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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애슬론 간판' 랍신이 선물한 '특별한 태극마크' 카드

중앙일보

입력

티모페이 랍신이 취재진에 선물한 사인 카드. 평창=김지한 기자

티모페이 랍신이 취재진에 선물한 사인 카드. 평창=김지한 기자

 "한국에도 바이애슬론이 재미있다는 걸 꼭 보여줄거예요"

지난 7일, 러시아에서 귀화해 한국 바이애슬론 국가대표로 뛰고 있는 티모페이 랍신(30·조인커뮤니케이션)은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에 바이애슬론의 재미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러시아 국가대표로 활약하다 내부 파벌 싸움에 밀리고 지난해 2월 대한바이애슬론연맹의 제안으로 한국 귀화를 선택한 랍신은 "결코 올림픽용이 아닌 한국 바이애슬론의 미래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겠다. 평창올림픽 때부터 무언가를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

11일 오후 강원도 평창군 알펜시아 올림픽파크 내 바이애슬론 센터에서 열린 남자 10㎞ 스프린트 경기에서 한국의 티모페이 랍신이 역주하고 있다. [평창=연합뉴스]

11일 오후 강원도 평창군 알펜시아 올림픽파크 내 바이애슬론 센터에서 열린 남자 10㎞ 스프린트 경기에서 한국의 티모페이 랍신이 역주하고 있다. [평창=연합뉴스]

일단 첫 번째 큰 도전은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다. 랍신은 11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바이애슬론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 겨울올림픽 바이애슬론 남자 10km 스프린트에서 24분22초6으로 16위에 올랐다. 내심 메달까지 노렸던 랍신이 이날 기록한 16위는 전날 32위에 오른 안나 프롤리나(전남체육회)보다 높은 한국 바이애슬론 올림픽 역대 최고 성적이었다. 23분38초8에 결승선을 통과한 아른트 페이퍼(독일)가 금메달을 땄다.

사격과 크로스컨트리 스키가 결합된 스포츠인 바이애슬론의 스프린트 경기는 10km를 주행하는 동안 두 차례 사격을 한다. 복사(엎드려 쏴)와 입사(서서 쏴) 각 5발씩 사격하고, 1발을 실패할 때마다 벌칙주로 150m가 추가로 부여된다. 그만큼 사격 결과가 중요하다. 랍신은 "아무리 잘 달려도 사격 결과에 따라 엇갈리는 게 바이애슬론이다. 누가, 언제, 어떻게 순위가 바뀔지 모르는 만큼 재미도 크다"고 말했다. 이날 바이애슬론 세계 1위 마르탱 푸르카드(프랑스)는 사격 10발 중 3발이나 놓치는 바람에 8위로 처졌다. 대신 메달 후보로 예상하지 못했던 페이퍼가 사격을 모두 성공시키고, 주행에서도 좋은 컨디션을 보이면서 우승했다.

하지만 랍신도 아쉬움은 컸던 경기였다. 김종민 대한바이애슬론연맹 부회장은 경기 후 "랍신이 무릎만 더 괜찮았다면 충분히 더 좋은 결과도 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이날 랍신은 6.6km 지점까지 5위를 달리면서 내심 메달권도 기대하는 컨디션을 보였다. 그러나 막판에 힘이 부치면서 주행이 처졌다. 지난해 5월 무릎 수술 탓이었다. 그는 무릎 십자인대 수술을 받은 후 재활을 거쳐 올 시즌에 힘겹게 복귀했다. 랍신은 경기 후 "아무래도 지난해 무릎 수술을 받은 여파가 있어 컨디션이 100%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11일 오후 강원도 평창군 알펜시아 올림픽파크 내 바이애슬론 센터에서 열린 남자 10㎞ 스프린트 경기에서 한국의 티모페이 랍신이 사격을 하고 있다. [평창=연합뉴스]

11일 오후 강원도 평창군 알펜시아 올림픽파크 내 바이애슬론 센터에서 열린 남자 10㎞ 스프린트 경기에서 한국의 티모페이 랍신이 사격을 하고 있다. [평창=연합뉴스]

그런 어려움에도 더 이를 악물었던 건 러시아 대표를 8년간 하면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무대, 올림픽을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손을 내민 새로운 조국, 한국을 위해서 뛰겠다는 자부심도 더 강해졌다. 비록 톱10은 아니었지만 첫 올림픽 경기에서 세계 톱랭커에 올라설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겼다. 무엇보다 한국에 바이애슬론의 매력을 전달하면서 충분히 역할을 했단 평가를 받았다. 네티즌들은 "한국 바이애슬론도 올림픽에서 이런 순위를 보게 됐다" "바이애슬론을 처음 봤는데 재미있더라" 등의 반응이 많이 올라왔다.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으로 귀화한 선수들이 늘면서 이들에 대한 인식도 엇갈렸다. 일부에선 "올림픽이 끝나면 다시 본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랍신은 처음부터 귀화를 마음먹고나서 "한국 바이애슬론을 위해 뛰겠다"는 마음이 강하다. 랍신은 올림픽을 앞두고 "나는 이번 올림픽이 끝나고 나서도 겨울올림픽에 두 번 더 나가고 싶다. 그래서 한국 바이애슬론에 기여하고, 훗날엔 어린 선수들을 위한 바이애슬론학교를 한국에 열고 싶다”고 말했다.

랍신이 취재진에 선물한 사인 카드. 환하게 웃는 랍신의 초상화에 태극기가 선명하게 박혀있다. 평창=김지한 기자

랍신이 취재진에 선물한 사인 카드. 환하게 웃는 랍신의 초상화에 태극기가 선명하게 박혀있다. 평창=김지한 기자

랍신은 경기 후에도 '한국인'으로서의 마음을 표현했다. 이날 한국 바이애슬론 역대 최고 성적을 낸 랍신은 한국 취재진에게 특별한 선물을 줬다.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자신의 사인이 담긴 카드였다. 이 카드에 대해 김 부회장은 "유럽에선 월드컵,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한 경험이 있는 선수가 큰 대회를 끝내고 취재진, 관계자, 팬에게 카드를 선물하는 관례가 있다"면서 "올림픽을 앞두고 랍신이 아이디어를 내 만든 카드"라고 설명했다. 카드 배경엔 태극 마크가 선명했고, '랍신 티모페이, 세계챔피온(월드컵)'이라는 한글도 적혀있었다. 그는 러시아 대표로 뛰면서 통산 6차례 월드컵 우승을 경험했다. 또 카드 뒷면에 그의 가슴엔 태극기가 선명하게 박혀있었다. 그만큼 한국을 위해 더 뛰려는 랍신의 마음이 묻어났다.

사인 카드를 선물하는 랍신. 평창=김지한 기자

사인 카드를 선물하는 랍신. 평창=김지한 기자

랍신은 스프린트를 치른 다음날인 12일, 12.5km 남자 추적에 나선다. 스프린트 60위 이내 선수가 출전하는 추적 경기는 스프린트 결과에 따라 출발 시간을 다르게 해 치른다. 랍신은 "가장 중요한 건 사격이다. 최선을 다해 뛰겠다"고 말하면서 전의를 불태웠다.

평창=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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