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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제한속도 50㎞로 낮추고 운전면허 필기합격 80점으로 올린다

중앙일보

입력

 국내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지난해 기준으로 4200명에 달한다.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사진은 지난해 6월 경기도 성남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장면. [연합뉴스]

국내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지난해 기준으로 4200명에 달한다.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사진은 지난해 6월 경기도 성남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장면. [연합뉴스]

 내년부터 도심지역의 제한속도가 현행 시속 60㎞에서 50㎞ 이하로 낮춰진다. 또 2020년부터는 운전면허 필기시험의 합격 기준이 1종과 2종 모두 80점으로 올라간다.

 정부는 23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교통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국무조정실과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경찰청 등이 참여했다. 2022년까지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4200명(2017년 기준)에서 2000명으로 절반 넘게 낮추겠다는 목표다.

 보행자 사고 줄이기에 초점   

 대책에 따르면 올해 중으로 도심지역 제한속도를 낮추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개정작업이 이뤄진다. 현재 서울 일부와 세종시 등에서 시범적용 중이다. 특히 주택가나 보호구역 등은 도로 여건에 따라 시속 10~20㎞ 이하로 제한속도가 더 강화될 예정이다. 앞서 제한속도를 낮춘 독일에서는 교통사고가 20% 감소했고. 덴마크에서도 사망사고가 24%나 줄었다.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횡단보도에서 운전자의 일시 정지 의무도 강화된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의 경우 현재는 보행자가 건너고 있을 때만 일시 정지토록 하고 있으나 앞으로는 보행자가 길을 건너려는 움직임을 보일 때도 정지해야 한다.
 또 차량 신호가 빨간색일 때 교차로에서 우회전하기 전에 반드시 횡단보도 앞에서 일시 정지하는 규정도 만든다. 교차로 보행사고를 막기 위해서다. 사고 위험이 높은 교차로에는 아예 적신호 우회전 금지표지도 확대할 계획이다.

 그동안이 논란이 됐던 도로교통법 8조도 손을 본다. 현행 규정상 보·차도 미분리 도로에서 보행자는 길 가장자리로 통행해야만 한다. 이 때문에 도로공사, 불법주차 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가장자리를 벗어났다가 사고가 나면 제대로 보상을 받기 어렵게 만드는 규정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이면도로는 대부분 인도와 차도가 구분되지 않아 보행자 안전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 [중앙포토]

이면도로는 대부분 인도와 차도가 구분되지 않아 보행자 안전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 [중앙포토]

 앞으로는 도로횡단이나 주차, 공사 등의 경우 길 가장자리 외 구역으로 통행할 수 있도록 바뀐다. 차량 속도를 낮추기 위해 차로 폭을 줄이거나 굴절차선을 만드는 등 도로 설계기법도 다양화한다.

 정부가 이처럼 보행자 안전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국내 교통사고 사망자 중 보행자 비중이 40%로 가장 높기 때문이다. 인구 10만명당 보행 중 사망자 수는 3.5명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인 1.1명의 3배가 넘는다. 게다가 전체 보행사망 사고의 52%가 이면도로에서 발생하고 있다.

 김정렬 국토부 교통정책실장은 "이번 대책의 핵심이 보행자 안전 강화"라며 "교통사고 사망자를 줄이려면 보행 사고를 최대한 줄여야만 한다"고 말했다.

 운전자 안전 교육, 면허 단계부터 강화   

 내후년부터 운전면허 필기시험의 합격 기준이 1종 70점(100점 만점), 2종 60점에서 공히 80점으로 올라간다. 또 시험 문항도 현행 40개에서 교통안전 문항이 더 추가돼 50개로 늘어난다. 면허를 따는 단계부터 교통안전 정보를 제대로 익히라는 취지다.

2020년부터 운전면허 필기시험의 합격 기준선이 크게 올라간다. [중앙포토]

2020년부터 운전면허 필기시험의 합격 기준선이 크게 올라간다. [중앙포토]

 교통법규 위반자에 대한 처벌도 강화된다. 연 10회 이상 법규 위반자를 상습 법규위반자로 지정해 집중 관리할 방침이다. 대상자가 약 6만명으로 추정된다. 또 난폭운전, 보호구역 내 사고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교통사고처리특례대상에서 제외키로 했다. 향후 여론 수렴 등을 거쳐 특례대상을 축소하거나 특례법을 폐지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악성 불법주차 등의 경우 범칙금을 현행 4만원에서 8만원으로 올릴 방침이다.

 앞서 내놓았던 음주운전 단속기준 강화(혈중알콜농도 0.05%→0.03%)의 국회 통과도 계속 추진한다.

