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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층·이념적 기반위에 승부 걸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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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제13대 총선은 후보나 정당은 물론 국민들에게도 예상못했던 일대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집권여당이 원내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한 4·26총선의 의미와 교훈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앞으로 4당체제의 복잡한 정국을 어떻게 헤쳐나가야할지 서진영(고대·정치학) 이각범(서울대·사회학) 표학길(서울대·경제학)교수의 좌담을 통해 짚어본다.

<편집자주>
▲서진영교수=이번 총선을 일부에서는 큰 충격이니, 이변이니 하지만 사실 작년12월의 대통령선거를 전후한 국민들의 정치의식이 그대로 표출된 것일뿐 결코 이변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36.6%의 지지율로 집권여당이 된 민정당이 불과 몇 달 사이에 지지율의 혁명적 변화를 기대했다면 지나친 과욕이겠지요.
▲이각범교수=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노태우대통령이 당선된 것은 안정과 개혁을 동시에 추구하는 국민들의 차선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번 총선은 대통령선거당시 차선의 선택에서 나타난 미진한 점을 보완하고자 하는 국민들의 욕구가 반영된 선거입니다.
▲서교수=6공화국 출범이후 통치스타일의 변화가 국민들의 호응을 받은건 사실이지만 조각이나 공천등 인사에서 나타난 것들을 보면 이같은 스타일의 변화가 내용의 변화는 아니라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심어준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선거당시 국민들의 정치성향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유인책을 하나도 내놓지 못한 상태에서 잠복된 65%의 반대표가 이번 총선에서 그대로 나타난 것이지요. 결국 명백한 정권교체는 바라지 않지만 실질적 교체는 바라는 국민들의 생각이 그대로 반영된 것입니다.
▲표학길교수=이번 총선은 민주화에 대한 국민들의 갈망도 표출됐지만 그보다는 기성의 정치문화에 대한 도전이라는 차원에서 새로운 것에 대한 갈구가 현시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입니다. 이같은 새것에 대한 추구가 한마디로 표현키 어려운 이상한 무드에 휩싸여 예상외의 결과를 가져온 것 같습니다.

<기성정치에 대한 도전>
▲서교수=이번 선거결과가 갖고있는 긍정적인 요인도 있지만 지역감정문제는 정말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역감정문제는 감정적이고 본능적인 차원으로 이어져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차원에서의 해결이 어렵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교수=지역감정이란 것이 근거없이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정책이나 이념·특정계층을 대변하다 생긴 게 아니고 「힘의 논리」로 정치가 움직이다 보니 인재배치에 있어 「경쟁의 논리」가 외면된 채 지연·학연에 좌우되어가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지요.
▲서교수=지역감정문제가 이번 총선을 계기로 정치권에 중대한 과제로 제기된 것은 좀 위험스럽지만 역으로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도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평민당의 책임이 무적 큽니다. 다행히 평민당이 새로운 신진정치세력을 흡수하면서 정치적 입지를 넓혀나가고 있는 것 같아 낙관하고싶습니다. 평민당이 진보이념의 틀속에서 지역감정을 용해시켜나가는데 성공한다면 이 난제를 풀수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표교수=평민당도 그렇겠지만 4당 모두가 환골탈태하는 내적인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향후 각정당들은 자기네 정당지도자가 안고 있는 한계성을 뚜렷이 인식하고 보수·진보세력의 정책정당으로 형상화시켜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운영체제의 개혁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또다시 과거와 같은 1인체제로 간다면 실패의 길로 갈 확률이 높습니다.
▲이교수=그동안 야당은 존립의 문제에 허덕여오느라고 정책개발을 못해왔다고 볼 수 있는데 이제는 정책개발을 서둘러야 하며 과거의 여야대립관계는 진정한 의미의 정책대결관계로 승화돼야 합니다.
▲서교수=지역적 기반이라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지지기반을 구축할 것이 아니라 계층적이고 이념적인 것으로 지지기반을 찾고 그것으로 승부를 걸어야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민주당은 온건야당으로서의 이미지를 확립해야하며 평민당은 농민·노동자·도시빈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입장을 확실히 해야하고 그런 쪽에서 정책개발을 해나가면 우리정치는 과거보다 높은 질의 정치로 변화해나갈 수 있을겁니다.

