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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남매 엄마, 실수 아닌 방화"···檢, 경찰 조사 뒤엎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엄마가 불 질렀다"…검찰, 광주 3남매 사망 화재 母 구속기소

화재를 일으켜 3남매를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정모(23)씨가 지난 2일 광주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화재를 일으켜 3남매를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정모(23)씨가 지난 2일 광주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광주광역시에서 발생한 화재로 3남매가 숨진 사건을 조사 중인 검찰이 친모의 방화 때문에 불이 난 것으로 결론 내렸다.

검찰, "작은방 안쪽서 불길 치솟아" 결론 #"실수 때문에…" 경찰 조사 결과 뒤엎어 #"방 밖에서 담뱃불 껐다" 거짓 밝혀낸 것 #검찰, "생활고에 빚독촉 시달리다 방화" #숨진 광주 3남매 엄마 '방화' 혐의 기소 #귀가 후에도 40분이나 전화·문자메시지

광주지검 형사3부(부장 배창대)는 29일 중과실치사·중실화 혐의로 구속된 정모(23·여)씨에 대해 현주건조물방화치사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고 밝혔다. 이는 해당 사건이 정씨의 실수에 의해 불이 난 것으로 판단한 경찰 수사결과를 뒤엎은 것이다.

정씨는 지난해 12월 31일 오전 2시26분쯤 광주광역시 북구 두암동 한 아파트 11층에서 불이 나게 해 3남매가 숨지는 원인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이 지난달 31일 불이 나 3남매가 숨진 광주광역시 북구 두암동 아파트 현장을 통제하고 있다. [뉴시스]

경찰이 지난달 31일 불이 나 3남매가 숨진 광주광역시 북구 두암동 아파트 현장을 통제하고 있다. [뉴시스]

검찰 조사 결과 정씨는 자녀 양육에 따른 생활고와 인터넷 물품대금 사기와 관련된 잦은 변제 독촉을 받자 자녀들이 자고 있던 방에 불을 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불길이 작은방 안쪽 출입문 문턱에서 시작돼 방 내부를 전소시킨 것으로 추정된다"는 대검찰청 과학수사1과의 화재 감정 결과를 토대로 방화 때문에 불이 난 것으로 결론 내렸다. 검찰은 또 당초 정씨가 "담뱃불을 비벼껐다"고 진술한 이불의 경우 합성 솜 재질이어서 담뱃불만으로 불이 나기 어렵다는 점도 밝혀냈다.

지난해 12월 31일 오전 2시 26분쯤 광주광역시 북구 두암동 한 아파트 11층에서 불이 나 4세·2세 남아, 생후 15개월 여아 등 3남매가 숨졌다. 불이 나게 한 건 이들의 친모(22)였다. 친모가 같은 날 오전 1시53분쯤 술에 취한 채 귀가하고 있다. [사진 광주지방경찰청]

지난해 12월 31일 오전 2시 26분쯤 광주광역시 북구 두암동 한 아파트 11층에서 불이 나 4세·2세 남아, 생후 15개월 여아 등 3남매가 숨졌다. 불이 나게 한 건 이들의 친모(22)였다. 친모가 같은 날 오전 1시53분쯤 술에 취한 채 귀가하고 있다. [사진 광주지방경찰청]

검찰은 또 "담뱃불을 비벼 끈 후 화재가 발생한 작은방에 있었다"는 정씨의 진술 역시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정씨가 화재 당시 착용했던 스타킹의 탄화흔이나 피고인의 얼굴에 복사열에 의한 화상이 없는 점 등을 종합한 결과다. 조사 결과 정씨는 화재 사흘 전 친구에게 "자녀들을 보육원에 보내고 새 인생을 시작할 것"이라는 말도 남긴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경찰은 지난 8일 "담뱃불을 이불에 끄려다 불이 난 것 같다"는 정씨의 자백과 현장감식·부검 등을 통해 실화에 의해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중과실치사 및 중실화 혐의로 정씨를 검찰에 넘겼다. 검찰은 화재 원인이 단순한 실수에 의한 것인지 가정불화를 비관한 방화에 의한 것인지를 밝히기 위해 정씨의 사건 당일 행적과 추가 진술을 확보하는 데 주력해왔다.

화재로 3남매가 숨진 아파트 내부. [사진 광주 북부소방서]

화재로 3남매가 숨진 아파트 내부. [사진 광주 북부소방서]

검찰에 따르면 정씨는 사건 전날인 지난해 12월 30일 오후 7시쯤 남편에게 4세·2세 남아, 생후 15개월 여아 등 3남매를 맡긴 채 외출했다. 남편(22)은 나흘 전 이혼했지만, 생활난 등을 이유로 이날까지 한 집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정씨는 외출 후 친구와 소주 9잔을 마신 뒤 동전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31일 오전 1시53분쯤 귀가했다. 이날 아파트 폐쇄회로TV(CCTV)에는 정씨가 술에 취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상태로 엘리베이터를 타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정씨는 “귀가 후 작은방 앞 냉장고 옆에서 담배를 피우다 막내가 칭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작은방에 들어가서 달래주다가 잠이 들었다”고 진술했다.

국립과학수사대가 지난달 31일 불이 나 3남매가 숨진 광주광역시 북구 두암동 아파트의 화재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현장에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국립과학수사대가 지난달 31일 불이 나 3남매가 숨진 광주광역시 북구 두암동 아파트의 화재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현장에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당시 경찰은 “작은방에 들어가기 전 냉장고 앞에 있던 솜이불에 담뱃불을 비벼 껐다”는 정씨의 진술을 토대로 실화에 의한 화재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중실화 혐의를 적용했다. 형법상 중과실치사죄는 5년 이하 금고나 2000만원 이하 벌금, 중실화죄는 3년 이하 금고나 2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게 돼 있다.

검찰 관계자는 "정씨가 사건 당일 남편과 심하게 다툰 뒤 인터넷 물품사기 범행과 관련한 변제 독촉까지 받게 되자 방화를 결심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최경호 기자 ckh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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