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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산책] '꾼'들의 사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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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MBC-TV 베스트극장 방영을 앞두고 오디오 동호회 사이트 몇 곳에서 돌연 시청 금지를 알리는 글들이 올라왔다. 아내들이 드라마를 보면 큰일이니 어떻게든 막자는 '꾼'끼리의 다짐이었다. 소동은 드라마 속의 주인공이 수천만원짜리 오디오를 운용한다고 알려지면서 벌어졌다.

드라마를 본 아내가 당신 기계값이 진짜로 얼마냐, 그동안 얼렁뚱땅해온 비자금 내역까지 밝히라고 다그치면 끝장이라는 공포였다. 물론 그건 엄살 섞인 것이다.

꾼끼리의 동질감을 오디오쟁이들은 그런 식으로 확인했던 것이다. 알고 보니 그 드라마는 수입업체 '오디오 갤러리' 협찬으로 진행됐다지만, 어쨌든 오디오는 '돈 꽤나 드는 어른용 장난감'이다.

스피커.앰프와 주변기기를 합한 시스템에 수억원을 호가하는 모델이 꽤 된다. 엔간하다 싶으면 하이엔드급 단품 하나에 1천만원대다. 요즘 인기 브랜드가 오디오리서치(미국산)인데, 이 회사 파워앰프 중 최고 모델(레퍼펀스 600 MK2)은 소비자가가 6천만원대. 프랑스 JM랩 스피커의 톱 모델 그랜드 유토피아는 7천만원대다. 물론 이들은 예외적인 경우일 것이다.

그러면 왜 오디오일까? 희한하게도 오디오야말로 물신(物神)시대의 꽃이다. 두가지 점에서 그렇다. 우선 오디오만큼 비싼 기계가 드물다는 의미에서 당당한 '물질의 신'이다.

보자. 가정용 에어컨은 비싸봐야 2백만원 내외다. 밥솥.세탁기도 크기와 기능에 따라 약간씩 다를 뿐 값은 엇비슷하다. 하이엔드 자체가 없는 것이다. 굳이 비교된다면 벤츠 등 고급차 정도일까?

그렇다. 차디찬 몰개성의 기계 중 유일하게 자기 스타일을 추구할 수 있는 게 음악을 듣는 기계 오디오다. 그 점에서 인간적 세계다. 역설이지만, 물신시대에 핀 아름다운 꽃이라고 꾼들은 굳게 믿는다.

때문에 빈티지 와인이 존재하듯 왕년의 고물기계에 목매는 빈티지 오디오족도 있다. 알텍당(黨).탄노이당 등이 소수파로 존재하는 곳, 극과 극을 오가는 다양성의 공간이 바로 오디오의 세계다.

우리는 이제 오디오 여행을 떠난다. 음악회장을 찾는 콘서트 고어들과 또 다른 오디오꾼들의 존재와 이들 사이의 우정, 요즘 뜬다는 하이엔드 스피커와 앰프의 족보도 살펴볼 요량이다. 1백만원대의 저렴한 모델들, 요즘 뜨는 국내 오디오 주요 제품들에도 두루 관심을 둘 터이니 많은 관심 바란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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