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 속에서도 … 밀양시민, 이불 들고 나와 구조 도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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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병원 화재 현장에서 다른 이들을 도운 시민들의 활약이 빛을 발했다. 2층 병실에 있던 장영재(63)씨는 병실에 있는 작은 창문의 방충망을 손으로 뜯어내며 환자들의 대피를 도왔다. 장씨는 이후 다른 환자들이 사다리차로 대피하는 것을 보고 다른 창문 방충망을 뜯어 자신도 탈출했다.

63세 환자는 2층 창 방충망 뚫고 #다른 환자 내보낸 뒤 탈출하기도

[그래픽=박경민·차준홍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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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층에 있던 간병인은 119 구급대원과 함께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업거나 부축하며 탈출을 도왔다. 601호에 입원해 있던 강서윤(78·여)씨는 “비상벨이 10분간 울리는데도 아무 조처를 하지 않던 간병인이 화재가 실제로 발생했다는 것을 아는 순간 환자들을 업어서 대피시켰다”며 “한 명이라도 더 구조하려고 필사적으로 복도를 뛰어다녔다”고 증언했다.

화재를 목격한 밀양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인명구조 활동에 참여했다. 이들 상당수는 3시간 넘게 매서운 추위 속에 소방·경찰 대원과 함께 환자의 구조를 도왔다. 밀양 시민 오영민(24)씨는 야근을 마치고 오전 7시40분쯤 세종병원 앞을 지나다 불이 난 것을 목격했다. 오씨는 소방관들과 함께 환자들을 구하는 데 힘을 보탰다.

구조 당시 환자들은 영하의 한파 속에서 환자복만 입고 있어 엄청난 추위에 떨었다. 60대 한 환자는 “1층으로 내려와 살았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자마자 너무 추워서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며 “이때 누군가가 내 등 뒤로 담요를 덮어 주었고 그가 이끄는 대로 이동했다”고 말했다.

시민 20여 명은 세종병원 옆에 있는 장례식장에서 이불과 핫팩을 들고 나와 추위에 떠는 환자들에게 전했고, 불길이 닿지 않아 안전한 장례식장으로 환자들을 대피시켰다. 또 환자들이 무사히 내려오도록 슬라이더(미끄럼틀형 구조기구)를 붙잡는 일도 시민들이 했다.

사고 당시 세종병원 응급실에 있던 간호사는 “당직 의사를 포함해 2명 이상이 소화기를 분사했다”며 “숨질 때까지 화재 진화를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밀양=이은지·최은경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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