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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가스 배출없이 경제성장?…대놓고 조작된 中 지방 통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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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째 주춤했던 중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지난해 껑충 뛰었다. 해외 이코노미스트들은 이를 ‘중국 경제가 개선됐다’는 신호로 해석했다.
하지만 이달 중국 정부가 발표한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6.9%. 전년도(6.7%)에 비해 0.2% 포인트 증가하는데 그쳤다. 이는 중국 정부가 일부 지방 정부 관료들이 그간 부풀려온 지방 통계치를 ‘다듬은(smoothing)’ 데 따른 것이었다.

중국 2017년 6.9% 성장 발표…조작된 지방 통계 다듬어 #지방 관료 실적 쌓고자 GDP 부풀리는 등 통계 조작하기도

중국에서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철강·석탄 의존량이 높은 지역. 색깔이 진할수록 의존비율이 높다는 뜻이다. [파이낸셜타임스]

중국에서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철강·석탄 의존량이 높은 지역. 색깔이 진할수록 의존비율이 높다는 뜻이다. [파이낸셜타임스]

해당 지방 정부는 네이멍구 자치구·랴오닝 성·텐진 빈하이신구다. 중국 북부에 위치한 세 지역은 석탄·철강 등 원자재와 중공업에 의존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지역 관료들은 2010년 이래 원유·석탄·철강 가격이 크게 하락해 지역 경제가 타격을 받자 통계 조작에 나선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처럼 중국 지방 정부서 만연한 통계 왜곡 문제를 지목했다. 그 실마리는 온실가스 배출량이었다.
 FT에 따르면 기후변화 협상가들은 지난 2014~2016년 중국의 GDP 증가세에도 불구하고 세계 온실 가스 배출량이 늘지 않은 점을 긍정적으로 봤었다. 중국이 온실가스 배출 없이도 ‘정책 효과’만으로 경제 성장을 이뤄낸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기업 실적이 대폭 개선되고 생산자 가격까지 상승하는 등 중국 경제가 개선됐다는 신호가 여럿 감지된 지난해에는 중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다시 늘었다. 이는 성장률이 큰 폭으로 상향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이어졌다. 발표 결과는 소폭 성장에 불과했다.
 결국 최근 몇년간의 탄소배출량이 주춤했던 것은 세 성시(省市)의 경제 활동이 활발치 않았던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FT는 “탄소 배출량 감소가 정책 덕분이라고 믿는 것과 중국 북부 지역의 경기 침체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고 분석했다.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중국 지방 정부들이 수정한 통계치가 (기존 통계치에 비해) 크게 바뀐다면 이들의 신용 평가등급을 하향 조정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관행으로 자리잡은 지방 통계 조작…주로 GDP·산업생산량 부풀려

지난 13일 톈진 빈하이신구는 기존에 밝혔던 2016년 GDP 규모를 1조 위안(170조 원)에서 6654억위안(112조 원)으로 바로잡았다.
이전에 발표했던 3개년 GDP 발표치는 2013년 8000억 위안(135조 원)→ 2014년 8700억 위안(147조 원)→ 2015년 9300억 위안(157조 원)으로 꾸준히 상승세였다. 이 기간의 통계치가 맞다면 2016년 텐진 빈하이신구는 전년도에 비해 무려 35%(9300억 위안→6654억 위안)의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고 양심선언을 한 것이 된다. ‘8% 성장(9300억 위안→1조 위안)’으로 발표됐던 것의 실체는 '-35% 성장'이었다는 얘기다.

네이멍구의 연도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붉은 2016년 부분은 네이멍구의 통계 조작 시인 이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바로잡은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

네이멍구의 연도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붉은 2016년 부분은 네이멍구의 통계 조작 시인 이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바로잡은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

네이멍구 지방 정부도 2016년 산업 생산량을 40% 부풀린 사실을 시인했다. 이는 중국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의 내부 감사로 적발된 데 따른 것이다. 이 지역은 2차산업(광업·제조업·건설업) 비중이 GDP의 약 절반을 차지한다.
이후 네이멍구 정부는 올해 지하철 건설 등 인프라 관련 예산을 500억 위안(8조 원) 삭감하는 등 정책 기조까지 바꿨다.

랴오닝성의 연도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지방 정부는 2011~2014년간 재정 수입이 과장됐다고 시인했다. [파이낸셜타임스]

랴오닝성의 연도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지방 정부는 2011~2014년간 재정 수입이 과장됐다고 시인했다. [파이낸셜타임스]

중국 지방 정부들이 통계를 조작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랴오닝성도 지난해 통계 조작 사실을 시인했었다. 랴오닝성 지방 정부는 앞서 ‘성장세’라고 발표했던 2016년 경기가 전년도에 비해 오히려 수축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어 랴오닝성 정부는 지난 2011~2014년에 GDP를 20% 부풀린 점도 시인했지만, 여전히 잘못된 수치를 바로잡지 않았다고 FT는 전했다.
같은해 충칭시도 재정 수입을 16억 위안(2700억원) 부풀린 사실을 인정했다.

