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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사업 뒷거래 , 부당 대출이 정경유착 … 이번 건엔 찾을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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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정형식 부장판사)는 이번 사건에 대해 “전형적인 정경유착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권 오간 과거 비리와 다르다 판단

▶정치 권력과의 뒷거래를 배경으로 한 문어발식 사업 확장 ▶거액의 불법·부당 대출 ▶국민의 혈세로 공적 자금의 투입 등 세 가지를 대표적 정경유착의 형태라고 지적하면서다. 대신 최고 권력자에 의한 강요된 뇌물 제공이라고 봤다. 어쩔 수 없이 당했다는 의미다. 이는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라고 규정한 원심과는 180도 다른 판단이다.

이재용 부회장 수사 및 재판 일지

이재용 부회장 수사 및 재판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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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에 재판부가 잣대를 들이댈 만큼 정경유착은 한국 사회의 고질병으로 지목돼 왔다. 정경유착에서 자유로운 정권은 건국 이래 없었다.

건국 이후 첫 정경유착 사건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6월 이승만 정부에서 터진 ‘중석불 사건’이다. 국내 상사(商社)들이 대표 수출품이던 텅스텐(중석)을 수출하고 벌어들인 달러(중석불)로 밀가루와 비료를 수입해 농민들에게 팔아 폭리를 취했다. 당시 정부는 중석불로 양곡이나 비료를 수입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었다. 상사들은 500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후 이 중 일부를 다시 정치권에 상납한 것으로 조사됐다.

60년대 박정희 정부에서는 성장주의 구호 아래 대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몸집을 불리면서 정경유착의 정도가 끈끈해졌다. 고(故) 이병철 삼성 회장은 66년 이른바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재계를 은퇴해야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 넘어오면서 정경유착은 노골화됐다. 전 전 대통령은 일해재단 모금에 대기업을 동원해 598억원을 걷은 것은 물론 기업인들을 직접 압박해 돈을 받았다. 비자금을 낸 기업들은 각종 혜택을 받으며 승승장구했지만 재계 7위에 올랐을 정도로 큰 기업이던 국제그룹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체하는 황당한 일도 있었다. 이에 대해 93년 헌법재판사무소(현 헌법재판소)가 위헌 판정을 내렸다.

주요 정경유착 사례

주요 정경유착 사례

한보그룹은 노태우 정권에서 로비로 성장했다. 강남구 수서·대치지구에 아파트 건설을 추진하기 위해 노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인사들에게 150억원을 주며 수서택지개발지구 중 일부를 수의계약 형식으로 특별 분양 받았다. 이 사실이 밝혀지면서 수많은 공직자가 옷을 벗고 정태수 회장은 구속됐다.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상 대통령은 집권 초기 부정부패 척결을 강조하며 정경유착 근절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정경유착은 여전했다. 한보 비리, 김현철 게이트, ‘세풍’ 사건들이 줄줄이 터졌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는 소통령으로 군림하며 기업인들로부터 금품을 받았다.

김대중 대통령도 아들들이 각종 게이트에 연루됐다. 김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던 최규선씨가 3남 홍걸씨를 등에 업고 각종 이권에 개입한 ‘최규선 게이트’, 차남 홍업씨가 47억원을 받은 혐의로 입건된 ‘이용호 게이트’가 잇따라 터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건평씨는 세종증권 매각 과정에 개입해 금품을 받았다. 퇴임 후에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이 사건에 연루된 정황이 발견됐고 노 전 대통령의 아내 권양숙 여사가 600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권 여사의 금품수수 수사 10일 뒤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비극은 마무리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 때는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이 ‘만사형(兄)통’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실세 역할을 했다. 이 전 의원은 2011년 저축은행 비리 사건으로 불법 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됐다.

한영익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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