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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대여업체를 100조 회사로···미디어계 스티브 잡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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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넷플릭스의 리드 헤이스팅스 CEO가 회사 소개를 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창업 21년 만에 100조원짜리 회사로 성장했다. [중앙포토]

넷플릭스의 리드 헤이스팅스 CEO가 회사 소개를 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창업 21년 만에 100조원짜리 회사로 성장했다. [중앙포토]

1997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37살의 사업가는 빨간 우편 봉투에서 CD 한 장을 꺼냈다. 상태는 완벽했다. 자신의 사업 구상에 자신감이 생겼다. 고객이 매장을 방문하지 않아도 우편으로 DVD를 빌리거나 반납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섰다.

넷플릭스 CEO 헤이스팅스 #20대에 캘리포니아 시골서 창업 #혁신 기술, 다양한 콘텐트 앞세워 #글로벌 방송 시장 판도 크게 바꿔 #빅데이터 분석해 드라마 직접 제작 #영화 ‘옥자’ 투자 등 사업 영역 확장 #작년 4분기 실적 호재에 주가 급등

그는 벤처기업의 창업을 결심했다. 그의 수중엔 7500만 달러(약 800억원)의 종잣돈이 있었다. 첫번째로 창업한 소프트웨어 업체를 팔아치우고 받은 돈이었다. 동료와 함께 온라인 DVD 대여업체를 시작했다. 그는 넷플릭스의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리드 헤이스팅스(58)다.

캘리포니아 시골 마을에서 시작한 작은 벤처기업이 창업 21년 만에 100조원짜리 회사가 됐다. 넷플릭스는 22일(현지시간) 나스닥시장에서 지난해 4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석달 동안 이 회사의 가입자수는 833만 명 증가했다. 월가 전문가들의 예상치(634만 명)를 훌쩍 뛰어넘었다. 월 구독료를 올렸지만 유료 가입자는 오히려 더 많아지는 ‘이변’을 일으켰다.

전 세계에서 1억1760만 명이 한 달에 1만원가량 요금을 내고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영화와 드라마 등을 보고 있다. 이 회사의 지난해 4분기 매출은 33억 달러로 1년 전보다 30% 이상 뛰어 올랐다. 이날 시간외 거래에서 이 회사의 주가는 8% 넘게 올랐다. 상장 주식수에 주가를 곱한 시가총액은 1000억 달러(약 107조원)를 넘어섰다.

넷플릭스는 세계 최대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OTT) 업체다. 스트리밍은 음악·동영상 등 각종 콘텐트를 즉각 재생하는 기술이다. 고객들은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스마트폰·TV를 이용해 대기 시간이나 용량 제한 없이 마음껏 동영상 콘텐트를 즐길 수 있다. 넷플릭스는 이런 방식을 통해 글로벌 방송 산업의 지형도를 송두리째 바꿔가고 있다.

헤이스팅스는 뉴욕타임스와 인터뷰 등에서 영화 ‘아폴로13’의 연체료 경험을 사업의 출발로 소개한다. 대여 비디오를 늦게 반납해 40달러나 되는 연체료를 물게 되자 연체료 없는 대여 사업을 구상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공동 창업자인 마크 랜돌프는 “그런 일은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마케팅을 위해 편의상 지어낸 얘기라는 것이다. 그만큼 헤이스팅스의 수완이 능수능란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DVD 대여업체로 시작한 헤이스팅스는 혁신 기술과 오리지널 콘텐트를 앞세워 세계 미디어 산업을 흔들고 있다. 미국 최대의 비디오 대여점이었던 블록버스터는 넷플릭스와 경쟁에 뒤지자 결국 파산을 면치 못했다. 세계 최대 유통업체인 월마트는 DVD 대여업을 포기하고 기존 가입자를 넷플릭스에 넘겼다.

넷플릭스는 어떤 회사

● 설립 : 1997년
● 주요 사업 :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
● 직원 수 : 4700명(2016년 말)
● 본사 :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게이토스
● 연 매출 : 117억 달러(2017년)
● 유료 가입자 : 1억1760만 명

넷플릭스가 동영상 스트리밍 사업에 뛰어들자 미국 최대의 케이블TV 사업자인 컴캐스트도 내리막에 접어들었다. 이런 과정에서 ‘넷플릭스드(Netflixed)’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직역하면 ‘넷플릭스 당하다’라는 뜻이다. 미국에선 기존 사업 모델이 무너졌을 때 이 말을 쓴다.

넷플릭스 성공 신화의 상징적인 사건은 2013년 미드(미국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제작이었다. 콘텐트 제작사가 아닌 서비스 제공업체가 막대한 제작비를 쏟아붓는 것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헤이스팅스가 맞았다.

헤이스팅스는 우선 영국 BBC 원작 드라마의 판권을 사들였다. 이어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원작 드라마 시청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찾아냈다. 이들은 데이비드 핀처 감독과 케빈 스페이시 배우를 매우 좋아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제작자의 직감이 아닌 빅데이터로 연출자와 주연 배우까지 선정한 것이다. 예상대로 ‘하우스 오브 카드’는 대성공을 거뒀다.

넷플릭스는 2019년까지 오리지널 드라마를 해마다 20편씩 선보이고, 궁극적으로 세계 최대의 동영상 콘텐트 공급자가 되는 것이 목표다. 헤이스팅스는 “TV는 달리는 말과 비슷한 운명에 처할 것”이라며 “말은 자동차가 나올 때까지만 쓸모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본격적인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선 넷플릭스는 현지 언어로 된 오리지널 콘텐트 제작에도 적극적이다. 지난해 칸영화제에 초청됐던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가 대표적이다. 5000만 달러(약 535억원)의 제작비를 쓴 ‘옥자’는 공개되자마자 영화계의 거센 반발을 샀다. ‘옥자’처럼 극장 개봉을 전제로 하지 않은 영화가 많아지면 영화계의 질서가 무너진다는 이유였다. 넷플릭스는 남미의 마약 조직을 다룬 스페인어 드라마 ‘나르코스’도 제작했다.

“노트북이 내 사무실”라는 헤이스팅스는 2008년부터 사무실 칸막이와 종이 서류를 없앴다. 결재는 전자서명 시스템을 이용한다. 최근에는 노트북도 펴지 않고 스마트폰만으로 업무를 보는 날도 많다.

◆리드 헤이스팅스(Reed Hastings)

1960년 미국 동부 대도시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메인주에 있는 보든 칼리지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평화봉사단으로 아프리카 스와질란드에서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쳤다. 미국으로 돌아와서 스탠퍼드대에서 인공지능을 전공하고, 컴퓨터공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7년 동료 마크 랜돌프와 함께 넷플릭스를 창업해 현재까지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이 평가한 헤이스팅스의 보유 자산은 33억 달러(약 3조5000억원)에 달한다.

주정완·이현 기자 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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