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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밀양 참사 겪고도 입씨름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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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송승환 기자 중앙일보 기자
송승환 정치부 기자

송승환 정치부 기자

지난 26일 오전 경남 밀양 세종병원에서 발생한 화재사고 사망자 수가 급격히 늘어나자 정치인들도 분주해졌다. 여야 지도부는 급히 비행기와 KTX를 예매해 현장으로 향했다. 당일 기자와 점심을 하던 한 의원은 비행기 시간에 맞추기 위해 10분 만에 수저를 내려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여야가) 다 같이 내려가서 서로 남 탓만 하면 안 될 텐데…”

그의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됐다. 자유한국당은 여지없이 정부 비판에 힘을 쏟았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26일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하는 무능한 정부”라며 “문 대통령이 사과하고 청와대와 내각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 현송월 뒤치다꺼리만 하다가 참사가 발생했다”고도 했다. 27일 밀양에 도착한 홍준표 대표는 “문재인 정부는 눈물 쇼만으로 순간을 모면하는 아마추어 정권”이라고 비판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민주당은 “정치권이 네 탓 공방을 벌이는 것은 민의에 반하는 모습”이라며 “정쟁의 확산을 자제하자”(제윤경 원내대변인)는 논평을 냈지만 그 목소리는 공허했다. 오히려 지도부가 야당의 공세에 반격하며 맞불을 놨다. 추미애 대표는 지난 26일 “직전 이곳(경남) 행정의 최고 책임자가 누구였는지도 한 번 봐야 한다”고 했다. 전 경남지사였던 홍 대표를 지목한 발언이다. 민주당 송영길 의원도 트위터를 통해 “소방안전본부는 지방정부 소속으로 전 경남지사, 밀양시장, (지역구) 국회의원 모두 자유한국당”이라고 비판했다.

여당과 제1야당 사이의 ‘네 탓’ 공방은 주말에도 쉼이 없었다. 민주당 박완주 수석대변인은 28일 “한국당이 (현송월 뒤치다꺼리 탓을 하는) 낡은 색깔론에 집착해 밀양 화재 참사마저 악용하고 있다”고 비판하자 한국당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대참사 앞에서 야당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정치공세”라며 맞받았다.

국회는 지난해 12월 21일 충북 제천의 스포츠센터에서 발생한 화재 참사 이후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고치자’는 반성의 목소리를 냈다. 그래서 국회 행정안전위는 소방차 전용구역 설치 의무화 등의 내용을 담은 소방안전법 개정안을 2월 임시국회 처리 안건으로 뒤늦게나마 올렸다. 하지만 그 마저 국회 법사위에 계류돼 처리되지 못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상황이다. 국민의 안전이 위협받는 지금은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대책 논의하기에도 시간이 촉박하다. 결코 ‘네 탓’을 할 때가 아니다. 스스로 반성하며 지혜를 모으는 여야의 모습을 보고 싶다.

송승환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