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안에 8할 결정, 실력자와 인연이 중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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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9호 04면

평검사는 배경·근거 모르는 검찰 인사

① 서울중앙지검→수원지검 여주지청→부산지검→법무부(검찰과) 또는 대검→서울의 지방검찰청
② 대전지검 홍성지청→인천지검→서울북부지검 특수부→수원지검 여주지청→창원지검 통영지청

서 검사, 장관 표창 등 잘나가다 #사무감사 전국 최다 명목 좌천 의혹 #일각선 “표적 감사 어려워” 반론도 #검찰개혁위, 인사 개혁안 마련 나서

①은 15년 차 이하 ‘잘나가는’의 평검사의 이상적 보직 경로다. ②는 서지현(45) 검사의 이력이다. 검사들 사이에선 “검사 인생 8할은 ‘3학년’ 이내에 결정된다”는 게 정설이다. 세 번째 임지까지 보면 검사 인생 전체의 윤곽이 드러난다는 이야기다. 초임지가 비선호 지역이었던 서 검사도 ‘3학년’ 때 여성 최초로 서울북부지검 특수부에 배치되면서 전기(轉機)를 맞았다. 네 번째 부임한 여주지청은 연차를 불문하고 지청에 근무할 순번이 된 검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이다. 한 부장 검사 출신 변호사는 “여주지청을 거친 뒤 승진이나 보직에서 미끄러지는 경우는 열의 하나도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열의 하나’가 서 검사다.

2011년 2월 여주지청 발령 후에도 서 검사는 2012년 12월 법무부 장관 표창을 받고 2013년 해외연수 대상자로 확정되는 등 ‘잘’나갔다. 하지만 프랑스 파리로 연수(2014년 6월~2015년 6월)를 다녀온 두 달 뒤 통영지청으로 발령이 났다. 누가 봐도 ‘좌천’으로 읽히는 인사다. 그 계기는 2014년 4월 사무감사였다. 통상 많아야 네댓 건의 지적을 받는데 서 검사는 30여 건이 걸렸다. 수년에 한 번 나올 기록이어서 전국 검찰청에 회자됐다고 한다.

이에 대해 서 검사는 지난달 26일 검찰 내부 통신망(이프로스)에 “어느 날 갑자기 사무감사에서 다수 사건을 지적받고 사무감사 지적을 이유로 검찰총장의 경고를 받고 (중략) 검찰총장 경고를 이유로 통상적이지 않은 인사 발령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성추행 문제 제기에 따른 보복 감사와 인사란 의심이다.

그러나 검찰 내부에는 성추행 사건과 4~5년 뒤의 사무감사와 인사를 연결하는 것은 무리라는 시각도 많다. 수도권 지검의 한 여성 검사는 “체크리스트에 따라 진행되는 사무감사는 표적 감사가 이뤄지기 어려운 구조다. 수십 건의 지적을 받고도 인사에 영향을 받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고 말했다.

서 검사의 주장에 대한 시선은 엇갈리지만 정작 문제의 사무감사가 2015년 8월 인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아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법무부의 한 간부는 “검찰국이 아니면 인사의 배경과 근거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한민국 검사는 자신이 어떤 기준에 따라 평가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검사복무평정규칙’(법무부령)에는 ‘1. 청렴성, 조직 헌신 및 인권 보호에 대한 기여도 2. 치밀성·성실성…’ 등등 추상적 지표만 나와 있다. S~F에 이르는 평가 등급이 있지만 자신이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그것이 승진과 보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없고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다. 임지에 관해서도 출세하는 보직 경로에 대한 경험칙과 수도권 검찰청에 세 번 이상 연속 배치될 수 없다는 불문율 정도만 알려졌다. 1~4지망을 써 낸 뒤 지휘 라인의 눈치를 살피는 게 평검사가 할 수 있는 전부다. 서울의 한 중견 검사는 “중앙지검이나 대검·법무부의 주요 보직은 전부 힘 있는 사람이 자기 사람을 심는 ‘발탁’으로 채워진다고 보면 된다. 당시의 실력자와 인연이 닿는지가 평검사의 운명을 가른다”고 주장했다. “‘빽’ 없고 힘 없으면 간부 말 잘 들어서 평가라도 잘 받아야 하니 간부의 그 어떤 ‘갑질’·폭언이나 부당한 지시에도 눈감고 입 다물게 하는 인사제도”라는 서 검사의 지적도 이런 부분을 겨냥한다.

검찰개혁위에서는 검찰 인사제도 개혁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한 검찰개혁위원은 “인사의 기준과 절차가 투명해져야 정치적 중립성 확보 방안도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데 공감대가 있다”고 말했다.

임장혁 기자·변호사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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