◇엉터리 통계 내놓은 랴오닝성, 대외 신뢰도는 최상위권

눈길을 끄는 건 이처럼 엉터리 통계를 내놨던 지방 정부의 통계 신뢰도가 ‘대외적으로는’ 높게 알려진 점이다. 랴오닝성이 대표적이다.

중국 연구기관 SWS가 발표한 지방 정부 통계 신뢰도 지수. 점수가 낮을수록 신뢰도가 높다는 뜻이다. [블룸버그 홈페이지]

중국 연구기관 SWS가 발표한 지방 정부 통계 신뢰도 지수. 점수가 낮을수록 신뢰도가 높다는 뜻이다. [블룸버그 홈페이지]

최근 중국 연구기관인 SWS가 발표한 30개 지방 정부의 통계치 신뢰도 지수 자료에 따르면 랴오닝성은 통계치 신뢰도가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11~46점으로 매겨진 이 신뢰도 지수는 점수가 낮을수록 통계 신뢰도가 높다는 뜻이다. 랴오닝성은 허베이성·장시 정부(각 11점), 산시성 정부(12점)에 이어 14점을 기록했다. 높은 통계 신뢰도를 자랑했던 지방 정부마저도 통계 조작이 심각했던 것이다.
랴오닝성과 더불어 함께 통계 조작 문제가 불거진 톈진 빈하이신구·네이멍구 자치구는 각각 27점을 기록했다.

또 이 자료에 따르면 쓰촨성 남부도시인 충칭시(46점)·동부 장쑤성(45점)·산시성(40점)이 신뢰도가 가장 낮았다. 수도인 베이징시(39점) 역시 통계 신뢰도가 최하위권이었다.
SWS의 이같은 분석은 지난 2016년 중앙 정부의 세제 개혁 전후로 각 지방 정부가 보고한 재정수입, 그리고 실제보다 적게 보고됐을 가능성이 농후한 지방 정부별 담보 부채에 기초한 것이다.

◇中 지방 관료, 통계 조작 이유는…“경제성장은 곧 실적”

이처럼 중국 지방 정부의 통계 조작이 만연한 이유는 지역의 경제성장이 곧 지방 관료의 실적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실적 평가 항목은 지방 경제성장률, 세수 증가 여부 등으로 구성돼 있다. 그래서 ‘경제가 성장한 것처럼’ 통계를 조작할 유혹에 빠지기 쉽다. 또 경기 지표가 좋을수록 신용등급이 나아져 부채 조달시 금리를 낮출 수 있다.

중국 지방 정부의 지역 내 총생산(GDP)와 중앙 정부 국내총생산(GDP) 합계(단위: 조 위안) 추이. 선 그래프는 지방정부 GDP가 중앙정부를 웃도는 비율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중국 지방 정부의 지역 내 총생산(GDP)와 중앙 정부 국내총생산(GDP) 합계(단위: 조 위안) 추이. 선 그래프는 지방정부 GDP가 중앙정부를 웃도는 비율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중국에선 지방 정부들의 GDP 합계가 중앙 정부가 발표한 GDP를 웃도는 현상이 만성적이었다.

지난 2001년 중국 지방 정부들의 GDP 합계치는 중앙 정부의 GDP에 비해 10% 가량이나 높았다. 이 차이는 2012년 7%, 2016년 3.7%로 조금씩 좁혀지는 추세다. 장차오 하이퉁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지방정부 GDP 합산치는 중앙 정부에 비해 여전히 높다”고 말했다.

◇중국 지도부, 양적 성장보다 질적 성장에 무게

중국 지도부가 지방 정부가 발표하는 지표에 대한 엄격한 관리에 나선 것은 앞으론 양적 성장보다 질적 성장, 즉 ‘고질량(高質量)’에 무게를 둔 것이라는 분석이다.
중앙 정부가 경제성장률 수치에 연연하지 않기 때문에 지방 정부 역시 무리한 통계를 제시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일례로 지난해 10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이하 전인대)에서는 빈곤 탈출·지역 경제 등의 키워드가 언급됐지만, 구체적인 GDP 성장 목표는 언급되지 않았다.

또 그동안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음으로써 중국 경제를 질적으로 도약시키겠다는 자신감을 드러낸 측면도 있다.
인민일보 해외판 소셜미디어(SNS) 계정인 샤커다오는 “시진핑 국가 주석은 통계 조작을 증오하기 때문에 지방 관료들은 통계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통계 조작을 저지르는 지방 정부는 중앙 정부의 재정 지원에서 배제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닝지저 중국 국가통계국장은 “일부 지방 정부의 통계 조작이 국가 전체 경제 지표 신뢰성에 타격을 주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지도부가 양적 성장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서 지방 정부도 발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최근 중국 남부 하이난성은 “12개 도시의 관료 인사 평가에 ‘GDP 성장률’을 평가 자료로 활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당분간 서방 투자자들과 분석가들은 중국 당국의 통계 바로잡기를 통해 중국 경제의 민낯을 확인하는 동시에 경제 체질 개선 노력의 의지와 성과를 평가할 것으로 보인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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