<야 정책개발 서둘러야>
▲이교수=평민당은 노동자·농민·도시빈민은 물론 중산층의 이익까지도 대변한다고 하지만 지지계층과 이익대변계층을 광범위하게 늘어놓을 것이 아니라 노동자·농민을 대변하는 진보정당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해야 할겁니다.
민주당은 진보적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중산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책개발을 추진해야하며 민정당도 성장의 논리를 충실히 대변하고 수혜 계층의 이익을 대변해주어야 합니다.
공화당은 농담삼아 유신본당이라 할 것이 아니라 다시는 유신과 같은 일이 이 나라에 있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거나 아니면 유신회귀를 위해 투쟁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확실한 당의 진로를 표방해야 합니다.
▲표교수=이제 야당은 서명파 의원들의 당선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야당통합을 주장하다 아무 정당에도 소속되지 않은채 출마한 이들을 뽑은 유권자들의 생각을 한번쯤은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교수=저는 야당통합의 필요성에 대해선 회의적입니다. 거대여당 밑에서라면 몰라도 4당 체제하에서는 야당의 통합보다는 각 정당이 지역당의 성격을 뛰어넘어 성격을 뚜렷이 하고 국민의 선택을 받는 게 낫다고 생각됩니다. 무소속의원들의 갈길은 자기가 갖고 있는 정책적 포부에 합당한 정당을 택하는 것입니다.
▲서교수=저 역시 서명파 의원의 당선에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그들의 당선은 개인적 인기때문이지 유권자들의 야당통합에 대한 메시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도 당위적으로도 야당통합은 아무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차라리 각 정당이 경쟁적으로 특징을 살려 다음 선거에서 심판을 받아야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총선은 과도적 의미의 선거였습니다. 최종적인 국민의 심판은 아직 내려지지 않은 것이지요. 야당통합의 문제도 한번 더 선거를 해봐야 나타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여 제도적 개혁 불가피>
▲표교수=이제는 정책의 구상·입안·제도화과정이 당국자의 말 한마디에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없게 된 만큼 집권당인 민정당으로서는 정책의 운영뿐 아니라 결정과정에 있어서도 광범위한 제도적 개혁이 불가피해졌습니다.
야당도 정책의 입안과정에서부터 참여해야 하게된 이상 종래의 반대위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책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책대안을 제시하려면 야당은 현재의 한사람의 보스를 중심으로한 사당화된 체제를 탈피, 지역적·세대적·계층적으로 균형을 갖춘 팀을 구성, 당을 운영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교수=거대여당이 모든 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야당은 겉도는 반대를 일삼아온 상황을 「형식적 안정」이라고 한다면 이제는 실질적·장기적 안정으로 갈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된 셈입니다.
통일·경제개발·지역정책등의 문제가 특정집단의 전유물일수 없게됐고 장외의 투쟁도 의회제도내의 논의에 의한 해결의 길이 열렸습니다.
야당은 언론관계법·사회안전법등 「민주악법」의 개폐를 포함 민생·민족발전·민주화와 관련된 실질적 문제의 시비를 밀실이 아닌 국민의 눈앞에서 공개적으로 논의할 수있게 됐습니다.
▲서교수=13대국회는 국정조사권등 국회의 권한이 강력해진데다 야권의 비대화로 여당의 독단적 운영이 불가능하고 재야인사등 비정치적 영역에서의 새로운 세력이 진출했다는 등의 특징과 관련, 앞날에 대해 비관론과 긍정론이 교차하고있습니다.
비관론은 초선의원이 압도적 다수인데다 의원들간의 이념적 성향이나 생활체험에 동질성이 결여돼있고 여야 모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발상의 대전환」이 어려울 것이라는데 근거하고 있습니다.
만성적 정치불안·위기·파국으로 치닫을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는 판단이죠.
반대로 긍정론은 비관적 가능성이 크고 그에 따른 결과가 너무 명백하기 때문에 위험을 회피하려고 함께 노력하지 않을 수 없으리란 점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긍정론을 외해서는 현재의 정부가 명목상으로는 민정당 정권이나 실질적으로는 연립정부라는 인식을 여야가 함께 갖고 새 정치질서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리라 봅니다.
▲표교수=우리 경제현실도 정치와 유리돼서는 생각할 수 없는 만큼 정치의 구조적 모순이 발전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한 경제에도 상당한 불안요소가 남아있습니다.
현재 「원고」에 대해 저항감을 갖고 있으나 독과점시장을 간접적으로 파괴하는 정책수단을 제시해주고 있으며 대외개방도 은행·보험시장등을 규제해 절름발이로 만들어놓고 개방해서 문제이지 개방자체는 경쟁력을 높이게 됩니다.
경제문제도 결국 정치현실과 직접·간접으로 깊은 연관을 맺고있기 때문에 이번 총선결과가 우리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됩니다.

