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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봉합으로 끝난 위안부 합의 파문, 이럴려고 난리 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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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굴욕외교 논란을 빚었던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문제가 결국 찜찜하게 봉합됐다. 정부는 어제 위안부 합의에 결정적 문제가 있다면서도 폐기나 재협상은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합의는 진정한 해결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2015년 합의가 양국 간 공식합의였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처음부터 한·일 관계가 회복 불능이 되니 합의를 절대 물리면 안 된다고 주장해 왔다. 정부가 고심 끝에 현실적 선택을 한 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잘못된 합의를 뜯어고치겠다는 명분과 한·일 관계를 망칠 수 없다는 현실론이 뒤섞이는 바람에 앞뒤 안 맞는 미봉책으로 막을 내렸다. 특히 화해·치유재단 기금 10억 엔 처리가 그렇다. 정부는 일본 측 사과가 미흡하다며 우리 예산으로 10억 엔을 조성해 처리 방안을 협의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일본이 이를 받을 리 만무하다. 실제로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무상은 발표 직후 “합의를 이행하지 않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의하겠다고 했다.

그동안 정부의 아마추어적 대응으로 얻은 게 무엇인지 궁금하다. 전문가들은 합의를 깰 때 생기는 부작용을 수없이 경고했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과 강 장관은 위안부 할머니들과 만나 합의를 곧 깰 듯 처신했다. 일본의 감정은 나빠질 대로 나빠져 한·일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현 정부는 절차적 정당성과 명분에 집착해 기존 외교안보 현안들을 적폐로 몰아놓고 막상 후폭풍을 감당할 자신이 없자 서둘러 봉합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중국을 상대로 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파문이나 아랍에미리트(UAE)와의 외교갈등도 마찬가지였다. 상대가 있는 외교에서 이런 일방적 대응이 어떤 부작용을 낳는지 이제라도 정부는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