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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설위원이 간다

태국인 20만 몰리는 숨겨진 국내 명소 … 스토리가 힘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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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논설위원이 간다 - 남정호의 '세계화 2.0'  

지난 7일 오전 거대한 황금빛 불두(佛頭·부처 머리) 등이 유명한 경기도 용인 와우정사 경내를 동남아 관광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와주정사 제공]

지난 7일 오전 거대한 황금빛 불두(佛頭·부처 머리) 등이 유명한 경기도 용인 와우정사 경내를 동남아 관광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와주정사 제공]

지난해 한국을 찾은 해외 관광객은 1330여만 명. 사드 여파로 전년보다 외국 관광객이 줄긴 했지만 한류에 힘입어 한국은 여전히 핫한 나라다. 작년 9월에 발표된 마스터카드 조사에서도 서울은 외국인 방문객이 가장 많은 도시 순위 중 세계 7위를 차지했다. 이렇듯 해외 관광객이 부쩍 늘면서 전에 없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 알려진 명소들이 생겨난 것이다. 이런 곳에는 공통점이 있다. 외국인들 사이에서 알려진 독특한 사연이 배여 있다는 점이다. 정작 한국인들은 잘 모르지만 많게는 한해 수십만 명의 외국인이 찾아오는 숨겨진 명소를 찾았다.

경기도 용인 와우정사에 들어가면 돌 불단 위에 놓인 높이 8m의 황금색 대형 불두가 눈길을 끈다. 최정동 기자

경기도 용인 와우정사에 들어가면 돌 불단 위에 놓인 높이 8m의 황금색 대형 불두가 눈길을 끈다. 최정동 기자

지난 7일 오전 영하 10도의 찬바람이 매서웠던 경기도 용인 남쪽의 나지막한 연화산 자락. 산기슭을 깎아 만든 주차장에 관광버스가 서더니 동남아 관광객 수십여 명을 쏟아냈다. 난생처음의 맹추위에 꽁꽁 싸매고 온 이들은 떼 지어 주차장 옆 사찰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곤 곧바로 높이 8m의 거대한 황금빛 불두(佛頭·부처의 머리)를 절 입구에서 발견하곤 탄성을 터트렸다. 바로 이곳이 국내보다 동남아에서 유명한 와우정사(臥牛精舍)다.
열반종 총본사인 이 절을 찾는 외국 관광객은 한해 30만명. 국내 관광객 15만 명의 2배나 된다. 중국·일본·미국과 서유럽 국가, 심지어 러시아에서도 찾아오지만, 그중에서도 국교가 불교인 태국인이 20만명 이상으로 70%에 가깝다. 이 때문에 경내 곳곳에는 태국어로 쓴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심지어 태국어로 낭송되는 '반야심경'의 독경 소리가 경내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경기도 용인 와우정사에 전시돼 있는 세계 최대의 통나무 와불. 인도네시아 향나무로 만들었다. 최정동 기자

경기도 용인 와우정사에 전시돼 있는 세계 최대의 통나무 와불. 인도네시아 향나무로 만들었다. 최정동 기자

와우정사에서 유명한 것은 커다란 불두만이 아니다. 인도네시아 향나무로 만든 세계 최대의 12m짜리 통나무 와불(臥佛·누운 불상), 각각 10톤이 넘는 3점의 푸른색 에메랄드 좌불(坐佛·앉은 불상)을 비롯해 태국·인도·스리랑카·중국·티베트·베트남, 심지어 러시아 등지에서 모셔온 불상이 3000여점에 달한다.

각각 10톤에 달하는 푸른빛의 태국 에메랄드 불상 3점이 수백 개의 작은 불상들 사이에 놓여 있다. 최정동 기자

각각 10톤에 달하는 푸른빛의 태국 에메랄드 불상 3점이 수백 개의 작은 불상들 사이에 놓여 있다. 최정동 기자

청동·철·돌은 물론 크리스털·백옥·호박·모래, 심지어 쌀로 만든 불상까지 만날 수 있다. 이렇듯 다양하고 진기한 불상이 모여있기에 동남아 국가에선 한국에 가면 꼭 들려야 할 불교 성지로 통한다.

