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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Behind & Beyond] 영화 ‘1987’ 만든 울보 감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영화 ‘1987’의 장준환 감독.

영화 ‘1987’의 장준환 감독.

영화 ‘1987’의 장준환 감독을 만난 게 지난 1월 3일이었다.

당시 누적 관객 300만 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영화 개봉 7일 만에 이룬 성과였다.

그러니 취재기자는 먼저 축하를 건네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장 감독은 쑥스러워하면서도 기쁜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세대 간 소통이 힘들고, 분열되어 있고,

공동체로서 우리가 어떻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차에 만든 영화입니다.

반응을 보면서 매번 울컥합니다.”

분명 웃으면서 시작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말미엔 떨리는 목소리였다.

순식간에 목소리가 변했다. 눈시울도 붉어졌다.

인터뷰 시작부터 이랬다.

장 감독은 익히 ‘울보 감독’으로 소문나 있었다.

하물며 자신도 ‘울보 감독’으로 불리고 있다고 인터뷰 도중 밝혔다.

아무리 ‘울보 감독’이라도 인터뷰 시작부터 울컥할 줄 몰랐다.

그리고 별명답게 인터뷰 내내 그랬다.

울컥하고, 눈시울 붉어지고,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곤 했다.

‘울보 감독’이 스스로 밝힌 ‘울컥 이야기’는 이렇다.

“영화를 보고 울컥하는 게 아니라 반응을 보며 울컥합니다.

엄마랑 영화를 같이 봤다는 딸이 ‘고맙다’며 엄마를 안아줬다는 글을 보고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이한열 열사 어머니께서 강동원을 보며

내 아들 같았다고 하시는 말씀에 울컥했습니다.”

“촬영장을 찾은 이 열사의 어머니께서 김태리 배우의 손을 잡고

‘우리 아들도 이런 여자 친구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고 말씀하실 때

함께 울었습니다.”

“시사회 때는 옆에 앉은 배우들이 울어서 따라 운 겁니다.

제가 제 영화에 감동해서 운 게 아닙니다.”

“시사회에 온 기자의 질문에 ‘갓 스물을 넘긴 두 청년이

국가 권력에 의해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는 답을 하다가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는 아직도 울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눈물은 내성도 생기지도 않는다고 했다.

영화 ‘1987’의 장준환 감독.

영화 ‘1987’의 장준환 감독.

그가 영화 탄생의 남다른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이 영화가 정말 만들어질지 의문이었습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이런 영화를 편하게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잖습니까.

정권이 불편해하는 영화를 만들면 어떤 형태로든

탄압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비밀 프로젝트로 일을 진행했다고 했다.

“노심초사 조마조마하며 준비했습니다.

그러다 ‘모세의 기적처럼’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촛불광장이 열리고, 태블릿 PC가 나온 겁니다.

기획단계에서 상상도 못 한 일이 이루어진 겁니다.”

그의 목소리는 계속 떨리고 있었다.

이따금 말을 잇지 못하고 애먼 천정만 바라봤다.

“서슬 퍼런 정국에 배역을 선뜻 맡아준 김윤석, 하정우, 강동원도 기적이죠.

이들과 처음으로 뭉친 자리에서도 제가 눈물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너무 고마웠습니다.”

영화 탄생의 뒷이야기를 듣고 보니 매 순간 그가 울컥하는 이유를 알 듯했다.

그와 인터뷰가 끝난 후 홀로 영화를 봤다. 관객은 10대부터 60~70대까지 다양했다.

장 감독이 말했던 세대 간 소통이 느껴졌다.

영화가 좋다, 나쁘다, 평가할 능력은 없다.

다만 그날 영화관에서 한 가지는 확인했다.

나 또한 ‘울보 관객’이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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