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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논문에 공동저자 무임승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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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본지 취재팀이 2003~2005년 학술지.학술대회에 발표했다고 한국학술진흥재단에 보고한 교수 7만6593명의 논문을 분석한 결과 한 해 51편 이상에 이름을 올린 교수가 262명이나 됐다. 100편 이상을 썼다고 보고한 교수도 7명이었다.

특히 자연과학 계열의 한 교수는 한 해 무려 149편의 논문에 이름을 올렸다. 2, 3일에 한 편꼴로 논문을 냈다고 보고한 것이다. 연구 프로젝트가 잦은 이공계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무임 승차' 관행이 얼마나 심하게 퍼져 있는지 보여주는 수치다.

"황우석 박사의 논문 파문으로 학계에 숨어 있던 악습이 드러났습니다. '내 논문에는 문제 없었나' 하며 뜨끔했을 교수도 있을 겁니다."

국내 논문 작성의 문제점과 관련,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취재팀에 이렇게 말했다. 한국 논문의 규모는 '고도 성장'을 했다.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학술지에 실리는 한국 논문 수는 2004년 1만8497편을 기록, 세계 13위에 올랐다. 학술진흥재단에 등록된 학술지 수는 1999년 257가지에서 2005년 1312가지로 약 다섯 배가 됐다. 하지만 우리 학계의 윤리 수준은 선진국 문턱에도 미치지 못한다. 취재팀이 대표적인 자연계 학회 21개의 학술지 편집위원에게 물어본 결과 14개 학회의 위원들이 "공동 저자 끼워넣기 관행을 적어도 한 번 이상 경험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한 지방대 부설 연구센터 소장의 논문은 매년 50편이 넘는다. 이중 아이디어를 내 직접 진행한 연구로 논문을 쓰는 경우는 한두 편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연구센터 소속 후배 교수와 대학원생들이 쓴 논문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소장은 취재진에게 "솔직히 바쁜 일정 때문에 원고를 못 볼 때도 있다"며 "하지만 책임자로서 연구 여건을 만들어 주니까 논문에 저자로 오를 자격이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표절.대필을 묵인하는 '동업자 감싸기'가 문제죠. 열심히 노력한 연구자들의 의욕을 꺾는 행위지요."(이성대 안산공대 교수.한국교수노동조합 교권실장)

국내의 대표적인 학회 40개 중 4개만 표절 같은 연구 부정행위에 관한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두는 것으로 취재팀의 확인 결과 드러났다. 생명과학 연구원 열 명 중 네 명이 '대필을 경험했다'는 생물학연구정보센터의 설문 조사 결과도 있다. 선진국의 대학.학회는 각기 저자 자격이나 표절 정의 등의 규정을 구체적으로 마련해 놓고 이를 통제한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에는 '저자는 실질적이고 직접적이며 지적인 공헌을 해야 한다' 등의 가이드 라인이 있다.

어윤대 고려대 총장은 "학문의 미래를 짊어질 학생들이 부정행위에 물드는 것을 우선 막을 생각"이라며 "이번 학기부터 '표절 적발 프로그램' 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천인성.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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