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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낭만주먹 낭만인생 1. 풍운아 방동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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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안 해본 일 없는 '조선 3대 입담꾼'

"기인.주먹.낭인(浪人)…. 뭐라고 불러도 상관없어. 사실 나는 시골 머슴.패션디자이너에서 승려.공장장.CEO까지 안해본 게 없잖아. 서독 광부생활과 중동 근무도 해봤고, 1960년대 프랑스 유랑 시절에는 외국 건달과 꽤나 시끄러운 싸움판도 벌여 봤어. 그리고 집시까지 해봤으니 원, 이게 낭만인생인지 뭔지…."

예사롭지 않은 삶의 풍운아 방동규(71)씨는 문단과 미술판에서 '배추'로 통한다. 별명이자 아호인 배추는 6.25 합동학교 시절 베잠방이 차림의 허름한 옷차림새가 배추장수 같다 해서 붙여졌다. 그 배추의 숱한 일화들은 이리저리 옮겨다니면서 전설의 반열에 오른 지 오래고,'조선의 3대 구라(입심)'라는 수식어도 늘 붙어다닌다.

내일부터 중앙일보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연재할 방씨는 "몸뚱이에 의지한 삶, 때론 만화 같은 삶을 가감없이 털어놓겠다"고 밝혔다. 단 "흔한 위인전들처럼 성공한 삶, 거룩한 얘기에 대한 기대는 잠시 접어달라"고 말했다. 사람냄새와 세상살이 애환이 우선이라는 얘기다. 부끄러운 과거를 모두 털어놓고, 과장된 얘기는 바로잡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배추 형님은 무엇보다 이야기꾼이죠. 모임에서 그가 마이크 잡으면 말 잘하는 유홍준 문화재청장부터 꼬리를 내리잖아요. '지방방송은 끌랍니다'면서…. 파란만장한 삶은 현대사의 압축이죠."(소설가 황석영)

"주먹, 그 이상이죠. 주위에 북적대는 사람을 보세요. 흉내 못낼 발상과 언행, 끈끈한 의리 때문이 아닐까요?"(국회의원 김태홍)

방씨는 경기도 개성 출신. 인구 10만 도시에 승용차가 단 두 대 있던 시절, 그의 집에는 컨버터블 승용차가 있었다. 한국전쟁 나기 1년여 전 서울로 이사, 다니던 경신고 역도부 시절이 '망나니 배추'의 전성기.

날이면 날마다 싸움판을 벌였다. 그때 "임꺽정 흉내를 내듯 배추 행세를 하던 주먹패를 혼내주기도 했다"며 방씨는 껄껄 웃었다.

"철부지 망종이었어. 어수선한 사회 탓이었을거야. 반면 타고난 수완꾼이라서 부산 피난 시절에는 봉이 김선달식 장사로 남대문시장 점포 다섯 개를 사들일 큰 돈도 챙겨봤고…. 그러다가 사람이 확 달라졌어. 평생 스승이자 친구인 백기완을 만났거든."

1954년 당시 청년운동가 백기완은 처음 본 '10대 어깨'배추의 빰을 다짜고짜 후려쳤다. "사나이가 태어났으면 천하를 호령해야지, 사람이나 두들겨?" 천둥 같던 이 한마디에 대오각성한 그는 그 뒤 백기완의 '꼬붕'을 자청했다.

"60,70년대 재야세력 초창기 인물들인 함석헌.장준하와 만났어. 그 통에 박정희.전두환 대통령 시절 간첩죄로 두 번 구속 당했고…. 어쨌거나 나는 부실한 사람이지만, 친구들이 멋져. '8억인과의 대화'의 이영희, 소설가 이호철.김성동, 화가 김용태.주재환도 친구야."

그런 방씨는 70세인 지금도 현역이다. 그의 삶은 지난 해 경복궁 관람안내지도위원으로 특채되면서 '고궁의 몸짱 할아버지'로 다시 유명해졌다. 4년 전 헬스클럽 강사를 지냈던 그는 허리 32인치에 팔뚝둘레 45㎝의 근육질을 유지하고 있다. 방씨는 "비분강개와 추억이 넘실대는 스토리를 통해 독자들과 만나겠다"고 다짐했다.

글=조우석 문화전문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필자 약력>

▶1935년 경기도 개성 출생

▶42년 개성원정초등학교 입학

▶48년~54년 개성상업학교 입학. 서울 경신.보성.경신(재입학).인천 송도 등 5개 학교 전전한 뒤 졸업

▶56년 홍익대 법대 2년 중퇴 뒤 승려생활 2년

▶59년 육군 입대 이등병 제대

▶64년~67년 서독 광부생활

▶67년~70년 프랑스 파리 유랑

▶71년 양장점 '살롱 드 방'운영

▶73년 강원도 철원서 '노느메기'농장 경영

▶74년 긴급조치 1호 위반 간첩죄 구속

▶79년 중동 아랍에미레이트 근무

▶86년 중국집.신발가게 운영 중 '말'지 사건으로 구속,

이근안으로부터 고문 당함

▶94년 교하산업 중국공장 대표이사

▶2003년 잡역부 거쳐 헬스클럽 강사

▶2005년 경복궁 관람안내지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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