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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다노출 일본 야동, 유통은 '처벌'하고 저작권은 '인정'…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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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음란물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배포, 유통은 금지하되 저작권은 인정하는 추세에 있다 [중앙포토]

일본 음란물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배포, 유통은 금지하되 저작권은 인정하는 추세에 있다 [중앙포토]

“일본 AV(Adult Video) 업계는 여성을 속여 강제 촬영을 하고 배우 자살 등 파문을 일으켰다. 이런 콘텐트의 저작권을 인정해주는 법원 결정은 AV 제작을 장려하고 여성 인권 침해에 눈을 감은 부당한 조처다”

지난 4일 디지털 저작권 시민단체 ‘오픈넷’은 이런 성명을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7일 서울고법이 일본 AV 업체의 저작권침해금지 청구를 인용하자 법원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당시 주심을 맡은 한규현 판사가 밝힌 결정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일방적인 강간 행위를 촬영한 필름, 아동을 대상으로한 포르노물 등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본질적인 부분을 해하는 음란물인 경우 저작물성을 부인할 수 있다. 다만 이 사건 영상물은 남녀 성행위, 성기 노출 등 장면으로 구성돼 있지만 내용 전개 상 음란하다고 볼 수 없는 부분도 포함돼 있다” 

당시 AV 업체가 증거로 제출한 영상 300여 개를 ‘전수 조사’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일본 포르노그래피의 저작권을 인정한 법원 결정을 놓고 국내에선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속칭 ‘일본 야동’이라고 불리는 AV 업체들의 영상물은 국내에선 유통이나 배포가 금지되는 ‘불법물’로 취급된다. 그런 불법 영상물의 저작권을 인정하는 법원의 판단을 두고 일각에선 “괴리감이 있다”는 반응도 나왔다.

법원의 판단은 정말 일본 음란물의 제작을 장려하고 여성 인권 침해에 눈을 감은 조처일까?
음란물의 저작권에 대한 최근 법원의 판단 경향은 서울고법의 결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상물의 배포, 유통은 금지되지만 저작권은 보호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음란물 ‘저작권 인정’이 무분별 유포 줄이는 역설

국내 웹하드에서 유통되고 있는 불법 저작물 [중앙포토]

국내 웹하드에서 유통되고 있는 불법 저작물 [중앙포토]

음란물에 대한 국내법의 시선은 엇갈린다.
저작권법(제2조 2항)은 저작물을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규정한다. 다만 ‘법원의 판결ㆍ결정ㆍ명령 및 심판 등에 의한 결정에 따라 일부 창작물은 저작물로 보호받을 수 없다'(제7조)고 돼 있다. 음란물도 일종의 저작물로 인정될 수 있는 셈이다.

반면 정보통신망법(제44조7항)은 음란한 영상을 배포ㆍ판매ㆍ임대하거나 공공연하게 전시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형법(제243조)은 음란한 필름 등을 배포ㆍ판매한 사람을 1년 이하 징역, 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저작물 인정 여부와 관계 없이 음란물을 불특정 다수에게 배포하거나 판매해 돈을 버는 행위는 엄격히 규제되는 것이다.

‘음란’을 가를 명확한 기준은 국내 법규에 없다. 대부분 판사의 재량으로 판단한다.
다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규정은 음란물을 ‘남녀 성기 노출, 변태적 자위, 성행위를 노골적으로 표현한 영상’으로 규정한다. 김성순 법무법인 정향 변호사는 “저작권법에 따르면 정보통신망법상 유통이 금지되는 음란물도 저작물 보호 대상이 될 수 있다. 불법 영상물이라고 해서 특정 업로더가 무단으로 영상물을 배포해 수익을 창출할 수 없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한 현직 판사는 “음란물의 저작권을 인정하는 판단이 얼핏 음란물의 배포를 인정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다”며 “이른바 ‘음란물 업로더’들을 저작권법으로도 처벌해 유통을 위축시키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야동 30만개 배포 男, ‘저작권법 위반’ 철퇴

음란물을 둘러싼 저작권 논란은 90년 대법원 재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재판의 쟁점 중 하나는 일본 성인 잡지 ‘플래쉬(FALSH)’에 실린 여성의 누드 사진을 저작물로 보호할 수 있느냐였다. 재판부의 판단은 다음과 같다.

“저작물은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윤리성 여하는 문제되지 않으므로 설사 그 내용 중에 부도덕하거나 위법한 부분이 포함돼 있다 하더라도 저작권법상 저작물로 보호된다”

일본 잡지 '플래쉬' [중앙포토]

일본 잡지 '플래쉬' [중앙포토]

이같은 대법의 판단은 일본의 음란물의 저작권을 인정하는 선례가 됐다. 2011년 웹하드 사이트에 일본 음란물 30만개를 유통시킨 서모(48)씨에 대한 서울중앙지법의 판단이 대표적이다. 음란물 판매로 약 2000만원을 챙기고 1심에서 2500만원 벌금형을 선고 받은 서씨는 “음란물은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이 되지 않아 저작권법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항소를 제기했다.

