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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문 대통령의 ‘선 허용-후 규제’ 약속을 지켜보겠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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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재인 정부가 기업 혁신과 신기술 융합을 가로막아 온 규제 혁파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문 대통령은 어제 규제혁신토론회에서 “앞으로 규제 때문에 (세계 흐름에) 뒤떨어진다는 말은 없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신제품과 신기술은 시장 출시를 우선 허용하고, 필요 시 사후 규제하는 방식으로 규제 체계를 전면적으로 전환해 보자”고 말했다. 또 “근거 규정이 있어야만 사업을 할 수 있다는 전제 자체를 재검토해 달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 “혁명적 규제 혁신” 밝혀 #이명박·박근혜 정부 용두사미로 끝나 #이번엔 해내야 ‘냄비 속 개구리’ 탈출

문 대통령은 이날 기업 현장 곳곳에서 혁신을 가로막는 사례를 일일이 제시하면서 규제 혁신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J노믹스(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의 성공을 위해선 혁신성장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규제 혁파가 출발점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전기자동차를 육성하자면서 1, 2인승 초소형 전기차를 한동안 출시하지 못했다. 국내에서는 기존 자동차 분류 체계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그랬다”고 지적했다. 이어 “협동작업장 안에 사람이 있으면 로봇은 반드시 정지상태여야 한다는 규정도 마찬가지”라면서 “이 규제 때문에 사람과 로봇이 공동작업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은 세계적 흐름에 뒤처져 ‘갈라파고스 한국’이라는 자조적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사업 모델도 한국에선 발 붙이기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정보기술(IT) 분석기관 테크앤로에 따르면 세계 100대 스타트업 중 우버·에어비앤비 등 새로운 사업 모델의 절반 이상이 국내에선 불허되거나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한국이 ‘냄비 속 개구리’가 되지 않도록 지난 9년 동안 발버둥을 쳤다. 이들은 각각 ‘규제 전봇대 뽑기’와 ‘손톱 밑 가시 제거’ 작전을 벌였다. 하지만 모두 ‘용두사미’로 끝났다. 대통령이 처음엔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정쟁에 빠진 국회의 벽에 가로막히거나, 규제 권력을 휘두르는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에 발목이 잡혔다.

문 대통령은 “혁명적 접근”이라는 표현으로 이런 실패의 굴레를 끊겠다는 결기를 드러냈다. “기업인들이나 혁신적 도전자들이 겪었을 좌절과 실망감을 정부가 함께 절실하게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강조했다. 규정을 보수적으로 해석하며 현장 목소리를 외면해 온 관료들의 복지부동을 질타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현장규제 개선 과제를 분석해 보니 법령이나 제도개선 없이 부처의 적극적 해석만으로 풀 수 있는 규제가 32%에 달했다”고도 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정부가 대통령의 의지를 현실화시키는 것이다. 대통령이 강조한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사전허용·사후규제) 방식과 규제 샌드박스(신기술에 기존 규제 면제)는 속도감 있게 도입돼야 한다. 노동개혁을 병행해야 효과를 본다는 점도 잊어선 안 된다. 이른바 진보정부가 이것만 해내면 한국 경제가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 백번 말보다 과감한 실천이 그런 과실을 가져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