경기도 용인 와우정사 불교박물관에 가면 청동·철·크리스털·백옥, 심지어 쌀과 모래로 만든 불상도 볼 수 있다. 최정동 기자

경기도 용인 와우정사 불교박물관에 가면 청동·철·크리스털·백옥, 심지어 쌀과 모래로 만든 불상도 볼 수 있다. 최정동 기자

이런 특별한 명성에 비해 와우정사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이 절이 완성된 것은 지난 1970년. 창건자인 해곡 주지 스님은 "신라가 황룡사를 지어 삼국 통일을 성취했듯, 불력을 통해 남북통일을 이룩하겠다는 마음으로 와우정사를 지었다"고 설명했다. 창건 전부터 해곡이 마음을 둔 건 외국과의 활발한 교류였다. 그는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전 세계인이 함께 기원해주면 더 쉽게 이뤄지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그가 해외 교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된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조계종 기획위원으로 일하던 1969년, 박정희 대통령 초청으로 방한한 태국의 푸미 폴 푼 공주의 안내를 맡으면서 이 나라 왕실과 각별한 인연을 맺게 됐다고 한다. 당시 영어도 잘 못 했지만 손짓 발짓을 써가며 성의있게 안내한 데 대해 감명받았는지, 이후 푼 공주는 한국을 찾은 태국 왕실 관계자들에게 와우정사에 꼭 들리도록 당부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기회 있을 때마다 태국에서 만든 불상도 이 절에 기증했다.

경기도 용인 와우정사 경내에 전시 중인 황금빛 태국 불상. 최정동 기자

경기도 용인 와우정사 경내에 전시 중인 황금빛 태국 불상. 최정동 기자

이에 대한 보답으로 해곡은 한국전 때 유엔군으로 참전했다 희생된 129명의 태국인 장병에 대한 위령제를 매년 와우정사에서 올리고 있다.
태국과는 이처럼 각별한 인연이 맺어졌지만 해곡이 신경 쓴 건 이 나라뿐이 아니었다. 그는 베트남·미얀마·인도네시아·네팔·스리랑카 등 불교 사원이 있는 나라는 모두 찾아가 교류를 트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덕에 친분이 깊어진 외국 절에서 자발적으로 불상 등을 보내와 이렇게 모인 불교 문화재가 3000여개로 늘었다.
하지만 정작 와우정사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따로 있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참배를 하면 효험이 있다는 이야기가 동남아에서 널리 퍼져 있다"고 해곡은 귀띔해 준다. 이런 믿음에 몇 년에는 태국 축구팀이 단체로 찾아와 이곳에서 참배를 했다. 이 덕인지 태국팀은 국내에서 벌어진 막강한 한국과의 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해 와우정사의 명성을 또한번 드높였다고 한다. 또 한국을 소개하는 태국 TV 프로그램에선 와우정사에 대한 이야기가 빠진 적이 드물다. 따져보면 이 곳에 보관된 수많은 명물도 명물이지만 와우정사를 특별하게 만든 건 바로 이같은 스토리의 힘인 것이다.

