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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나무] 쉿! 그림 속 사람의 속삭임 들리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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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오스트리아의 표현주의 화가 리하르트 게르스틀의 ‘웃는 자화상’. 게르스틀은 실연당한 뒤 이 그림을 그리고 25세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신비로운 인물화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이주헌 지음, 다섯수레, 120쪽, 1만2000원

미술 동네의 대표적인 글쟁이 이주헌씨가 펴낸 어린이용 미술해설서다. '이주헌'이라는 브랜드에 끌려 책을 집어들었다면 이번 역시 별 실망이 없을 듯하다.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이주헌의 프랑스 미술 기행' 등에서 익히 보여줬듯 '소수만 아는' 지식을 '여러 사람이 알 수 있도록' 풀어내는 그의 강점은 여전하다. 더 주목되는 것은 기존에 나온 어린이용 미술해설서에 대한 필자의 문제의식이다. "어린이들의 흥미 유발을 위해 익숙한 그림을 반복해서 보여주다보면 미술에 대한 안목이 오히려 좁아진다. 이제는 어린이들에게 좀더 본격적인 미술의 모습을 보여줄 때가 됐다."

그래서 이 책은 인물화를 좀더 깊고 다채롭게 탐험한다. 형식에 따라 자화상, 1인 초상, 2인 초상, 집단 초상, 좌상, 입상 등을 살펴보는가 하면 가족, 어린이, 화가의 아내, 권력자와 유명인사, 전설과 역사 속 인물 등 대상을 통해 접근하기도 한다. 그리고 제목처럼 '그림 속 인물들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를 들려준다. 프리다 칼로(멕시코, 1907~54)의 '부상당한 사슴'에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오랫동안 고생한 화가의 우울과 고통이 배여있다. 자크 루이 다비드(프랑스, 1748~1825)가 키도 작고 볼품없었던 나폴레옹을 실제 탔던 노새가 아닌 근사한 말에 태워 미화한 것은 당시 궁정화가들의 '예술적 사명' 때문이었다.

한스 홀바인(독일, 1465~1524)은 '웨일스공 에드워드의 초상'에서 출생과 동시에 어머니를 잃고 열다섯살에 숨진 왕 에드워드가 격식에 갇혀 옴쭉달싹 못하는 가엾은 모습을 보여준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스페인, 1746~1828)가 무능한 국왕, 오만하고 음탕한 왕비 등 왕족들의 속물근성을 비웃으며 그렸다는 얘기를 듣고 나면 '카를로스 4세와 그의 가족'을 무심히 지나칠 수만은 없을 것이다. 한국 작가들로는 이중섭과 김재홍 두 사람밖에 없는 점이 다소 아쉽다. 이 책은 '어린이를 위한 주제별 그림읽기'시리즈의 두번째다. 첫번째는 풍경화였으며 곧 역사화.정물화가 뒤를 잇는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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