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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기원 글, 평양처방 약 … 팔공산의 북한 미녀응원단 흔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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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북한 예술단 140여 명과 응원단 230명이 평창을 찾는다. 응원단은 2005년 9월 인천 아시아육상선수권 대회 이후 12년 5개월 만의 방남(訪南)이다. 이른바 ‘미녀 군단’으로 통하는 북한 응원단에 다시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2003년 U대회 방문 기념관 조성 #객실에 남긴 다양한 용품들 전시 #“세탁기 사용법 묻던 모습 기억나”

대구·경북 경계에 있는 팔공산에 가면 북한 미녀 응원단의 흔적만 따로 모아둔 전시관이 있다. 경북 칠곡군 동명면 대구은행 연수원 2층 ‘북한응원단 방문기념 전시실(2003년 말 개관)’이다. 북한은 2003년 8월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에 303명의 응원단을 파견했었다. 20대 초중반의 여대생과 악단으로 구성된 미녀 응원단이다. 응원단은 연수원 5층과 6층에서 12일 동안 머물렀다.

경북 칠곡군 대구은행연수원 ‘북한응원단 방문기념 전시실’. [김윤호 기자]

경북 칠곡군 대구은행연수원 ‘북한응원단 방문기념 전시실’. [김윤호 기자]

지난 20일 찾은 전시실. 20여㎡ 공간에 미녀 응원단원들이 자필로 쓴 글이 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통일은 우리 청춘들의 것(평양음악무용대학 최은하)’ ‘조국도 빛내리, 청춘도 빛내리(김영희)’ ‘제주도 백록담 청석바위에 통일의 노래를 아로새기리(김일성종합대학 문학대학 홍현아)’ ‘통일되는 그 날에 꼭 다시 만납시다(평양음악무용대학 성악학부 허명미)’ 같은 글이다. 당시 대구시는 응원단이 머무는 객실 복도에 커다란 종이를 펼쳐두고 글을 받았다고 한다.

응원단원들이 북한으로 돌아가면서 객실에 남겨두고 간 용품들도 전시돼 있었다. 쓰다 만 ARROW(화살)라고 쓰인 치약, Beauty(아름다움)라고 쓰인 세안용 비누, 일본산 유명 브랜드 에센스와 샴푸, 평양이라는 글자가 쓰인 비닐봉지, 샤워타월, 반 이상 사용한 빨랫비누까지 보관돼 있었다. 심지어 ‘아밀라제’라고 쓰인 소화제와 평양친선병원이 처방한 약봉지, 중국산으로 추정되는 생리대까지 15년 전 상태 그대로였다.

응원단원들이 남긴 자필. [김윤호 기자]

응원단원들이 남긴 자필. [김윤호 기자]

미녀 응원단이 떠나면서 연수원 측에 감사의 표시로 건넨 선물도 눈에 띄었다. 려과담배와 룡성맥주, 배단물 등이다. 귤 맛을 내는 귤사탕과 콩으로 만든 과자도 있었다. ‘우리민족끼리 민족대실천단’이라고 쓰인 티셔츠와 응원 도구도 남아 있었다.

이날 만난 연수원의 한 간부는 응원단원들과의 일화를 소개했다. 당시 미녀 응원단의 전기·기술 파트 담당자였다.

그는 “연수원이 있는 팔공산 자락의 공기가 북한보다 별로 좋지 않다고 말을 하는 응원단원, 공동 화장실에 넣어둔 탈수기가 있는 세탁기를 사용할 줄 몰라 방에서 세탁한 옷을 말리는 모습, 비디오 녹화 작동방법을 물어보는 순수한 모습 등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고 했다. “국정원 직원 80여명이 연수원에 머물고 있어, 경비 자체가 삼엄했던 기억도 있다”고 했다.

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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