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대출 묶여 내 집 마련 "막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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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서울 북아현동에 사는 장준식씨(가명)는 요즘 직장에 나와서도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 모래내에 어렵사리 18평 짜리 내 집(연립주택)을 마련했지만 이달 20일까지 잔금 치를 일이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현재 전세방에 살고 있는 장씨는 전세금 8백만원과 3년간 재형저축을 들어 탄 5백만원에 은행에서 1천2백만원을 융자받아 보탠다는 계획을 세우고 최근 이 집을 2천5백만원에 계약했다. 그러나 융자를 받기 위해 재형저축을 취급했던 C은행을 찾아갔지만 빌려줄 돈이 없다고 거절당했다. 사정이 딱하니 무슨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었더니 주택은행이나 국민은행을 찾아가 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쪽도 대담은 마찬가지였다.
주택부금이나 무지개통장 또는 재형저축에 들어 일정한 대출자격이 생기지 않는 한 요즘처럼 자금사정이 어려운 때는 대출이 곤란하다는 설명이었다.
장씨가 겪고있는 사례는 최근의 서민자금 운영실태가 어떤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주택구입자금을 융자받으려는 경우 주택은행의 주택부금이나 무지개통장, 또는 주택은·국민은행의 재형저축에 가입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시중은행의 재형저축에 가입하는 경우도 3년 이상 불입을 하면 가입금액의 3배 범위 내 최고 2천만원까지 구입자금을 융자받을 수 있게 돼있다.
시중은행의 융자규모는 당초 1천만원 이내이던 것을 금년부터 2천만원으로 올려놓기까지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거의 대출이 되지 않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자금사정 때문에 대출이 이루어진 예가 거의 없다고 실토하고 있다.
서민금융이나 주택자금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국민은행이나 주택은행의 경우 특별자금을 배정 받기 때문에 자기은행이 취급하는 주택부금이나 재형저축에 가입한 유자격자에게는 대출을 해주고 있지만 그것도 금년 들어서는 제때에 대출 받기가 어렵다.
모회사 직원 박경우씨(가명)는 주택은행 재형저축을 통한 대출자격이 생겨 지난달 말 은행을 찾아갔지만『이 달 대출할 돈은 다 떨어졌으니 다음달 초순에 오라』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 같은 사실에 대해 주택은행 관계자는『3월중 주택은행 전체 대출한도액은 3백억원인데 최근 이사철을 맞아 자금수요가 몰려 실제 필요한 자금은 6백억원에 달한다』고 대출이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있는 사정을 설명했다.
그는『연초 주택자금 업무계획을 세우면서 올해 자금공급규모를 6천억원으로 잡았으나 요즘 같은 추세대로라면 3천억원 안팎으로 줄어들 것 같다』고 말해 자금부족현상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시사했다.
이처럼 자금사정이 나빠지고 있는 것은 물론 당국의 통화억제정책 때문이다.
정부는 작년 말 대통령선거와 무역흑자에 따른 해외부문의 통화증발로 통화증가율이 계속 18%선을 웃돌아 올 들어 지난 3개월 동안 4조원 가까운 돈을 통화안정증권으로 흡수하고 그래도 모자라 금융기관의 일반대출은 물론 지난 2월부터는 서민금융 취급은행에 대해서도 대출억제지시를 내려놓고 대출한도를 규제하고 있다. 대출할 돈은 묶여있고 쓸 사람은 많으니 매월 하순께가 되면 은행창구에서는 은행직원과 고객간의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문제는 장씨의 경우처럼 당국이나 은행을 믿고 자금계획을 세워놓았던 사람들이 큰 피해를 본다는데 있다. 장씨만 해도 사채를 얻어서라도 잔금을 치르지 않으면 계약금을 날리게 되고 3년간을 부어 겨우 마련한 재형저축이 오유로 돌아가게 될 딱한 처지가 돼버렸다.
그런데도 당국은 최근 다시 근로자주택마련 저축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가입을 권유하고 있다.
이미 해놓은 약속도 감당을 못하면서 새로운 약속을 내놓은 셈이다.
거기에다 최초에는 주택의 담보가격을 정할 때 세든 사람의 전세금을 담보할 수 있도록 방 1개당 5백만원씩을 공제하도록 해 주택을 담보로 한 대출금이 크게 줄게됐다. 예컨대 방3개 짜리 22평 주택의 감정가격이 2천만원일 경우 실제 대출 받는 돈은 방3개 분 1천5백만원을 뺀 5백만원밖에 안 된다는 얘기다.
모름지기 국민들의 내 집 마련을 위해 실시되고 있는 주택정책금융이 실제로는 빛 좋은 개살구에 그치고 있어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에 온 것 같다.<심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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