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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문 대통령-김정은의 첫 판문점 간접대화, 출발은 좋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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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남북이 ‘통-평’(통일부-조국평화통일위원회) 라인을 가동한 첫날 성과물이 나왔다. 9일 판문점에서 열린 고위급회담에서 남북은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북한 대표단이 방남하고, 군사 당국자 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 평가할 만한 일이다. 내용물 못지않게 회담 자체에도 의미가 있다. 북측 수석대표인 이선권 조평통 위원장이 모두발언에서 “어찌 보면 자연계의 날씨보다 더 동결상태”라고 말한 대로 남북관계는 그간 두꺼운 얼음장 밑에서 꽁꽁 얼어붙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랬던 남북이 만나 평창올림픽 참가 문제를 논의하는 장면을 문재인 대통령은 집무실에서 CCTV로 지켜봤다. 회담 경과가 속속 보고되고, 문 대통령의 의사도 판문점 현장으로 전달됐다고 한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도 회담을 지켜보고 있었는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북한 대표단의 모든 행위가 곧 김정은의 판단과 결정임은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회담은 통-평 라인을 통한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첫 번째 간접대화 성격을 갖는다. 회담 결과 못지않게 회담 자체에 의미를 둘 수 있는 이유다.

북한 대표단 평창올림픽 계기 방남 #70일간 잠정 평화 계기 마련했으나 #지속가능한 평화는 역시 비핵화

결국 9일부터 평창 패럴림픽 폐막일인 3월 19일까지 70일간 한반도에 평화 분위기를 조성할 계기가 마련됐다. 분명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미국이 우려하듯 샴페인을 너무 많이 마실 필요는 없다.

바로 직전의 판문점 고위급 회담은 2015년 8월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에 따른 군사적 긴장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성사된 남북 고위급 ‘2+2’ 접촉이다.

당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 북측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은 ▶당국자회담 개최 ▶북측의 지뢰폭발 유감 표명 ▶남측의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북측의 준전시 상태 해제 ▶추석 이산가족 상봉 등의 6개 항에 전격합의했다. 하지만 ‘8·25 합의’의 효력은 순간뿐이었다. 그만큼 남북 합의는 유리그릇같이 깨지기 쉽다. 지금 평창 겨울올림픽에 관한 논의는 순조롭게 진행 중이지만 또 하나의 의제인 ‘남북관계 개선’ 부분은 성격이 다르다.

정부가 그리는 남북관계 개선의 수순은 설 이산가족 상봉과 긴장완화를 위한 군사당국회담이지만,북한의 군사 문제에 대한 속셈은 다를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북한과 대화하려는 목적은 결국 비핵화에 있다. 문 대통령 또한 지난해 6월 28일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워싱턴으로 향하는 기내에서 기자들에게 “북한의 핵동결이 대화의 입구, 완전한 폐기가 대화의 출구”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핵동결이란 입구에는 들어서지도 못한 상황이다. 북한이 올림픽 기간 중 핵이나 미사일 도발을 멈출 것인지도 불투명하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회담 모두 발언에서 “시작이 반”이라고 강조했는데, 진짜 협상은 아직 시작도 안 한 것일 수 있다. 70일짜리 잠정적 평화를 지속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길은 결국 비핵화뿐임을 대화무드에 취해 잊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