) 감독이었다. 더 용 코치는 “히딩크 감독이 ‘너도 나처럼 마음을 열고 일을 한다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해줬다. 그 전화를 끊자마자 한국행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더 용의 주도로 한국 대표팀은 지난해 여름 사이클 훈련에 매진하며 체력을 키웠다. 더 용 코치는 훈련 분위기도 유쾌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담당했다. 제자들은 이런 더 용 코치에게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주황색 티셔츠에 ‘뛰는 놈 위에 나는 밥데용’이라는 글을 적어 선물하기도 했다.

지난해 7월 대표팀 선수들이 선물한 주황색 티셔츠를 입은 보프 더 용 코치. 젓가락을 들고 쌀밥을 맛있게 먹었다. 티셔츠 앞면에는 한글로 ‘스피드 스케이팅’, 뒷면에는 ‘뛰는 놈 위에 나는 밥데용이란 문구가 있다.[중앙포토]

지난해 7월 대표팀 선수들이 선물한 주황색 티셔츠를 입은 보프 더 용 코치. 젓가락을 들고 쌀밥을 맛있게 먹었다. 티셔츠 앞면에는 한글로 ‘스피드 스케이팅’, 뒷면에는 ‘뛰는 놈 위에 나는 밥데용이란 문구가 있다.[중앙포토]

더 용 코치는 지난해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는 나를 ‘밥데용’이라고 부르던데, 한국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밥’이 영어로 ‘라이스(rice)’라고 하더라. 실제로 밥을 참 좋아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당시 취재진이 준비해간 쌀밥을 선물했더니 바로 열어 맛을 보고는 엄지를 치켜세웠다. 젓가락질도 능숙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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