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남북 운명의 일주일···펜스·김영남 접촉여부 최대 관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한반도 정세가 이번 주 시작되는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분수령을 맞는다. 북한의 올림픽 참가가 남북 관계의 해빙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제재 국면 탈출을 위한 북한의 ‘미소 외교’ 전술에 불과할지 이번 주 윤곽이 나온다. 올림픽 이후 제한적 대북 선제타격론인 ‘코피 전략’이 더욱 가시화되며 ‘위기론’이 다시 번질지, 반대로 북·미 간 전향적 대화의 단초가 마련될지도 방향이 나온다. 한반도엔 운명의 일주일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4일 “특정인을 거명할 수 없겠지만 평창올림픽이 평화 모멘텀이고 북·미 대화의 시발점이 되길 바라는 게 우리 정부 입장이라 (북한 대표단의) 급은 높을수록 좋을 것”이라며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다음가는 2∼3인자 이런 분들이 오면 의미가 더 살아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는 최고위급 인사를 내려보내 올림픽 기간에 북·미 조우의 가능성을 만들라는 취지로 풀이된다. 미국에선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방한하는 만큼 북한도 김 위원장의 얘기를 전할 수 있는 수준의 인사를 보내기를 기대한다는 의미다. 북한은 이날 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단장으로 한다고 알려왔다. 이에 따라 펜스 부통령이 김영남 상임위원장을 방한 기간 중 만날지 여부가 최대 관건으로 등장했다.

남북관계 분수령 될 평창올림픽 첫 주

남북관계 분수령 될 평창올림픽 첫 주

관련기사

응원단, 예술학교·여대생 주축 될 듯

남북 관계 ‘수퍼위크’의 시작은 북한 예술단이다. 예술단 선발대가 5일 경의선 육로로 휴전선을 넘어오는 데 이어 6일 예술단(삼지연관현악단) 본단 120여 명이 악기와 공연 장비를 갖고 내려온다. 7일엔 230여 명의 대규모 북한 응원단이 내려와 강원도 인제스피디움에 짐을 푼 뒤 남북 공동 응원전 등을 준비한다. 대규모 예술단과 응원단은 양날의 칼이다. 한반도의 긴장 완화를 국내외에 보여주며 올림픽 잔치의 흥행을 돕는 장치가 될 수 있지만 북한 체제를 홍보하는 대남 선전전으로 비칠 경우 남한 여론과 미국 정치권이 코웃음을 치며 대북 거부감을 야기할 수도 있다.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 때 내려왔던 북한 응원단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이 들어 있는 현수막이 비에 젖은 모습을 보고 거세게 항의했던 전례가 있다. 이번에 내려오는 응원단의 구성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 왔던 이른바 ‘미녀 응원단’처럼 북한의 예술전문학교인 금성학원을 비롯해 중학교(한국의 고등학교 해당)와 대학의 여학생을 중심으로 꾸려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올림픽 개막식 전날인 8일은 운명의 일주일의 흐름이 결정된다. 남과 북 모두에서 북한의 속내가 일부 드러난다. 삼지연관현악단이 이날 강릉에서 첫 공연에 나선다. 평창올림픽조직위 관계자는 “다른 행사와 달리 올림픽은 개막식에 초점을 맞추는 만큼 이번에도 전야제는 없다”며 “따라서 삼지연관현악단의 공연이 전야제 성격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삼지연관현악단은 세계 명곡과 민요, 계몽기 가요를 포함해 한국 노래도 준비하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2010년의 천안함 폭침사건과 연평도 포격전을 목도했던 2030세대와 국내 보수진영이 어떻게 반응할지가 관건이다.

열병식 논란에 북 "올림픽 택일 잘못”

무엇보다 북한이 8일 강행하겠다는 건군절 열병식이 최대 뇌관이다. 북한 노동신문은 3일 “노동당 창당일(10월 10일) 이전에 있는 (한국) 국군의 날(10월 1일) 행사를 중단하라고 하면 그럴 수 있겠느냐”며 열병식 진행을 재천명했다. 노동신문은 또 “2월 8일에 건군절 기념행사를 하는 것이 그렇게도 기겁할 일이면 애당초 올림픽 개최날짜를 달리 정할 것이지 이제 와서 횡설수설하느냐”고 주장했다. 북한이 이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미국을 겨냥한 전략무기를 대거 등장시켜 대미 강 대 강 전략을 과시할 경우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분노’를 유발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미 “열병식을 개최하지 말라”는 공개 메시지를 발표했다. 북한에 대한 사전 경고다. 북한이 이를 무시하면 대미 도전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8일 청와대에선 한·미가 북한을 놓고 의견을 나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방한한 펜스 부통령을 접견하고 만찬 회동을 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올림픽을 계기로 한 북·미 대화 가능성을 타진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북한이 억류 중인 미국인 석방 카드를 꺼내면 펜스 부통령이 대화에 나설 것”이라는 구체적인 아이디어도 내놨다. 그러나 현재까지 미국은 이에 소극적이다. 그래서 8일 만찬 때 문 대통령과 펜스 부통령이 주고받을 대화가 올림픽 기간에 북·미 조우 여부를 가늠할 대목 중 하나다.

"펜스, 북 인사 조우 부담 느끼는 듯”

문 대통령은 9일 평창올림픽 개막식에 앞서 각국의 정상급 인사들을 상대로 리셉션을 주최한다. 펜스 부통령과 북한 대표단장이 함께 자리할 수 있다. 외교 소식통은 그러나 “미국 측은 펜스 부통령이 북한 인사와 한자리에 있을 수 있는 상황에 대해 꽤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방한하는 미측 인사들이 예측하지 못한 상황을 겪지 않았으면 한다는 요청이 있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정부는 미측 의사에 반해 북한 대표단 인사와 마주치는 장면이 나오지 않도록 의전에 신중을 기한다는 계획이다.

운명의 일주일의 또 다른 포인트는 문 대통령과 북한 대표단과의 만남 여부다. 청와대 관계자가 이날 “(북한 대표단의) 급이 높을수록 좋다”고 밝힌 것은 북한 대표단의 급에 따라 문 대통령이 만날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으로도 해석된다. 남북 관계 전문가인 전현준 우석대 겸임교수는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김정은 위원장의 ‘생각’을 전할 수도 있는 만큼 남북 정상 간 우회적으로 입장을 주고받는 형식이 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단 올림픽 기간에 북·미 조우는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문 대통령이 김영남을 만날 경우 만남의 의미가 퇴색될 수도 있는 게 정부의 고민이다.

정용수·전수진 기자 nkys@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