인기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촬영지로 유명해진 민통선 내 미군기지였던 캠프 그리브스. [경기관광공사 제공]

인기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촬영지로 유명해진 민통선 내 미군기지였던 캠프 그리브스. [경기관광공사 제공]

독특한 이야기 덕에 외국에서 더 유명한 곳은 이곳뿐만이 아니다. 파주 민간인 출입통제선(민통선) 내에 자리 잡은 캠프 그리브스도 그중 하나다. 1953년부터 미군이 주둔했던 이곳은 2007년 한국 측에 반환됐다. 이 기지의 운영을 맡게 된 경기도는 고심 끝에 2013년 기지 내 미군 장교 숙소를 숙박시설로 개조해 일반인을 상대로 병영생활 체험 행사를 운영해 왔다.
운영 초기에는 큰 호응을 얻지 못했지만 2015년 이곳이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촬영지로 사용되면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유시진 대위(송중기)와 의사 강모연 팀장(송혜교)의 사랑 이야기에 반한 동남아 관광객들이 갑자기 몰려들면서 해외에서 더 유명한 관광명소로 변모하게 것이다.

캠프 그리브스에서는 군복 입기 체험 등 '태양의 후예'와 관련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해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경기관광공사 제공]

캠프 그리브스에서는 군복 입기 체험 등 '태양의 후예'와 관련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해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경기관광공사 제공]

실제로 2016년 6월부터 시작된 태양의 후예 촬영지 관광에는 지난해 말까지 2만5000여명이 참가했는데 이 중 1만9000여 명이 외국인이었다. 이렇게 되자 관광공사 측은 새롭게 군복 입기, 군번줄 만들기, 크로마키(화상합성 기술) 체험 등 태양의 후예와 관련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해외 관광객 유치에 힘쓰고 있다.

캠프 그리브스에서는 태양의 후예에 나오는 장면에 관광객 모습을 합성하는 크로마키 사진도 만들 수 있다. [경기관광공사 제공]

캠프 그리브스에서는 태양의 후예에 나오는 장면에 관광객 모습을 합성하는 크로마키 사진도 만들 수 있다. [경기관광공사 제공]

와우정사와 캠프 그리브스가 동남아인들에게 사랑받는 곳이라면 일본인에게 유명한 명소도 있다. 임진왜란 때 왜군 장수로 참전했다 조선인으로 귀화한 김충선(金忠善)을 모신 대구 녹동서원이 바로 그곳이다.

임진왜란 때 왜군 장수로 참전했다 투항한 뒤 조선을 위해 싸웠던 김충선 장군을 모신 대구 녹동서원. [녹동서원 제공]

임진왜란 때 왜군 장수로 참전했다 투항한 뒤 조선을 위해 싸웠던 김충선 장군을 모신 대구 녹동서원. [녹동서원 제공]

사야카(沙也可)로 불리던 그는 임진왜란 때 왜병 3000명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했으나 도착 직후 투항했다. 쏟아지는 탄환 속에서 늙은 어머니를 업고 도망치는 농부를 보고는 "이런 군자의 나라를 짓밟을 수 없다"며 항복했다는 것이다. 이후 그는 김충선이란 이름을 선조로부터 하사받은 뒤 조선의 장수로 왜군과 용감하게 싸웠다. 임진왜란 후에도 이괄의 난을 평정하고 병자호란 때에도 청군 500명을 무찔렀다고 한다. 이런 사연이 1970년대 일본의 저명한 역사소설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에 의해 알려진 뒤 1992년 임진왜란 400주년을 맞아 NHK에서 그의 이야기가 방영되면서 김충선은 일본에서 일약 유명인으로 떠올랐다. 이때부터 녹동서원을 찾는 일본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게 됐다. 녹동서원 측에 따르면 위안부 합의 문제로 한일 관계가 나빠진 2016년부터는 일본 관광객이 다소 줄었지만 많을 때는 한해 3000여 명 이상의 일본인 관광객이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대구 달성군 녹동서원 내 한일우호관에 전시돼 있는 김충선 장군의 밀랍인형을 관광객들이 관람하고 있다. [달성군 제공]

대구 달성군 녹동서원 내 한일우호관에 전시돼 있는 김충선 장군의 밀랍인형을 관광객들이 관람하고 있다. [달성군 제공]

특히 김충선은 한일 간 우호의 상징으로 떠올라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찾아오는 일본 정치인 중 상당수가 이곳을 방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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