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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산 벽운사 백· 황금색 첨탑에 매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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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10월6일부터 며칠동안은 과거 학창시절에 보지 못한 북경시외의 명승지를 찾기로 했다.
교외 서북쪽에 만수산· 향산· 벽운사· 와불사 등의 명승지가 많은데 우리는 먼저 「썅산」(향산)으로 향했다. 북경성 서북 제1의 관문이었던 그 웅장한 「시즈먼」(서직문)은 대북경의 현대적 건설을 위해 이미 철거되었고, 지금 그 일대는 잘 포장된 대가가 시원히 「하이멘」(해구) 방면으로 뻐쳤으며 그 양편에는 거대한「따러우」(대누, 즉 빌딩)들이 우뚝우뚝 숲처럼 줄지어 장관을 이루었다.

<서직문 이미 철거>
50여년전의 이 자리는 돌조각을 잇대어 깐 위로 덜컥 하는 소리와 함께 엉덩방아를 수없이 찧으면서 나귀가 끄는 차를 타고 지나갔다.
나는 때로 주말이면 하이엔마을에 살고 있던 어머님 친구인 차도심씨(중국인 한의사)의 부인댁을 찾아 향수를 달래곤 했다. 하이덴마을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길가에서 파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찐 고구마를 한 봉지 사들고 흰오리떼가 노는 물웅덩이에 비친 고탑을 보면서 긴 회색 담을 끼고 돌아가면 조용한 마을 중간에 차 선생 부인집 대문이 나섰다.
차 선생 부인은 나보고 어린 나이에 좋은 가정을 떠나 먼 타국 당에 와서 공부하느라 고생한다면서 자기 아들 정복군과 갈이 대해 주었는데, 모자는 지금 어찌되었는지…. 달리는 차창에 그 잊을 수 없는 모자의 두 얼굴이 어른거린다.
당시 이 하이덴 마을에는 우리들이 가끔 나와 놀던 「옌징따쉐」(연경대학)와 「칭화따쉐」(청화대학)가 있었는데, 그 홍주벽와의 멋진 연경대학은 이미 일제 침략자들에 의해 외국인 경영의 학교라해서 없어졌고, 국립의 청화대학은 울창한 수립 사이로 백색의 교사가 번듯번듯 지나는 차창 밖으로 명멸한다. 우리가 지나가는 차도에는 관광객을 태운 차량이 끊이지 않았다. 차창 밖에는 맑은 가을바람과 함께 아름다운 초가을의 농촌 품경이 전개되었다.

<황금색 지붕 번쩍>
멀리 오른쪽으로 유명한 「완서우산」(만수산)이 나타난다. 산봉우리에는 「파이윈덴」 (배운전)과 「퍼샹거」(불향각)의 황금색 지붕들이 10월의 햇볕에 번뜩인다. 이 만수산에 있는 궁원을 「이허웬」(원화원)이라 하는데 1153년에 개설한 역대 제왕의 행궁으로 외국명은「Summer Palace」(하계별궁)라고 한다. 궁안의 「쿤밍후」 (곤명호)에서 청말의 서태후가 3천 궁녀를 데리고 뱃놀이를 자주 했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호변을 따라 꾸불꾸불 3백간이나 되는 홍주벽난의 회랑이 돌아가는데, 학생시절 친구들과 자주 나와서 놀던 생각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갔다.
또 멀리로는 「위찬산」(옥천산)과 그 봉우리에 우뚝 솟아있는 고탑이 보인다. 이 옥천산에서 솟아나는 샘물은 북경시내로 흘러가 북해와 중남해로 들어간다고 하는데, 지금도 50년전 여기서 그 맑고 시원한 물을 마시던 추억이 머리에 되살아났다.
우리가 지나가는 선변에는 흰오리떼가 노닐고 그 옆의 아치형 돌다리에는 어린아이들이 즐겁게 놀고 있다. 아름다운 평화경이다.
북경을 뗘난지 약 2시간만에 울창한 수목이 우거진 향산에 도착했다. 정문앞 광장화단에는 백일홍과 들국화꽃들이 만발하여 반갑게 맞아준다.

