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인건비 올린 건 정부, 뒤처리는 상가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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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최현주 산업부 기자

최현주 산업부 기자

서울 은평구에 4층짜리 상가 건물을 보유한 지인 A씨(70)에게 정부가 지난 19일 상가 보증금 및 임대료 인상률 상한선을 9%에서 5%로 낮춘 것에 대한 영향을 물었다.

“임대료 상한선이 낮아졌는데 타격이 있지 않나요?”

“무슨 소리에요. 상가 산 뒤 10년 동안 임대료를 연 3% 이상 올려본 적이 없는데…. 아무 상관 없어요.”

“대출 금리가 올라서 이자가 더 늘었다면서요. 물가 상승률 만큼이라도 올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1층에 세 들어 있는 가게 월세는 10년 동안 한 푼도 올리지 않았어요. 그저 가게 안 빼고 있어 주는 것만 해도 고마워요.”

A씨의 반응은 정부가 내놓은 방안이 실효성이 없다는 의미다. 실제로 국내 상가 시장에서 연 9% 이상 임대료를 올리는 경우는 전체의 10%에 못 미친다. 대부분 ‘부자 세입자’가 몰려 있는 인기 상권이다. 월 수천만 원씩 임대료를 내는 그들은 대부분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대상이 아니니 이번 조치와 상관도 없다.

그런데 괜찮다던 A씨가 갑자기 발끈하면서 한 말이 있다. 물 쏟은 건(최저임금 인상) 정부인데 왜 걸레질은 엉뚱하게 상가 주인에게 시키냐는 것이다. 사실 이번 방안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소상공인의 인건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조치다. 내용을 발표한 지 일주일 만에 기존 상가 임대차계약까지 소급 적용했으니 상가 주인들 입장에선 ‘개인 재산권 침해’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문제는 얻을 게 없어 보인다는 거다. 입지나 상가 규모, 업종에 따라서 천차만별이지만 일반적으로 소형음식점 운영에서 임대료 비중은 20~25% 선이다. 재료비 부담이 25~30%, 인건비가 40~45%, 마진이 10% 남짓이다. 지출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인건비 부담은 정부가 만들었는데 그 완화 조치는 다소 엉뚱해 보인다.

부작용도 걱정된다. 임대료 인상률을 낮췄다지만 상가 주인이 마음만 먹으면 꼼수는 얼마든지 있다. 계약 기간 단축이 그렇다. 예컨대 계약 기간이 2년일 경우 200만원인 월세를 이전 상한선인 9% 인상하면 218만원이다. 계약 기간이 1년일 경우 두 번에 걸쳐서 바뀐 상한선인 5%씩 올리면 2년 후엔 220만5000원이 된다.

임대료를 못 올리는 대신 관리비를 올릴 수도 있다. 관리비를 올려도 제재할 마땅한 법규가 없다. 쏟아진 물은 쏟은 사람이 닦아야 맞다.

최현주 산업부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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