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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혐과 남혐은 다르다"…인권위 혁신위원의 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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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인천 부평역 인근 건물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A(20ㆍ여)씨는 화장실에 가던 중 뒤따라온 남성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B(47)씨는 망치로 A씨를 때리고, 흉기로 찌른 뒤 달아났다. 5일 만에 검거된 B씨는 경찰에 "A씨가 편의점 내에서 자신을 비웃듯 쳐다보는 느낌이 들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지난 14일, 인천 부평역 묻지마 폭행사건을 여성단체들은 '여성혐오' 범죄라고 주장했다.

지난 14일, 인천 부평역 묻지마 폭행사건을 여성단체들은 '여성혐오' 범죄라고 주장했다.

여성단체들은 이를 혐오범죄로 봤다. 이들은 지난 18일 인천 부평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2년 전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과 연결지어 "자신보다 약한 여성을 범행 대상으로 선택한 점에서 여성혐오"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한 방송에서 성소수자 패널이 일부 종교단체의 반발로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는 일이 벌어졌다. 여성민우회 등은 "여성과 젠더 문제를 다룬 토크쇼에서 성소수자를 하차시킨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며 소수자 혐오를 우려했다.

"혐오, 사회적 논의 시급해" 

지난해 11월 인권위가 노키즈존을 여성, 아동에 대한 차별로 판단하고 개선을 권고했지만, 여론은 여전히 분분하다. 사람들은 '김치녀', '~충'이란 표현을 일상적으로 쓴다. 혐오는 범죄로 나타나고, 혐오의 언어는 일상을 지배한다. 심각성을 깨달은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18일 혐오표현 특별 대응팀을 구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권위 혁신위원으로 활동하는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혐오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인권위 혁신위원으로 활동하는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혐오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인권위 혁신위원이자 혐오표현 연구자 홍성수 교수(숙명여대 법학과)는 "혐오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개인이 경제적, 사회적으로 취약한 상황에 놓였을 때 더 약한 이들을 혐오의 대상으로 삼는다. 혐오에 너그러운 사회적 분위기나 정치인의 선동을 만나면 범죄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 혐오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2012년 혐오표현 연구를 시작한 홍 교수는 2016년 인권위의 '혐오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 책임자를 맡았다. 최근 그가 펴낸 혐오를 다룬 책 『말이 칼이 될 때』는 주요서점 사회과학 분야 1,2위를 다툰다. 혐오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높다는 의미다.

'여혐'은 '남혐'과 같은 맥락 아냐   

지난해 5월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1주기' 기자회견. 우상조 기자

지난해 5월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1주기' 기자회견. 우상조 기자

한국 사회에서 여성혐오는 범죄로도 나타난다. 그렇다면 '남성혐오'도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되진 않을까. 홍 교수는 '남혐'은 성립하기 어렵다고 본다. "혐오의 문제는 욕, 비난이 소수자에게 해악을 끼치는지 아닌지다. 그 집단 겪는 차별, 억압과 연결된다. 오랜 기간 차별당했고 폭력에 노출된 여성에 대한 혐오와 남성에 대한 모욕은 그 효과가 다를 수밖에 없다."

다만 그는 "특정한 집단 내 여성 권력이 강해 남성 차별이 심한 상황이라면 '남혐'도 가능하다"면서 "미국에서도 백인에 대한 차별과 증오범죄가 가능한지 논의가 활발하다. 남성혐오를 심각한 문제라고 하기 어려운 것은 백인혐오를 사회적 문제로 보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홍 교수는 메갈리아 등 여성커뮤니티를 일간베스트 등 커뮤니티와 동일 선상에 놓기 어렵다고도 했다. 그는 "여성들이 저항의 주체로 등장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일부 소수자 공격 성향도 있지만, 다양한 형태로 분화해 페미니즘 모임 등을 만들기도 했다. 사회적 해악 측면에서 일베와 메갈리아를 동일하게 보는 건 적절치 않다"고 평가했다.

"차별과 혐오는 사회적 비용, 혐오문제 인권위 적극 나서야"  

홍 교수는 혐오표현의 해악 중 하나를 소수자 차별로 봤다. 혐오의 대상이 될 경우 학교, 회사 등 공동체에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는 "특정 구성원을 배제하는 건 엄청난 사회적 손실이다. 유럽이나 미국 회사는 다양성 정책을 강조한다. 사회적 책임 이외에도 차별하지 않는 것이 생산성의 관점에서도 더 큰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여성, 소수자 등에 대한 차별은 윤리적 영리적 관점에서도 어리석은 오판이다"고 지적했다.

서울의 한 식당에 붙은 노키즈존 문구. [중앙포토]

서울의 한 식당에 붙은 노키즈존 문구. [중앙포토]

최근 논란이 된 '노키즈존'이나 '맘충' 등 논란에 대해서도 홍 교수는 금지와 처벌이 문제를 푸는 열쇠는 아니라며 '형성적 규제'를 강조했다. 그는 "형성적 규제는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해 문제를 풀자는 것이다. 사회가 혐오나 차별에 대해 공동으로 대응해 혐오표현 발화자가 소수자 되도록 사회적 조건들을 바꾼다면 이들의 발언이 자연스럽게 설득력을 잃게 된다"고 했다. 이어 "'형성적 규제'는 표현의 자유와의 충돌 문제나 처벌 남용에 대한 우려도 없다"고 덧붙였다.

지난 29일까지 3개월간 인권위 혁신위원 활동을 한 홍 교수는 인권위에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인권위는 그동안 혐오문제에 소극적으로만 대응했다. 2013년 일베와 여성혐오가 문제 된 이후 5년이 지나서야 혐오표현 대응팀이 만들어졌다. 2016년 강남역 사건에서는 존재감도 없었다. 진정사건 접수가 없다고 손 놓고 있어선 안 된다. 현안이 무엇이고 어디에 개입해야 하는지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끝으로 홍 교수는 "혐오표현금지법이 없어 문제라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를 수수방관한 한국 현실에서 어떤 논의라도 던지고 싶었다"면서 "말이 칼이 되어 돌아오는 걸 막기 위해 모두가 현실을 민감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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