재판부는 이를 기각했다. “저작권법을 통해 창작물과 이에 대한 권리를 보호하는 것과 형법을 통해 음란물의 사회적 해악을 제거하는 것을 별개다. 음란물도 저작권법의 보호 대상이 된다”는 이유였다.

#영상 대신 ‘야동 표지’만 증거 제출하는 바람에...

일본 음란물의 저작권을 인정하는 법원의 판단이 나온 뒤 일본 AV 업체들은 줄소송에 나섰다. 2015년 AV 업체 16곳은 자신들의 영상을 유통시킨 국내 웹하드 업체 4곳을 대상으로 영상물 복제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일본에서 통상 2000엔(약 2만원)에 거래되는 영상이 국내 웹하드에선 200~300원에 무단 유통되고 있으니 이를 막아달라는 주장이었다.

같은해 부산지법과 서울중앙지법에선 상반된 판단이 나왔다. 부산지법은 “해당 영상들은 저작권법상 보호될 수 있다. 웹하드 업체의 회원들이 영상을 업로드해 다른 사람이 다운로드할 수 있게 한다면 이는 전송권 침해에 해당한다”며 일본 AV업체들의 손을 들어줬다.

반면 서울중앙지법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제출된 자료 중 3건을 제외하곤 어떤 영상인지조차 확인되지 않아 창작성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 창조적 개성이 드러나는 표현 방식이 담긴 저작물에 해당한다고 소명하기 부족하다”고 밝혔다. 당시 AV 업체는 서울중앙지법에 수천개의 영상 중 3개만 증거로 내고 나머지는 표지만 출력해 제출했다. 재판부는 표지만으론 저작물 인정의 기준이 되는 ‘창작성’ 여부를 가리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법조계 안팎에선 ‘음란’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시대에 따라 완화되는 만큼 각종 음란물에 대한 저작권 인정 추세도 강화될 거란 전망이 나온다. 헌법재판소의 판단도 “음란이란 인간의 존엄성 내지 인간성을 왜곡하는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성표현(98년)”→“음란한 표현도 헌법 제21조의 표현의 자유의 보호 영역 내에 있다(2009년)”로 10년 새 달라졌다.

채털리부인의 사랑.

채털리부인의 사랑.

‘무엇이 음란인가’에 대한 법원의 고민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일본 AV업체의 가처분 청구를 인용한 서울고법의 결정엔 이같은 고민이 잘 나타나 있다.

“향후 음란물로 판정된 작품이 음란물이 아닐 뿐 아니라 문학적 가치 등이 있는 것으로 재평가될 경우 저작권자에게 회복할 수 없는 중대한 손해를 발생할 우려도 있다. 미국 법원에선 1930년대 헨리 밀러의 소설 ‘북회귀선’을, 일본법원에선 1950년대 데이비드 로렌스의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각각 음란물로 판단한 적이 있다” 

손국희ㆍ문현경 기자 9key@joongang.co.kr

日 "공공질서 해치지 않으면 인정" 美 "음란물도 저작권법 보호 대상"

지난 1997년 서울중앙지검은 음란성이 짙은 일본만화 100만권을 압수하기도 했다 [중앙포토]

지난 1997년 서울중앙지검은 음란성이 짙은 일본만화 100만권을 압수하기도 했다 [중앙포토]

해외에서도 음란물의 저작권을 인정할까. 사회에서 도저히 수용하기 힘든 ‘반(反) 사회적’ 음란물을 제외하면 일단 저작권은 보호하는 국가들이 많다.

일본 도쿄 지방 재판소는 1986년 한 잡지에 게재된 포르노 사진을 놓고 “저작물성이 부정되는 정도까지 공서양속(公序良俗)에 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며 저작물로 인정했다. ‘공공 질서와 선량한 풍속’을 해치지 않는 이상 음란물도 저작권을 보호 받을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이다.

미국 제5순회법원은 1979년 음란물을 제작한 한 영상 업체가 ‘저작권 침해’를 주장할 수 있느냐를 두고 “저작권법이 적용되에 음란물을 제외하는 규정이 없는 것은 단순한 생략이 아니다”며 음란물의 저작권을 인정하는 판단을 내렸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1990년 “작가의 감흥, 경험, 상상을 표현한 창작 작업일 경우 포르노 소설도 예술 자유의 보호영역에 속한다”며 포르노 소설의 저작권을 인정했다.

손국희ㆍ문현경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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