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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낙마 보도 4시간 뒤 … 빅터 차, 트럼프의 ‘코피 전략’ 맹비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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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빅터 차

빅터 차

아그레망(주재국 임명동의)까지 오고간 주한 미국대사 내정자가 막판 백악관에 의해 인사 철회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WP “NSC와 대북타격 갈등에 하차” #빅터 차 “코피 전략 미국에 리스크” #문 대통령이 아그레망 승인한 인사 #미국, 한국에 언질 없이 철회 결정 #샤프 전 사령관, 내퍼 새 후보 거론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빅터 차(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사진) 내정자가 지난해 12월 말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개인적 이견을 표명한 뒤 (주한 대사) 지명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고 보도했다.

미 정부는 지난해 12월 중순 약 6개월간의 오랜 논의 끝에 빅터 차에 대한 아그레망을 한국 정부에 신청했다. 우리 정부는 신속하게 절차를 진행해 12월 말 아그레망을 승인했고 백악관의 공식 지명 발표만 남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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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결정은 어찌 보면 문재인 대통령 및 한국 정부가 공식 승인한 아그레망을 내던진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파장이 예상된다. 게다가 미국 측은 언론에는 철회 사실을 알리면서 우리 외교부나 주미 한국대사관에는 관련 내용을 일절 전하지 않았다. “고유의 타국 인사권이기 때문”(청와대 관계자)이란 해석도 나오지만 양국이 아그레망까지 주고받은 인사를 전격 철회하면서 단 한마디 없는 것에 대한 결례 논란도 제기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아그레망이 승인된 후 긴박하게 돌아간 한 달간 사태의 전말을 복수의 핵심 관계자 전언을 토대로 정리해 본다.

지난달 16일 워싱턴을 방문한 임성남 외교부 1차관이 빅터 차를 만났다. 이때까지만 해도 철회는 꿈도 꾸지 못했다. “빨리 지명 발표를 해 달라. 그래야 상원 인준을 거쳐 2월 9일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 이전에 빅터 차가 부임할 수 있을 것 아니냐.” 임 차관은 워싱턴에서 미 정부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이렇게 다그쳤다. 이미 주미 대사관에선 인준안이 상원에 넘어올 경우 신속하게 처리될 수 있도록 의회 쪽을 설득하는 작업을 동시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미국 측은 미온적 반응으로 일관했다. 이상 기류가 번졌다.

지난달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첫 국정연설을 했다. 그는 ’북한의 핵 미사일이 조만간 미국을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한 뒤 핵무기 전력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첫 국정연설을 했다. 그는 ’북한의 핵 미사일이 조만간 미국을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한 뒤 핵무기 전력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24일 밤 초조해진 빅터 차는 마크 리퍼트 전 주한 대사 등 여러 지인에게 전화를 돌렸다. “도대체 난 어떻게 되는 거냐? 어떻게 해야 하나?”

이때를 즈음해 당초 검증 단계에선 발견되지 않았던 강연료 수입, 주한 대사 업무에 지장을 줄 수 있는 한국 기업으로부터의 후원이 확인됐다는 등의 미확인 정보가 돌았다. 빅터 차의 후견인 격인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갈등관계인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막판 뒤집기를 하려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때 빅터 차와 막역한 관계인 리퍼트 전 대사는 이렇게 충고했다고 한다. “앞으로 2주가 관건이다. 그때까지 백악관에서 연락이 없으면 ‘자진사퇴하겠다’고 해라. 말리면 (대사가) 되는 것이고 아니면 끝이다.” 하지만 2주를 채 가지 못해 빅터 차에 대한 인사 철회는 기정사실이 됐다.

WP가 꼽은 철회 배경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대북정책에서의 이견이다. 빅터 차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팀과 북한에 대한 ‘제한적 타격’을 놓고 갈등이 있었다는 것이다. NSC는 제한적 공격의 필요성을 주장한 반면, 빅터 차는 이에 반대했다고 한다. 실제 빅터 차는 WP의 보도가 나온 지 약 4시간 뒤 마치 준비라도 한 듯 WP에 ‘북한에 대한 코피(bloody nose) 전략은 미국인에게 엄청난 리스크’란 제목의 기고를 했다.

둘째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를 위협하는 트럼프의 전략에 반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마지막은 막판에 드러난 ‘검증상의 하자’다. WP는 지명 과정을 잘 아는 소식통을 인용해 “검증 과정에서 빅터 차가 주한 대사직을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하게 할 적신호(red flag)가 나타났다”고 했다. 하지만 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현재로선 빅터 차 본인이 함구하고 있고 백악관도 별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아 정확한 진상은 알 수 없다. 빅터 차를 대신할 후보로는 월터 샤프 전 주한미군사령관(예비역 대장), 마크 내퍼 대사대리 등이 거론된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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