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특파원 리포트] "빙상 실크로드를 선점하라"…북극까지 뻗는 중국의 일대일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중국의 극지 탐사선 쉐롱을 타고 북극점 근처에 도착한 대원들이 탐사 작업을 하고 있다. 2017년 7월의 8차 탐험 모습이다. [북극해 신화=연합]

중국의 극지 탐사선 쉐롱을 타고 북극점 근처에 도착한 대원들이 탐사 작업을 하고 있다. 2017년 7월의 8차 탐험 모습이다. [북극해 신화=연합]

지난달 18일 핀란드 헬싱키 공항에 진객이 내렸다. 중국 쓰촨(四川)성의 대나무 숲에서 살던 판다 한 쌍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특명에 따라 이역만리 핀란드로 보금자리를 옮겨 온 것이다. 시 주석은 지난해 4월 중국 최고지도자로는 22년 만에 핀란드를 방문한 자리에서 판다 선물을 약속했다.

중국은 같은 북유럽 국가인 덴마크에도 곧 판다를 보낼 예정이다. 이 역시 지난해 5월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약속한 것이다. 알려진 대로 판다는 중국이 타국에 대해 우호 관계를 표시하는 최고의 증표다. 이밖에 시 주석은 지난해 에르나 솔베르그 노르웨이 총리를 초청해 류샤오보(劉曉波)의 노벨상 수상으로 인한 앙금을 씻고 새 출발을 약속했다. 이처럼 중국은 러시아와의 장기 밀월에 이어 북유럽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에 최근 들어 부쩍 힘을 쏟고 있다.

북극전략 백서 내고 이해당사자 강조

그 이유를 엿볼 수 있는 백서가 지난달 26일 발표됐다. 중국 국무원 주최로 열린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쿵쉬안유(孔鉉佑) 중국 외교부 부부장(차관)이 나와 ‘북극정책 백서’를 발표했다. 중국 최초일 뿐 아니라 전 세계를 통틀어서도 유례가 거의 없는 ‘북극 백서’였다. 중국이 북극 개발에 쏟는 관심은 북극 빙산을 녹일 만큼 뜨겁다. 쿵 부부장이 발표한 백서에서도 북극 개발을 선도하겠다는 의지가 묻어났다.

중국 국무원이 지난달 처음 발표한 '중국 북극전략 백서'.

중국 국무원이 지난달 처음 발표한 '중국 북극전략 백서'.

중국은 이 백서에서 스스로를 ‘근(近)북극 국가’로 규정하고 그중에서도 육상에서 북극권과 가장 가까운 나라 중의 하나로 표현했다. 북극의 기후, 환경 변화 등 모든 사정이 중국에 영향을 미친다고 서술했다. 이는 역외국가로만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며 중국도 중요한 이해 당사자란 메시지를 드러낸 것이라 볼 수 있다.

현재 북극 개발 관련 문제를 주도하는 기구는 북극평의회(Arctic Council)다. 미국, 러시아, 캐나다,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 아이슬란드 등 북극해 연안 8개국이 가입돼 있다. 중국은 러시아를 든든한 후원국으로 두고 있지만 나머지 회원국들과도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해야 북극 개발에 본격 참여가 용이해진다. 노르웨이, 핀란드, 러시아와 협력관계를 구축해 북극 항로에 해저 광통신 케이블을 까는 프로젝트에 참여키로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수에즈 운하와 맞먹는 북극항로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중국이 북극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북극항로의 개척을 들 수 있다. 북극의 빙산이 기후 온난화로 인해 녹아 해로가 열림에 따라 중국이 최대의 수혜자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남중국해와 인도양, 수에즈 운하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항로에 비해 북극 항로를 이용하면 운송기간을 보름 가량 단축할 수 있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중국의 입장에선 "북극 항로의 개척이 100여년전 수에즈 운하 개통과 같은 효과를 가져올 것"이란 분석에 솔깃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가장 눈길을 끄는 게 ‘빙상 실크로드’ 구상이다. 중국 동부 연안을 출발해 유럽으로 이어지는 항로를 육상 실크로드와 해상 실크로드에 이은 제3의 실크로드로 규정하고 ‘일대일로’ 구상과 연계한다는 전략이다.
지난해 5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일대일로와 북극항로의 결합을 제안하자 두 달 뒤 시진핑 주석은 '빙상 실크로드'란 용어로 화답했다.

자원 보고, 안보 요충 다목적 포석

또 한가지 이유는 북극권에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광대한 자원에 있다. 전 세계 미확인 천연가스 매장량의 3분의 1, 원유의 13%가 북극권에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간과할 리 없는 에너지 블랙홀 중국은 이미 발 빠르게 움직인  성과를 얻는 단계에 와 있다.

 북극해 연안의 러시아 영토인 야말 반도의 천연액화가스(LNG) 개발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중국 정부가 조성한 실크로드펀드와 국영기업인 CNPC는 각각 9.9%와 20%의 지분을 야말 프로젝트에 출자했다. 이에 따라 연간 생산량 1650만t 가운데 400만t은 중국의 몫이다. 지난해 12월부터 생산된 가스는 올 3월 말부터 북극항로를 타고 중국으로 운송된다.

중국은 이를 수송하기 위해 두께 2.1m의 얼음을 헤쳐나갈 수 있는 쇄빙LNG선을 일본과 공동으로 발주했고 이 중 첫 선박이 지난해 12월 거제의 대우조선해양에서 명명식을 가졌다. 북극 해양에 핵 추진 쇄빙LNG선이 누비고 다닐 날도 머지않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또 하나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은 안보적 고려다. 자원의 보고이자 황금 수송로란 의미는 안보 요충이란 말과 동의어다. 더구나 북극권은 양대 핵 대국인 미국과 러시아가 머리를 맞대고 있는 곳이다.

만일 이곳에 잠수함발사탄도탄(SLBM)을 내장한 핵잠수함을 배치하면 두 대국을 동시에 견제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 구축에는 군사 기지 건설도 반드시 뒤따르고 있음을 감안하면 북극도 예외가 아닐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서방은 경계, 한국엔 기회일 수도

중국의 북극 전략에 서방 국가들은 경계의 눈초리를 감추지 않고 있다. “내일의 북극해는 오늘의 남중국해와 같은 모습일 것”이란 말도 나온다. 중국의 확장 전략과 이를 저지하려는 미국의 대립이 북극으로 무대를 넓혀 갈 것이란 예상이다.

한국도 오래전부터 북극 항로에 관심을 가져왔다. 한국에 주는 북극항로의 메리트는 중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 중국을 기점으로 하는 최단 거리의 북극항로는 대한해협과 동해를 거쳐 러시아 연안으로 북상한다.

북극을 매개로 한 한ㆍ중ㆍ일ㆍ러의 지역 협력 모델이 생겨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막연한 구상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신북방정책’과 일대일로의 접점을 북극개발 협력에서 찾을 수도 있다.
예영준 베이징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