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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임 4000만원 넘는 증권맨들, 황당한 최저임금 위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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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A증권사의 인사담당 간부인 김모씨는 최근 진땀을 뺐다. 급격하게 오른 최저임금 때문이다. 직원 중 상당수가 1월부터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는 것으로 분석됐기 때문이다. 대졸 신입사원과 퇴직한 뒤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영업직이 그들이다. 이 회사의 대졸 초임은 4000만원이 넘는다. 계약직의 연봉도 만만찮다. 김씨는 “회사로선 아연실색할 일이었다”고 말했다. 법은 법이다. 결국 회사는 최저임금에 포함되는 직무수당을 올려 1월분 임금을 지급했다. 끼워 맞추기식으로 최저임금 위반의 오명을 피한 셈이다.

특성상 상여금·성과급 비중 높은데 #최저임금엔 기본급·직무수당만 #업계, 상여금 등 기본급에 포함 추진 #노조선 반대, 올 임협 난항 예고

김씨는 “속 사정을 모르는 외부에 최저임금도 안 주는 회사로 비칠까 어이가 없다”며 “고연봉의 금융권이 이 정도면 시장의 혼란은 미뤄 짐작이 간다”고 말했다. 이 회사가 최저임금 미달 사태를 빚은 이유는 영업과 자산 운용이 주 수익원인 증권사의 특성상 상여금과 성과급의 비중이 높아서다. 그런데 최저임금을 산정할 땐 매달 고정적으로 지급하는 돈을 따진다. 대체로 기본급 정도다. 최저임금에 포함되는 수당 이래야 직무수당 정도가 고작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올해 최저임금(시급 7530원)을 월급으로 환산하면 157만 3770원, 연봉으론 1888만5240원이다. 여기에 이 회사의 상여금 1000%를 합산하면 A증권의 최저임금은 월 262만2950원이 된다. 연봉 3147만5400원이 최저임금이란 얘기다. 물론 성과급이나 각종 수당을 제외한 금액이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증권사를 대상으로 근로감독을 하자 무더기로 최저임금 위반 판정을 받았다.

B증권 관계자는 “정부의 임금실태조사에서 늘 최상위를 차지하는 게 금융권이다. 그래서 최저임금 위반이라곤 생각도 못 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최저임금 미달액을 3년 치 소급해 한꺼번에 지급했다. 올해는 최저임금이 16.4%나 오르면서 고민이 더 깊어졌다. 그만큼 임금이 자동으로 오른다. 자칫 직급 간의 임금 차가 없는 현상도 생길 수 있다. 여기에 노조와의 임금협상에 따른 추가 인상이 불가피하다.

대부분의 증권사는 임금체계 개편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상여금 같은 것을 기본급에 산입하는 형태다. 지난해 근로감독에서 최저임금 위반 판정을 받은 D증권은 영업계약직의 급여항목을 변경했다. 중식대와 교통비를 기본급에 포함했다. A증권은 상여금 1000% 중 300%를 기본급에 흡수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F증권은 낮은 직급과 업무직원의 상여금을 본봉에 포함하는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노조가 동의할지 여부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F증권은 이 때문에 임금협상이 타결되기 전까지는 최저임금에 미달한 상태로 지급할 방침이다. A증권 관계자는 “올해 노사 간 임금협상은 최저임금 때문에 해를 넘길 수 있다”고 말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의 최저임금 제도는 격차를 더 벌리는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금융권이 이를 보여준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최저임금 정책을 전면적으로 분석하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성현 노사정위원장은 지난 7일 최저임금 토론회에서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노동자들이 성과를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격차 해소를 위해 대기업 정규직이 양보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노총은 8일 “올해 임금을 9.2%, 정액으로는 31만8479원 인상하라”고 산하 노조에 시달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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