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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실검’이 퍼뜨린 가짜 뉴스 유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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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진석 기자 중앙일보 기획취재담당
박진석 경제부 기자

박진석 경제부 기자

31일 ‘암호화폐 대책 발표’라는 유령이 온종일 인터넷을 달궜다. 이날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암호화폐 대책을 발표한다”는 잘못된 정보가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해 급속도로 퍼졌다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 나면서 ‘코이너’는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잘못된 정보가 생산된 건 두 가지 ‘팩트’를 결합한 추측성 보도 때문이다. 하나는 지난달 28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암호화폐 규제반대 관련 청원에 20만 명 이상이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청와대는 한 달 이내에 20만 명 이상이 청원에 동참하면 관련 담당자가 직접 답변한다. 원칙대로라면 정부가 답변을 내놓아야 할 시점이다. 여기에 김 부총리가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한다는 또 다른 사실이 겹치면서 추측이 더해지고 오보가 만들어졌다.

물론 언론은 오보 생산의 책임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이날 소동과 관련해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실검) 서비스의 부작용이 제대로 드러났다는 점이다. ‘가짜 뉴스’가 본격적으로 유통된 건 ‘암호화폐 대책 발표’가 네이버 실검 1위에 오르면서부터다. 이후 네티즌이 앞다퉈 실검 1위 이슈를 클릭하면서 잘못된 정보는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실검 서비스는 최근 들어 장점보다는 부작용이 더 크게 부각되고 있다. 여론의 향배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여론을 조작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검 1위에 오르는 이슈는 네티즌이 앞다퉈 클릭을 하기 때문이다. 최근 문재인 정부 지지파와 반대파가 ‘평창올림픽’과 ‘평양올림픽’을 실검 1위에 올리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실검 서비스 때문에 잘못된 정보가 아무런 여과 장치 없이 광범위하고도 빠르게 유포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짜 뉴스가 전혀 걸러지지 않은 이 날의 소동이 좋은 실례다. 지난해 ‘시사저널’의 ‘영향력 있는 언론’ 설문조사에서 네이버는 3위, 다음카카오는 10위를 차지했다. 법적인 언론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네이버 등 포털은 이미 언론, 그것도 매우 영향력 있는 언론이 된 지 오래다.

그렇다면 실검 서비스를 검색 지배력 강화 등 자사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생각만 하지 말고 부작용 축소 방안을 모색하는 등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하지 않을까. 전 세계적으로 드물게 한국 포털에서만 볼 수 있는 실검 서비스를 하는 게 맞는지 우리 사회가 의문을 던질 때다.

박진석 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