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위안부합의 전날까지 싸웠는데…역적 된 이병기, 영웅 된 야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위안부협상땐 치열하게 싸웠는데,희비 엇갈리는 이병기와 야치

 # "고위급 협의는 시종일관 비밀협상으로 진행됐다…주무부처인 외교부는 고위급 협의에 직접 참여하지는 못했다. 외교부는 조연이었다.위안부 협상과 관련한 정책 결정 권한은 지나치게 청와대에 집중돼 있었다"(지난해 12월27일 위안부 합의 TF 보고서)

한국의 위안부 TF는 "시종일관 비밀협상'비판 #일본에선 "야치국장의 두터운 인맥"칭찬거리 #발표 전날까지 "소녀상 넣자","안돼" 공방 #요미우리 "NSC 잘나가는 건 야치의 인맥 덕분"

한·일간의 뇌관이 돼버린 위안부 합의,이를 이끌어낸 건 TF보고서가 밝힌대로 2015년 2월부터 가동된 이병기 국가정보원장-야치 쇼타로(谷内 正太郎) 일본 국가안전보장국 국장간 채널이었다.

이병기 전 국정원장(左), 야치 쇼타로(右). [연합뉴스]

이병기 전 국정원장(左), 야치 쇼타로(右). [연합뉴스]

한국측의 이병기 국정원장은 이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자리를 옮겨 합의를 완성했다.
두 사람간엔 합의 발표 전날인 2015년 12월 27일 심야까지도 "급한 일이 생겼다.합의안에 위안부 소녀상 철거를 반드시 넣어야 겠다”(야치) "그럴 려면 내일 (다음날 합의 발표차 방한이 예정된) 기시다 외상 오지 말라고 하라.전화 끊자"(이병기)며 치열한 공방전이 이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TF보고서가 그렇듯 한국에선 '외교는 국민과 함께 해야하는데 시종일관 비밀협상이었다'는 부정적 뉘앙스가 주로 강조됐다. 이병기 전 실장에겐 당시 야당으로부터 '최악의 합의를 만든 원흉'이란 비난이 쏟아졌다. 그는 결국 정권교체 뒤 국정원 특수활동비의 청와대 상납과 관련해 구속됐다.

#"야치 국장에 대한 아베 총리의 신뢰가 두터워 국가안전보장국의 존재감이 자꾸 커지고 있다. 야치의 최대 강점은 외교관 시절부터 구축한 각국 핵심인사들과의 파이프다."(8일자 일본 요미우리 신문)

요미우리의 보도처럼 이 전 실장의 카운터파트, 일본 야치 국장의 주가는 일본에서 상종가를 달리고 있다.
그가 이끄는 국가안전보장국이 지난 7일로 출범 만 4년을 맞으면서 그의 능력과 역할이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요미우리는 특히 한국 위안부 TF의 보고서 내용을 인용하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측근과 도합 8회에 걸쳐 접촉해 합의 문안 조정을 했다"며 야치의 두터운 인맥을 강조했다. 같은 협의를 놓고 나오는 상반된 평가다. 실제로 야치의 인맥은 두텁다. 모든 것을 드러내놓고 진행할 수 없는 외교 업무의 특성상 그에겐 큰 자산이자 무기일 수 밖에 없다.

위안부 합의 당시 아베 정부가 보수 지지층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합의를 밀어부친 데에는 야치 국장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도 있다.

야치 국장은 지난해 5월엔 중국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을 도쿄 부근의 관광지인 하코네의 리조트 호텔로 초청해 5시간 넘도록 식사를 함께 했다. 허버트 맥매스터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보좌관, 러시아의 니콜라이 파트루쉐프 연방안보회의 서기와도 친분이 깊다.

  야치 국장이 이끄는 국가안전보장국은 일본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외교의 심장’,‘일본 정부 외교안보의 사령탑’, ‘외무성을 뛰어넘는 제1외무성’이란 별칭으로도 불린다. 70명 안팎의 직원 전원이 사무실에서 30분안에 도착할 수 있는 지역에 거주하고, 휴일에 외출할 때도 언제든 출근할 수 있도록 자켓을 걸치도록 한 내부 규율로도 유명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최측근 외교 책사인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이 지난 2014년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면담을 하기위해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중앙포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최측근 외교 책사인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이 지난 2014년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면담을 하기위해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중앙포토]

당초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뒷받침하는 사무국으로 2014년 1월 발족했지만, 정책입안과 정보수집 등에서 NSC를 사실상 움직이고 있다. NSC엔 총리와 외상ㆍ방위상ㆍ관방장관이 참석하는 '4대신 회의', 이를 확대한 '9대신 회의'가 있지만 아베 총리에 미치는 영향력은 야치 국장이 훨씬 크다.

지난해 9월 아베 총리가 중의원 해산 방침을 굳히기 직전 야치 국장을 두 차례나 불러 ‘선거를 다시 치러야 하는데, 미국과 북한이 충돌할 가능성이 없느냐. 북한이 갑자기 대화쪽으로 입장을 틀지는 않겠느냐’를 꼼꼼히 확인했다는 일화도 있다.

‘아베 총리의 외교 책사’로 불리는 야치 국장은 도쿄대 법대 출신의 정통 외교관 출신으로 제1차 아베 내각(2006년 9월~2007년 9월)때 관료로선 가장 높은 사무차관을 지냈다. 2008년 1월 차관 퇴임이후 주미대사직을 고사하고 와세다대 객원 교수와 후지츠 주식회사 고문 등으로 활동했다. 자유를 만끽하던 그를 아베 총리가 삼고초려끝에 국가안전보장국의 초대국장으로 '초빙'했다.

일본 정부는 5년에 한번씩 갱신하는 ‘중기방위력정비계획’도 육ㆍ해ㆍ공 자위대가 아니라 NSC가 주도권을 쥐도록 제도를 바꿀 예정이다. 야치 국장에게 점점 더 큰 힘이 실릴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올해 74세인 야치 국장에 대해 일본 정부내에선 "당분간은 계속 임무를 수행하겠지만, 그의 후계자를 키우는 것이 일본 외교의 급선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요미우리는 보도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