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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시장의 '보이는 큰 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0년 전 2008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기 직전의 일이다. 뜨거운 여름 날 멜라닌 분유 파동이 터졌다. 분유를 먹던 어린아이들이 갑자기 부르르 떨며 죽어가는 사건이었다. 한 둘이 아니었다. 언론에 보도된 사망 사고만 12건이 넘었다. 그 후 중국 분유는 외면받을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외국 제품 수급이 뒷받쳐줄 수 없었으니 중국 당국은 허둥댔다.

시간이 흐르자 소비자들이 각자도생하기 시작했다. 홍콩과 마카오의 슈퍼로 대륙의 분유 수요가 몰려가기 시작했다. 이런 소동은 2011년 말까지 계속됐다. 안정적으로 외국 제품의 공급이 이뤄지면서 시나브로 대륙의 분유 구매 열풍은 가라앉았다. 뉴질랜드 등 외제 분유가 시장의 75%를 차지하게 된 배경이다.

중국의 쇼핑매장에 진열돼 있는 중국 국내외산 분유들. 사진=이매진차이나

중국의 쇼핑매장에 진열돼 있는 중국 국내외산 분유들. 사진=이매진차이나

올해 초 미국의 FDA격인 차이나FDA(국가식품의약품감독관리총국)는 자국 내 분유 공장에 대해 등록과 함께 안전 검사를 거치도록 규정을 강화했다. 그간 풀어줬던 분유 시장의 진입 장벽을 정비한 것이다. 개별 제품은 이미 승인제도를 통해 조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2300개였던 제품이 올해 1월 현재 950개로 축소됐다. 60%나 급감한 것이다. 통과된 제품 상당수는 자국산이었다. 외국 제품은 뉴질랜드산 54개를 비롯해 209개였다고 1월 7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보도했다.

뉴질랜드·네덜란드산이 장악한 분유시장에서 자국 기업의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포석이라고 한다. 시장에 개입해 ‘없던 줄을 새로 긋는’ 중국 당국의 정책 행보는 분유 뿐이 아니다. 예를 들자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화장품 시장도 대표적이다. 중국의 화장품 시장 규모는 530억 달러(약 56조 5000억 원)로 추산된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중국의 화장품 시장은 2020년 620억 달러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자국 화장품에는 예외로 삼은 동물실험 절차를 외국 제품에는 필수로 요구했다. 마케팅과 유통망이 주요 승부처인 소비재 시장에서 차이나 제품이 시장 점유율을 높여갈 수 밖에 없는 구조를 중국 정부가 구축해주고 있는 현실이다.

중국 당국의 거침 없는 행보는 모양새가 투박하고 거칠어서 그렇지 납득 못할 일은 아닌 측면도 있다. 국제 무역 관행과 충돌하지 않는 선에서 할 수만 있다면 자국 시장 방어를 손 놓고 있을 정부가 어디 있겠나.

문제는 중국 당국의 개입이 시장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영·국유기업에 중국 공산당 조직이 설치돼 기업을 당의 정무적 영향력 아래에 뒀다. 기업에 설치된 당조(黨組)의 서기는 이사회의 이사장이 맡곤 했다. 외자기업이라고 당 조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규모의 문제일 뿐 중국에 진출한 외자기업의 70% 이상이 크고 작은 당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이 조직은 업무 시간에도 당 관련 활동에 참여할 수 있고 그에 대한 수당 지급도 제도적으로 뒷받침받고 있다. 지난해 10월 중국 공산당 당대회에서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모든 사업에 대해 당의 영도를 견지해야 한다”고 천명한 뒤 이런 기류는 앞으로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제조업에서 서비스 산업으로 경제 체질 개선을 추진하고 있는 중국이지만 변화의 격류가 몰려오기 전에 사회 구석구석까지 당의 모세혈관을 심어놓겠다는 말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이는 게 상식인 시장조차 ‘보이는 큰 손’의 존재감으로 통제하고 있는 중국식 자본주의의 현주소다.

시장에 통용되는 교훈 가운데 정부 정책에 맞서지 말라는 말이 있다. 중국에선 사전에 정부와 기업이 조율을 끝내고 나오는 정책이기 때문에 맞서고 말고 할 것도 없는 셈이다. 하지만 독창적 발상과 도전 정신으로 위기를 돌파하면서 성장하고 발전하는 기업의 생리를 이렇게 예측 가능 범위에 가둬두는 중국식 자본주의가 어떤 모델을 내놓게 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차이나랩 정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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