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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강남 집값, 정말로 잡겠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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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러나 이런 현상은 이미 예견됐던 일이다. 정부는 집값 상승, 특히 강남 집값 상승을 주로 투기에 따른 가수요로 진단했다. 따라서 투기를 막기 위해 세제 등 온갖 규제를 강화했지만 여전히 강남 지역 아파트 값은 요지부동이다. 이는 결국 실수요가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해야 한다. 특히 전세 구하기가 힘든 것은 이 같은 실수요에 대한 뚜렷한 방증이다. 진단이 잘못됐으니 제대로 된 처방이 나오기 어려운 것이다.

2001년 하반기부터 지속된 집값 상승의 원인은 외환위기 기간에 크게 줄었던 주택건설 물량과 장기간 지속된 저금리, 외환위기 이후의 소득 증가 등에서 찾아야 한다. 특히 서울 강남 아파트 가격 상승이 두드러진 것은 좋은 환경을 갖춘 양질의 주거에 대한 수요가 그만큼 늘었기 때문이다. 즉 비싸더라도 좋은 물건을 사겠다는 명품 심리가 주택에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교육을 비롯한 각종 사회 인프라가 좋은 곳에 대한 선호가 높아진 것과 함께 1990년대 이후 주식이나 채권 등 금융상품도 우량자산과 그렇지 못한 것이 차별화되는 현상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정부는 주로 강남 집값 잡기에 초점을 맞춰 단기적인 수요억제 대책만 쏟아내는 한편 이를 뒷받침해야 할 공급확대에는 소홀했다. 판교와 송파 신도시 계획을 발표했지만 고급 수요에 맞추기보다는 50% 이상을 임대주택으로 공급하고, 또 70% 이상을 중형 이하의 소형아파트로 배분하는 등 고급 수요는 외면했다.

그뿐만 아니라 재건축을 통한 공급도 수요와 맞지 않는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다. 즉 강남의 재건축은 막되, 강북은 뉴타운 건설 등을 통해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강북 뉴타운의 경우 도시정비 촉진법을 제정해 재건축 용적률을 300%까지 허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높은 용적률이 허용되는 강북은 주거환경이 악화되는데 비해 공급을 막은 강남은 쾌적하게 유지된다는 이야기다. 이러니 90년대 초반 불과 10~30% 차이에 불과하던 강북과 강남의 집값이 지금은 100%가 넘는 차이를 보일 만큼 집값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이다.

수요에 맞지 않는 공급 확대는 의도한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공공임대주택 건설 등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 차원의 주택 정책도 중요하지만 계층별 수요에 맞춘 공급도 가능하도록 길을 터주어야 한다. 고급 주택에 대한 수요는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확신한다면 정부가 굳이 강남 집값 잡기에 나설 필요도 없을 것이다.

강남지역의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서는 재건축 활성화와 양도세를 포함한 거래세의 한시적 인하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양도세의 한시적 인하는 강남 지역에 부족한 매물을 시장에 나오게 하는 단기적인 공급 대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재건축 활성화를 위한 불필요한 규제의 전면 해제는 장기적인 공급 부족을 해소하는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재건축으로 인한 도시환경 악화는 엄격한 용적률 제한과 기반시설부담금 부과 등으로 막는 것이 가능하다.

정부는 주택안정과 관련해 이달 말까지 재건축 승인 권한의 중앙정부 환수 등 더욱 강도 높은 규제책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규제를 통한 수요 억제는 단기적인 안정책일 뿐 장기적으로는 수요에 맞춘 공급밖에는 길이 없다. 투자를 억제하는 규제책이나 중과세 등은 장기적인 주택 공급 축소로 인한 주택 부족과 이에 따른 집값 상승이라는 악순환을 부르게 될 뿐이다.

신혜경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