<건륭 황제 편액도>
정문은 중국 특유의 전아한 단정으로 장식하고 문설주에는 흑지금교의 「칭이왠」(정의원)이라고 쓴 「첸룽」(건륭) 황제의 평액이 걸려 있다. 안내원 말에 의하면 이 「향산공원」(이가염 필)은 금· 원· 명· 청등 역대 왕조 제왕의 이궁으로서 연경 8대 명승의 하나인데, 1754년 (청 건륭10년)에 대 토목공사를 하여 오늘과 같은 28경의 정대누각을 건설했다고 한다. 안내원의 뒤를 따라 중문을 지나고 대리석 다리를 건너가니 한 표시란에 「산림풍광미여화 고송노백가치대」라는 문구가 관광객을 즐겁게 한다. 앞을 쳐다보니 저 높은 「샹루펑」(향노봉)에는 능선을 따라 케이블카가 오르내리고 있다. 6원(약 1천8백원)짜리표를 사서 5백57m의 높은 향로봉 정상에 올라섰다.

<7백년전에 창건>
이어 향산 동쪽 기슭의 「비윈쓰」(벽운사)로 향했다. 입구에 당도하니 수많은 내외국 관광객들이 울긋불긋한 상점앞에서 토산품을 구경하느라 법석들이다. 정문을 들어서니 울창한 나무 사이로 돌계단이 뻐쳐 있고, 중문을 지나니 홍연청지금문의 「벽운사」라고 쓴 편액이 우리를 맞는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흑와홍주벽문의 많은 불전 법당들이 나타난다. 이 벽운사는 1289년 (원 지원26년)에 창건된 고찰로 일명 「우타쓰」(오탑사)라고도 하는데, 1473년(명영악9년) 에 사원 뒤쪽의 법당 정상에 5좌의 라마식 금강보탑을 세워 오탑사라는 이름이 나봤다.
하늘높이 백· 황금색의 첨탑이 솟아 울창한 수목사이로 나타나는 미관은 50여년만에 다시 대하는 감격적 경관이다. 한 장의 스케치는 내 손에 흥을 돋워 경쾌하게 움직이게 했고, 사진 또한 수없이 찍어댔다. 「뤄한덴」(나한전)에 들어가 5백 나한의 각종 형태를 감상하고 불교예술의 신비하고도 성스런 분위기 속에서 잠시 속세의 어지러움을 잊어버렸다.
긴 복도를 돌아 이 사원에서 1925년 별세한 중국의 국부 계문 선생을 모신 「손중산기념당」에 들어가 경의를 표하고 나와 다시 차를 타고 북쪽의 「워퍼쓰」(와불사)로 달렸다.

<미소짓는 와불상>
와불사의 원명은 「스팡푸줴쓰」(십방보각사)인데, 이 사원에 큰 와불(누워 있는 부처)이 있어 속칭 와불사라고도 한다. 7세기 (당 정관연간) 참건의 이 고찰 입구에는 아름운 5좌의 황금색 기와를 덮은 「파이먼」(패문)이 우뚝 서있어 많은 관광객이 「라이라이 왕왕」(내내왕왕)한다.
중문을 들어가 수목이 울창한 곳에 있는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왔다. 많은 석교와 석단을 오르내리고, 또 각종의 정원수와 괴석이 있는 석로를 걸어 들어가니 황금색 기와로 덮인 단청의 대불전이 3중의 백색 대리석 난간으로 둘러싸여 우리를 굽어본다. 그 밑으로 금붕어가 노는 연못이 녹색의 화초 사이에 나타난다.
「성월항명」이라고 쓴 편액이 걸려있는 불전앞에 이르렀다. 이 불전 안 와불이 미소짓는 얼굴로 우리를 맞아준다. 한팔을 얼굴 옆턱에 받치고 옆으로 누워 명상에 잠겨있는 와불.
욕심을 버리고 죄짓지 말라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우리에게 교훈하는 것 같았다. 불전 안 어디서인지 아름다운 소녀의 불가가 성스런 음조로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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