서울 동대문에서 짐을 잔뜩 실은 오토바이가 인도로 달리고 있다. [중앙포토]

서울 동대문에서 짐을 잔뜩 실은 오토바이가 인도로 달리고 있다. [중앙포토]

 화물차와 버스 등 운수업체에 대한 안전관리와 책임도 강화되며, 특히 내년부터는 배달 오토바이 사업주에게도 관리책임을 부과한다. 만일 오토바이 사고와 사업주의 안전조치 위반의 인과 관계가 인정되면 형사입건 또는 고발 조치한다는 내용이다.

전동 킥보드는 관련법 미비로 운행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중앙포토]

전동 킥보드는 관련법 미비로 운행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중앙포토]

 그동안 관련법 미비로 논란이 됐던 전동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수단의 통행방법을 규정하기 위한 법 개정과 보험상품 개발도 추진한다.

 어린이, 고령자 보호하고 관리도 엄격 

 아이들의 왕래가 잦은 학원과 유치원, 어린이집을 중심으로 보호구역을 확대한다. 2016년 기준으로 1만 6355개소를 2022년까지 1만 8155개소로 늘릴 방침이다. 또 매년 250곳씩에 과속과 주정차 단속을 위한 CCTV를 설치키로 했다. 고령 보행자를 위한 노인 보호 구역도 늘어난다. 향후 5년간 1000곳을 더 지정할 계획이다.

경북 김천에 설치된 어린이 보호구역. 차량 과속여부도 확인할 수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경북 김천에 설치된 어린이 보호구역. 차량 과속여부도 확인할 수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고령 운전자의 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한 대책도 함께 추진된다. 내년부터 75세 이상 운전자의 경우 면허 적성검사 주기가 현행 5년에서 3년으로 줄어들고, 인지지각검사가 포함된 2시간짜리 안전교육도 의무화된다.

 또 치매 등 중증질환자는 운전면허 수시적성검사 대상자로 지정돼 관리받게 된다. 현재는 6개월 이상 입원치료자에 한해서만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 운전자 고령화로 인해 교통사고가 늘어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다.

 총리실이 컨트롤타워..지자체 참여도 유도  

 정부는 앞으로 국무조정실장이 주재하는 점검협의회를 통해 교통안전 대책의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개선과제를 발굴, 조정한다는 계획이다. 또 체계적 점검과 관리를 위해 국무조정실에 가칭 '교통안전점검단'이라는 실무조직도 신설키로 했다.

 김정렬 국토부 교통정책실장은 "2004년에 총리실 중심으로 교통안전 추진체계가 마련됐으나 이후 이것이 붕괴되면서 사실상 정부 내 컨트롤 타워가 없었는데 이번에 새로 체제가 확립된 게 큰 의의"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또 지자체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교통안전관리 분야에 대한 평가를 신설해 재정 지원과 연계키로 했다. 또 지자체별로 교통안전 전담인력 확충도 유도할 방침이다. 현재 기초 지자체는 물론 대부분의 광역 지자체도 교통안전 전담 인력이 거의 없다.

 교통안전 대책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지자체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교통사고 사망자를 도로종류별로 나누면 지자체 관할도로(지방도,시·군도 등)가 무려 77%나 차지한다. 그만큼 지자체가 할 역할이 크다는 의미다.

 김기용 한국교통안전공단 박사는 "지금까지 중앙정부 주도의 안전정책을 추진해 왔는데, 이제 이러한 패러다임의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며 "지자체의 교통안전 조직과 인력을 확보하도록 하는 것이 무엇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백화점식 대책 나열, 재원 조달 불투명" 비판도

 이윤호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안실련) 사무처장은 "그동안 각 부처에서 추진하려던 안전 계획을 받아 백화점식으로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며 "보행자 안전에 초점을 뒀다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미흡하다"고 비판했다.

어린이보호구역 등 각종 보호구역의 시설이 노후화돼 개선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앙포토]]

어린이보호구역 등 각종 보호구역의 시설이 노후화돼 개선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앙포토]]

 이 처장은 또 "어린이 보호구역의 경우 매해 250개소만 시설개선을 하겠다는데 이미 운영 중인 지역의 노후화가 심각한 상황이라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울 것 같다. 고령자 적성검사도 운전기초능력 검사 수준에서 벗어나 보다 체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민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과거 대책에 비해 선택과 집중을 잘한 것 같지만, 단기간에 성과를 내려 하기 보다는 지속적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의지가 필요하다"며 "추진체계 개선과 함께 지속적인 예산확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기관 박사도 "대책은 여러 가지인데 이를 추진하기 위한 예산 확보 방안은 찾아보기 힘들다"며 "단기, 중기, 연도별 예산 소요 내역을 보다 구체적으로 따지고 이를 안정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정렬 국토부 실장은 "앞으로 대책 추진에 있어서 사실 예산이 가장 걸림돌"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보다 안정적인 재원 마련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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