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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막연한 「미국동경」비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소설과 영상의 만남을 시도해 온 K-lTV의 『드라마 초대석』이 23일『슈퍼스타를 위하여』(원작 이창동·연출 이응진)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드라마 초대석』이『TV문학관』의 이름만 다른 후속프로였다는 점에서 이는 80년 김동리의 『을화』를 시작으로 한 『TV문학관』의 폐지이기도 한 것이다.
이는 또 탤런트 출연료 인상 후의 불가피한 드라마축소작업으로 광고수익을 보장하는 일일극대신 문학의 대중성 창출에 한몫을 한 TV문예물의 폐지라는 점에서 많은 아쉬움을 남기는 것이기도하다.
이 아쉬움은 또 마지막작품인 『슈퍼스타를 위하여』가 TV드라마로서는 드물게 한미관계라는 오늘의 문제를 극화했다는 점에서 더욱 느껴진다.
『슈퍼스타를 위하여』는 직설적으로 반미를 주장하거나 미국을 노골적으로 비판하고 있지 않다. 그것이 비판한 것은 오히려 미국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가진 한국인의 의식구조다.
따라서『슈퍼스타를 위하여』는 왜곡된 한국인의 대미의식을 통해 왜곡된 한미관계를 드러내려 한 것이다.
이 드라마는 두개의 이야기구조를 갖고 있다. 미국인이 기르는 개(슈퍼스타)를 구해준 보답으로 미국행을 보장받고 자유와 기회의 거대한 제국인 미국을 동경하다가 태평양을 건너갔으나 결국 불법체류자가 되고 마는 청년의 이야기가 그 하나이며 나머지는 청년의 미국병을 이해할 수 없는 그의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시골 노인인 아버지는 아들이 미국에 건너간 뒤 6개월이라는 조건으로 개를 맡아 키우게된다. 호화스러운 미국인의 아파트에서 개 기르기는 그러나 노인에게 고문과도 같은 것이다. 아들을 희망의 나라로 보내준, 그래서 아들이 복 덩어리라고 부르는 그 개는 오직 영어만 알아들을 뿐이라 영어를 모르는 노인에게 개는 위엄 있는 외국인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또 노인을 괴롭히는 것은 그 개가 언제 자신을 해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그 두려움은 아들이 정성을 다해 돌본 개가 사실은 아들을 몸종처럼 부렸다는데서 자신도 그신분의 상하관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두려움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이 드라마는 「슈퍼스타」라는 개의 이름이 한국인에게 8·15 이후 부와 행복을 한꺼번에 가져다줄 슈퍼스타 같은 미국에 다름이 아니라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그러나 그 슈퍼스타가 이 부자에게 말 그대로 현실의 복을 갖다주었는가. 드라마 『슈퍼스타를 위하여』의 결론은 지극히 비극적이다.
미국으로 간 아들은 어느 날 불법체류자로 묶이고 아버지는 넋을 잃은 채 정신의 파탄을 겪는다. 한마디로 미국은 꿈의 나라지만 한국인은 그 꿈의 영토에서 꿈을 상실한다는 것을 이 드라마는 차분하게 그리고 냉혹하게 보여준 것이다.<박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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