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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성화 주자라구요?" 평범한 주부에게 온 전화, 평창 성화의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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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 성화 봉송 체험기…전수진 기자, ‘의리’ 배우 김보성, 장애우 등과  성화들고 함께 뛴 하루

7일 강원도 정선에서 진행된 성화 봉송 행사에서 주자들이 탄 셔틀버스 안에 성화봉이 진열되어 있다. [전수진 기자]

7일 강원도 정선에서 진행된 성화 봉송 행사에서 주자들이 탄 셔틀버스 안에 성화봉이 진열되어 있다. [전수진 기자]

 정선군 고한읍에 사는 주부 김난영(42)씨는 지난해 9월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평창 겨울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이었다. 김 씨는 “장난하지 마세요”라며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그는 평창 겨울올림픽 조직위원회 성화 봉송팀이 정식으로 선정한 주자가 맞았다. 정선 토박이이면서 아들 셋, 딸 하나를 둔 다자녀 엄마라는 점에서 주자로 선정했다고 성화 봉송팀 관계자는 전했다.

 올림픽 개막을 이틀 앞둔 7일 오전 9시30분, 그는 자신이 나고 자란 정선군 고한읍에서 펼쳐진 성화 봉송 릴레이의 1번 주자로 뛰었다. 봉송을 마치고 아이들과 기념사진을 찍은 뒤 주자 셔틀버스로 돌아온 김씨는 “내 고향에서 올림픽이 열린다는 것만으로도 설레는데, 직접 성화 봉송까지 해보니 가슴이 뭉클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강원도 정선에서 7일 펼쳐진 평창 겨울올림픽 성화 봉송 행사. 1번 주자인 김난영씨가 왼쪽 앞줄에 성화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전수진 기자]

강원도 정선에서 7일 펼쳐진 평창 겨울올림픽 성화 봉송 행사. 1번 주자인 김난영씨가 왼쪽 앞줄에 성화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전수진 기자]

 그와 같은 그룹에 속한 12명은 국적은 달랐지만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선 같았다. 정선군장애인단체총연합회장인 김준영씨, 스페인에서 온 올림픽 대회 재무 전문가 알베르토 리힐리아, 홍콩의 방송 프로듀서 브렌다 첸과 일본 요미우리(讀賣)신문의 와카코 유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전문기자 등으로 구성된 다국적 팀이었다. 기자도 지난 2010~2011년 평창 올림픽 유치전을 취재했던 인연으로 IOC에 의해 주자로 선정돼 함께 했다. 이날 오전 7시40분 정선 여성회관에 모여 주자 교육을 받고 함께 셔틀버스로 봉송 장소로 이동했다.

강원도 정선에서 성화 봉송 중인 본지 전수진(왼쪽) 기자와 강원랜드 문태곤 대표이사.

강원도 정선에서 성화 봉송 중인 본지 전수진(왼쪽) 기자와 강원랜드 문태곤 대표이사.

 평범하지만 스토리를 간직한 인물도 많았는데, 지역 주민인 김준영 연합회장은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가 마비된 상태지만 200m를 무사히 완주했다. 원래는 휠체어를 타고 이동할 예정이었지만 진행요원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서 완료했다. 그는 봉송 후 “지체장애인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서 걷기로 했다”며 활짝 웃었다. 이밖에도 파독 광부 아버지와 파독 간호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아이스하키 선수로 뛰고 있는 현 마틴, 16살이면서 아동의 권리 보장을 위해 운동가로 뛰고 있는 유다은 씨 등 각양각색의 인물이 포함됐다. 진행요원 정재원씨는 “연예인이건 금메달리스트이건 평범한 시민이건 모두가 똑같은 봉송 주자”라며 “다양한 국적과 배경의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낸다는 점에서 성화 봉송은 올림픽의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정선 주민들의 응원 열기도 뜨거웠다. 주자들은 집결장소인 정선군 여성회관에서 셔틀버스로 함께 이동해 각자 정해진 구간에 1명씩 내려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데, 가는 곳마다 지역 주민들이 나와 환호를 보내줬다. 주자들도 “평창 화이팅” “정선 화이팅” 등의 구호로 화답하며 뛰었다. 스페인에서 온 리힐리아는 “강원도 정선이라는 곳이 지구상에 존재한다는 것도 몰랐던 내가 여기에서 성화를 봉송한다니 신기할 정도”라며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 뜨겁게 환영해주니 감동적이다”라고 말했다. 일본의 와카코 기자는 “이번 성화봉송이 나가노(1998년)ㆍ토리노(2006년)ㆍ베이징(2008년)ㆍ소치(2014년)에 이어 다섯번째인데 평창이 가장 원활히 진행됐다”고 말했다.

 성화 봉송은 각 지역의 특색도 가미해 진행됐는데, 정선에선 지역 관광 명물인 짚와이어와 레일바이크를 이용한 일정도 포함됐다. ‘의리’ 유행어로 유명한 배우 김보성 씨가 정선 병방산 계곡에 설치된 짚와이어를 타고 성화 봉송을 했다. 김보성씨는 “활활 타오르는 성화처럼 평창도 지난 2002년 월드컵과 같은 열기로 가득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평창 강원도 정선 성화봉송을 마친 배우 김보성씨. 자신의 유행어를 활용해 "평창 성공하'으'리"라고 외쳤다. [전수진 기자]

평창 강원도 정선 성화봉송을 마친 배우 김보성씨. 자신의 유행어를 활용해 "평창 성공하'으'리"라고 외쳤다. [전수진 기자]

 직접 달려보니 성화 봉송엔 반전이 몇 개 있었다. 성화봉은 1.3㎏로 생각보다 무겁고, 봉송 시간은 약 2~3분으로 예상보다 짧다. 가장 큰 반전은 가격이다. 주자들은 자기가 들고 뛴 성화봉을 구매할 수 있는데, 가격은 하나 당 무려, 50만원이다. 봉송을 마친 후 셔틀버스에 다시 탑승하면 집결장소로 복귀해 성화 봉송 확인증을 부여 받고, 성화봉 판매부스로 안내된다.

 “너무 비싼 것 아니냐”고 묻자 판매팀 관계자는 “면세까지 해서 50만원”이라며 “비싼 건 사실이지만 많은 주자들이 망설임 끝에 결국은 구매한다”고 말했다. 기자가 속한 그룹에서도 12명 중 절반이 넘는 7명이 성화봉을 구매했다. 김준영씨는 “손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큰 맘 먹고 구매했다”고 말했다.

평창 올림픽 성화봉 모습. 주자들에게 판매도 된다. 가격이 비쌀뿐. [연합뉴스]

평창 올림픽 성화봉 모습. 주자들에게 판매도 된다. 가격이 비쌀뿐. [연합뉴스]

 이 금액은 전액 평창 올림픽 진행을 위한 후원금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성화봉 판매는 평창뿐 아니라 다른 올림픽도 마찬가지다. 지난 2012년 런던 여름올림픽 당시에도 성화봉은 400파운드(약 60만원)에 판매됐다. 전통 백자를 모티브로 흰색으로 제작됐고 비무장지대(DMZ) 철조망을 녹여서 제작해 한국만의 특별한 의미를 더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봉송로. [2018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봉송로. [2018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이렇게 주자 7500명이 발로 뛰며 옮긴 올림픽 성화는 9일 오후8시 열리는 개막식에서 올림픽스타디움의 성화대를 밝히며 평창 올림픽의 시작을 알린다.
정선=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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