<질서·균형갖춘 경제를>
▲이교수=대통령제하의 4당체제는 우리국민이 선택한 차선의 타협이었습니다.
한겨레당·민중의당등 군소정당이 몰락한 것은 야당이 난립해 견제세력으로서 기능하지 못하면 안되겠다는 국민의 생각이 반영된 것입니다.
다만 지방자치제가 확립되고 각 정당의 정책과 대표하는 계층의 특징이 공개적으로 표명될 수 있었으면 지역적 이해가 지금처럼 첨예하게 반영되지 않았겠지요.
이제 의회에서 야당이 다수를 차지한 이상 경제에서도 정부의 일방통행식 경제정책을 견제하고 시장질서를 교란하는 독점과 정경유착을 막을 수 있게 되겠지요.
지금까지의 효율성을 지나치게 추구하고 분배질서를 무시한 경제체제가 교정되고 경제가 질서와 균형을 되찾는 것은 장기적 성장에도 유리한 상황입니다. 야당은 정치적이나 경제적으로 야합하지 말고 정부에 대한 공정한 감시자의 기능을 해줄 것을 부탁하고 싶습니다.
▲서교수=이번 총선을 통해 우리 국민은 급격한 정권교체에 따른 변화는 원치 않지만 실질적 개혁은 해야한다는 메시지를 여야모두에 전달하고 있습니다.
야당이 민중 봉기적인 상황을 유도해 정치위기를 급격히 조성하는 것을 바라지 않으며 여당도 미봉책으로 넘어가지 말고 실질적 개혁으로 5공화국 유산을 청산하라는 강력한 압력입니다.
다시말해 △제대로 된 문민정치를 할 것 △지역적·계층적 갈등을 인정하고 이것을 기존정치체제와 과정 내에서 해결할 것 △국회에 대해서도 과거의 규격화된 형식적 정치를 탈피, 여야가 정치역량을 제대로 발휘하는 실질적 정치를 할 것등의 사명을 국민이 부과하고 있는 것입니다.
▲표교수=이번 선거의 결과로 국민은 전문화의 시대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정부와 정치인들은 자각해야 할 것입니다. ·
정부는 국책은행장을 과거와 같이 관료로 임명하는 구습을 버리고 은행원이 행장이 되고 교수가 총장이 되는 시대를 열고 직업관료제를 확립해야 합니다.
국회의원에 대해서도 교수출신이든, 기업인 출신이든 선거구민들은 정치인으로서 공부를 해서 전문국회의원이 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다양화된 실체를 망각하고 과거를 답습하는 한 여야는 희망이 없습니다.
▲이교수=여당은 내용이 있는 민주적 개혁을 해야하고 야당도 정책정당을 정립해 장기적 관점에서 국민에게 새로운 민주정치의 모습을 보여주어어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앞으로의 정치발전을 위해서는 현행 극회의원선거법이 반드시 개정돼야한다는 점입니다. 현행법은 확실히 국민의 실질적 의사를 반영하지 못했습니다.
각 정당의 의석과 득표율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외에도 호남에서 민정당이 23%의 지지를 얻었지만 단 한 석도 얻지 못했고 타지역에서 평민당의 의석이 없다는 것도 선거법 탓입니다.
각 지역 엘리트가 지역연고와 관계없이 정치적 입장에 따라 정당을 선택할 수 있기 위해서도, 그리고 각 지역 주민의 의사가 의석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현행선거법이 고쳐져야 합니다.

<정리=이연홍·조현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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